Friday, April 21, 2017

who are you?

중독된 줄 알았는데 손이 떨리지 않고 있음을 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 들이고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나름 해석을 해보면서 물가의 그림을 떠올리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을 가기 위해 집밖으로 나가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은 봄길을 천천히 걸어가야했다. 보라색 제비꽃과 노란색 민들레가 시냇가 언덕에 촌시럽게 피어 눈길을 잡는다.

신음 소리가 저절로 흘러 나오는 통증이 사라지고 있다. 아~ 통증! 감당할 수 있는 통증을 갖고 있는 지금의 나는 삶에 대한 구체적 결심을 하게된다,  "다시는 넘어지지 말아야해. 그리고 더 천천히 다닐 것이야!" 익숙한 일상의 일 그중에서도 유난히 에너지를 모으던 일을 멈춤으로 해서 얻어지는 것은 시야를 다른 것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물가를 더 천천히 걸을 수 있고, 무엇보다 하루의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잠도 여러번 나누어 자고 밀린 책도 천천히 읽을 수 있고...

병원에서 주사를 며칠째 맞고있다. 항생제 주사라 아프다며 주사를 주는데 오늘 주사는 가짜처럼 덜아프다.   천천히 주사액을 밀어넣어 그런 것 같다며 칭찬에 익숙한 그녀는 겸손하기 까지한다. 어떻게의 차이를 엉덩이로 실감하였다.ㅋㅋ 환자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자태! 내일은 자가소독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하였다. 

약방에 들려 젊은 약사님과 대화를 하던 중에 며칠 동안 경험했던 시도때도 없이 내려왔던 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통증을 잊고자 하는 자가 숙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통제의 영향이라고 한다. 왜 그런 정보를 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젊은 약사님은 약에 대한 자신의 투철한 직업정신을 백프로 확신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정보를 듣지 못한 난 내 노후한 기억력? 집중력? 무엇을 탓해야 하는가. 약에 대한 민감성으로 귀를 쫑긋했을 내 자신을 백프로 의심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했다. 그럴리가! 진통제를 따로 처방받아 약을 받았던 순간이 선명한데...

백프로 확신하는 젊은 약사샘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입만 아플 일이라고 신맛나는 소리가 내안에서 들렸다. 그래 더 노후한 내탓으로 하자~~~

졸리는 진통제 먹고 운전을 했으면?

약국에 가서 약을 받을 땐 반드시  유의사항을 챙겨서 물어야 한다.  



Wednesday, April 19, 2017

Something like Happiness

잃고나면 그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절절히 깨닫게 된다에 동의한다. 이렇게 블러그에 그적거릴 수 있는 그 하찮은 일도 허락받은 축복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돌이켜보니. 전날에 잠을 설친 이유, 좀더 열량을 소비하고 잤던 몸, 평소에 신지 않았던 신발 등등은 작은 불행을 일으켰던 복선이었을까?  흩날리는 치맛자락에 스며드는 찬기운이 싸늘했지만 견딜만했던 아침걸음이었다. 아침냇가로 가기위한 건널목의 신호등이 붉은 빛이어서 서있느니 걸으며 봄꽃구경을 하자며 걸었다. 탐스러운 목련이 떠나간 자리 새로운 초록이 올라오고 벗꽃이 흩날린 자리에 서둘러 철쭉이 쭈빗거리는 봄풍경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만 난 균형을 잃었다.

절대로 넘어질 것 같지 않은 내가 쓰러진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맺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을.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깜깜한 패닉을 경험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보이지 않는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그 무기력과 어두움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는 혼돈! 간신히 집안으로 들어와 쇼파에 몸을 눕히고 전화를 걸었다.

좋아하는 물가에도 갈 수 없고, 긴 시간 동안 오른 손을 물속에 넣을 수 없다.
넘어져서 잃어버린 일상의 소소하지만 큰 기쁨들! 식구들을 위한 아침을 차릴 수가 없고 무엇보다 설거지를 할 수 없다. 통증의 시간을 통과하기 위해 진통제를 챙기고 그리고 홀로 있는 늙은 아버지의 쓸쓸함이 잠시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통은 셀프이고나~~~

시간이 지나면 말초신경으로 부터 오는 통증의 쑤심이 덜해지며 꼬득꼬득하게 상처가 아물어진다고 한다. 붉은 피를 보는 공포와 영화같은 장면이 주는 상처의 불편한 모습이 동반한 통증! 신음하며 누렸던 일상의 보통의 나날을 그리워한다.  그래 얼른 일상의 보통적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신호등을 건너 느린 박자로 다시 병원에 다녀와 침대로 들어갔다. 진통제를 먹어도 쑤셔오는 통증을 잊는 방법은 아마 잠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잠을 청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약을 먹기위해 일어나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먹고 약 먹고 그러다보니 몸이 움직인다. 세탁기에 있는 빨래를 널고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돋보기를 찾아 밀린 신문을 읽고 텔비도 보며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잃어버린 익숙한 일상속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는다.

텔비토크 프로를 한가하게 죄책감 없이 보았다. 자식 결혼시키기? 프로불편녀? 사소한 것에 자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 나만 불편해? 라고 말하는 순간 찍히는 낙인? 예민충?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에 대해서는 싸우겠다는 사상가의 진리가 통하지 않는 새상? 나만 불편해?

지금까지 세상이 바뀌어 온 덕분은 프로불편녀들의 나만 불편해?하고 던진 한마디?

신문속의 젊은 기자의 글을 읽다가 물가에서 좌충우돌 생존하며 적응했던 건강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물가의 인어아짐들이 날 궁금했을까? 이런 정스런 질문하면 안되는데...ㅋㅋㅋ

그냥 즈그들 수영 실컷하다가 즈그들 일에 바쁘갔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몸이 불편허니 자꾸 돌아보게 된다.
Pentatonix, Bohemian Rhapsody

Sunday, April 16, 2017

Viva La Vida

프리다 칼로, 삶이여 영원하라

Coldplay, Viva La Vida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의 색채가 이리 선명한 색이 아닐 것 같은데...멕시코 시티로 가서 두 눈으로 볼 수도 없고...프리다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고통을 달고 살았던 그녀의 수박색이 이리 낭만적인 레드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항상 목전에 두고 살아온 사람의 삶에 대한 열정이 이리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어쨋든, 마음을 비우고 물가에 가려고 한다. 더 침묵하고 더 좋은 말만 하고, 더 좋은 듣기만 하려는 월요일의 시작은 상관없이 회색빛으로 무겁다. 혹시 몰라 우산을 가방에 집어 놓고, 인터넷 폴더 올리기에 실패한 후의 원시적 자괴감(?)을 잠시 잊고자 한다.


Friday, April 14, 2017

April

 금요일이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엔 군에서 휴가나온 아들을 위한 고깃국이  고소한 국물을 우려내고 향긋한 오이가 씻겨져 상큼하게 무쳐질  맛난 엄마의 부엌의 그림으로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봄바람에 치맛자락 날리며, 보슬보슬한 따뜻한 봄비에 우산을 받쳐들고 그렇게 더디 가던 겨울이 성큼 성큼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올라오는 찬란한 봄에게 다음을 넘긴 것 아주 오래된 일처럼 봄으로 가득하다.  오리와 거위털이 들어있는 겨울같은 옷들을 완전 이별처럼 옷장속으로 집어 넣지 못하고 있는 온도차가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눈꽃같은 벗꽃이 봄비와 바람에 흩날린 거리를 밟으며 사람들이 왜 꽃구경을 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드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늘 속에 서있던 붉은 동백꽃 그위로 흰구름처럼 떠있는 벗꽃이 있는 아침풍경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아니 찾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 것만 같았다. 떨어진 벗꽃잎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은  이상한 느낌을 주긴 하였지만 즐기기로 하였다.

4월은 아름답다.
Pentatonix, Hallelujah




Monday, April 10, 2017

A Happy Monday

캄캄한 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그러면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것을 잘알면서도 자꾸만 손이 간다.  살림 잘하는 친구가 열무김치를 담구었다고 하길래 덩달아 바삐 봄김치인 열무김치를 담았다. 그리고 그녀가 오늘 오이 소박이를 하였다는 소식을 전한다. ㅋㅋ 듣다보니 오이 소박이 좋아하는 우리식구들 생각이 나지만 오래 묵은 육체의 피곤함을 고려해  하루 쉬고 담기로 알뜰한 욕심을 미루어 본다.

진달래, 개나리 꽃들을 시샘하는 듯 벗꽃이 팝콘처럼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꽃들이 피며 여름으로 달리고 있는 듯 하다. 초록이 다 올라오기 전에 피는 봄꽃들은 고급 물감처럼 선명하게 아름답다. 겨울 갈대들이 사라진 아침 냇가는 더 넓어진 하늘을 담고 졸졸 반짝거리며 흐른다. 개나리꽃을 보며 미국의 이웃들을 잠시 생각하기도 하였다. 유난히 개나리가 폭탄처럼 쏟아진 울타리를 가지고 있던 작은 아들의 초등 미술샘의 집을 지나 까칠하지만 집을 잘 가꾸던 러시아 출신의 엔지니어링 이웃 마당에 서 있던 아담한 개나리가 생각이 난다.

미국 집을 떠나올 때 자생력이 강한 개나리를 울타리 삼아 심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였지 싶다. 그때 먼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시가 많은 장미보다 개나리를 심어 자연스런 울타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장미의 향기와 자태 무엇보다 장미라는 드라마틱한 풍경에 사로잡혀 여러 그루의 장미를 심었었고 결국은 그 장미로 인해 경제적 지출( 랜드스캐핑 인건비, 쓰레기 처리 비용)도 적지 않게 해야했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무 한그루 없는 새집에 정원을 만들고 처음으로 심었던 '임페리얼 로즈'의 향기를 잊을 수 없고 그것으로도 족했지 싶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기로운 장미가 키가 자라고 가시가 굵어지고 지붕위로 올라가는 야생미는 부담이었지 싶다. 해마다 적당한 가지치기를 해줬으면 고생을 덜했을일이었는데 몰라서 고생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나리 대신 심었던 '오스트리아 파인 트리'는 잘 자라고 있겠지? 성장속도는 느리지만  위풍당당한 품세을 지녔던 강인한 소나무의 가치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뒤에 알게 되었다.

미국유학시절의 내 정원에서의 가든닝은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정원에서의 시간들은 창작활동으로도 표출되는 영감을 주었던 소중한 소스들이기도 하였다. 'something like happiness'는 내 정원에  뿌리내리고 살다간 키큰 해바라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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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지난 이야기하는 것 보면 늙은 것 틀림없다.  그리고 머물러 있는 것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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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물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특별히 자신의 운동하는 모습을 모니터링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던 것 확실하다. 내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습만 보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하며 날카로운 아픔을 주었던 것 같다. ㅋㅋㅋ 아니 이럴 수가~~~

가슴이 주저앉는 좌절과 실망감 그리고 열등감!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주체할 수 없는 무식한 자만감으로 씩씩하게 할 수 있었을까? 행복한 물고기가 될 수 있었을까?

이해되지 않는, 있을 수 없는 폼으로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ㅋㅋ 아픈 만큼 성숙해질 수 있다는 말을 붙잡기로 했다. 그렇고보면 누군가가 애정어린 마음으로 말해 주었던 사실들이다.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오늘 아침 난 물가에 가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내 풀죽어 연약한 자신에게 놀랬지 싶다. 무엇이 문제인것을 아는 사람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지혜를 가지고 용감하게 물가에 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갖기로 하였지 싶다. 처음처럼~~~시작하기 전보다  물가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익힌 현재진행형인 건강한 모습을 간직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천천히 욕심 부리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

물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입술에서 활처럼 떠나버린  단어들을 생각하며 늘그랬듯이 후회를 좀 하기도 하였다. ㅋㅋㅋ 푼수끼와 주책끼가 섞인 아짐의 모습을 어찌 하나? 봄맞이 대청소로 버려야한다~~~
Earl Grant, The End

Friday, April 07, 2017

Just Spring

봄날은 간다
                                          -손로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이라서 시간을 만들어 꽃구경을 가게될 줄 몰랐다. 군에서 휴가나온 아들을 아침부터 깨워 귀한 것을 놓칠세라 서둘러 뒷산으로 올라갔다.  연분홍 진달래가 흔들거리는 산길을 걷는 즐거움을 아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분홍빛 낭만을 노래하는 진달래 꽃구경을 함께 하는 순간은  봄같은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란 단어에게서 쉽게 달아날 수 없는 우리들이란 것을 십삼년만에 만난 오래된 사진속에 있는 여인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꿈을 꾸게 하는 모든 것들은 불안이란 그림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지할 수 있었던 만남이었던 것 가기도 하다. 꿈을 더이상 꾸지도 쫒지도 않는 이는 불안하지 아니한가?

적당한 운동과 적당한 음식을 그녀게게 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한한  시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걸음이 무거웠지 싶다.  비록 위대한 작품활동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침 물가로 가는 가슴두근거림이 있고 소소한 이야기로 나를 키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의 소중함이 내 자신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지금 여기서 낯선 타인들과의 만남이 날 흔들리며 꽃피울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감사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 시간이었음을 .

그렇다 우린 시간을 이길 수 없기에 서로 사랑하기로 한다. 사랑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Wednesday, April 05, 2017

The Reason to Smile

아침 물가로 걸어가는 길은 물소리가 흐른다. 시냇가에 무성하게 자라나 겨울내 덤불처럼 쓰러져있던 것들을 치우는 사람들의 허리굽힌 수고로움이 있어, 그 겨울의 풍경속에서 봄으로 올라오는 초록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 싶다. 깊은 뿌리를 심고 서있었던 겨울의 빈갈대들이 사라진 냇가는 봄맞이가 한참이다.

큰 나무위에 올라앉은 두루미 세마리를 보는 것은 오래전 울 아버지의 연하장을 보는 것 같아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설어 신성했던 그 전설같은 그 광경을  도시 아파트숲에서 볼 수 있다니 아침을 걸어가는 즐거움이다. 목이 긴 두루미가  물속에 주둥이를 쳐박고 바삐 움직이는 귀여운 오리들과 달리 먹을 것이 있는 물속을 보지 않고 혼자 늘 외롭게 허공을 바라보는 것은 늘 언제나 의문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대체 무엇을 보는 것이지? 물속을 보란 말이야!

흰두루미들이 오늘 아침 높다란 나무 꼭대기위에 앉아 있다. 무슨 일이지? 봄구경 꽃구경을 하시나?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https://www.youtube.com/watch?v=erpHPRfvwH0
Sing, Shake it Off

Monday, April 03, 2017

PPA SHA~~~

휴가나온 아들이 있는 집은 완전체의 모양으로 가득찼었던 것 같다. 아들의 나이보다 더 푸른 나이에 친정을 떠나 새로운 집에서 삶을 꾸렸던 것에 비해 나의 아들들은 아직 어리고 애틋하다. 아들이 군대로 돌아가는 뒷모습에 손을 흔들지 말 걸 그랬다. 이렇게 마음이 휑한 바람소리를 품으니 말이다.

작은아들에게  초록이 물들기 전 분홍빛 진달래길의 낭만을 보여주기 위해 햇님을 머리위에 두고 뒷산에 올라갔었다. 아기같은 진달래 꽃봉오리들이 더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햇살이 더 많이 내리쬐는 곳의 진달래는 꽃이 피어 서둘러 찿는 이들을 위해 피어있는 양 싶었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오르면 이곳에 돌아와 처음으로 보았던 환상적인 진달래길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조그마한 개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온 도시의 사람들을 보며 미래의 살아남을 개들은 덩치가 작은 개들만 생존하리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마당깊은 집에서 푸른 잔디위에 개들을 풀어 놓고 뛰노는 그곳의 그림을 생각한다면  조그맣고 이쁜 개들만 데리고 나오는 마당없이 사는 도시 사람들의 풍경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가 가는 물가에도 이야기가 있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날이지만 유독 오늘이라는 시간은 한달의 첫머리이며 또한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회원들의 얼굴을 만나는 날이기도 하였다. 물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늘 후회로 남던 품격떨어지는 언어생활을 재정비 하는 차원에서 책한권을 읽었던 사실이 힘이 되었을까. 물가로 향하는 마음은 떨리고 긴장되었지 싶다. ㅋㅋ 좋은 말만하리라 다짐 다짐 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지켜서 스스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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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감정은 한국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라 한다. ㅓ미국 유학시절, 개인적인 문화에서의 그들은 공과 사가 분명하고 긍정과 부정이 확실해서 '정'이 하나도 없게 느껴지다가도 불필요한 불편한 처세를 하지 않아 좋았던 그림도 보았지 싶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직도 조직적인 처세를 잘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하고 분명한 의사표현 보다는 이러저리 눈치를 살피고 요리조리 돌려 말을 해야하는 문화적인 면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을 떠나 돌아오니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스트레스를 겪는 환경탓이라 여기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감추는 행동 또한 그리 눈에 거슬리는 것 같지는 않다.

열려있는 문들을 매몰차게 닫아야 하는 순간들을 간혹 경험하게 된다.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으로 관계의 거리를 만들고, 미소로 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고 살고 있다는 것을 보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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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주자'라는 멋진 말을 알게 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 자신을 나답게 했던 건강하고 적극적인 에너지 충만했을 때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간들이었단 것 뚜렷한 기쁨으로 기억하고 있다.  20년전의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은? 그리고 그곳에서 콩글리시 영어를 이해하며 잘 따라왔던 미국 대학생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영영 마침표로 끝나버린 것은 아닌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가에서도 스스로가 깨우친 그 무엇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힘들다. 물가에서의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찾을려고 노력했고 주위의 좋은 사람들의 조언에 귀기울이며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남들이 똑같은 상황에 놓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ㅋㅋㅋ 그러나 한가지 깨달은 사실은 '우물은 목이 마른 자가 판다'이다. 스스로가 목마르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진리인 것이다. 여기서 다시 눈을 돌려,  바라보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물가의 생활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어찌 이런 비정한 그림이?

주제 모르고 잘난 척한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사는 것이 두렵다기 보다는 귀찮은 것으로 그 매듭을 짓기로 한다. 강사료 받는 샘이 있으니 샘의 역할이고, 같은 회원이니 그냥 열심히 내 깃털을 다듬는 것으로. 때때로 배우지 않을 것을 잘도 배우고, 때때로 쓸데 없는 일에 열을 내기도 한다.ㅋㅋㅋ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모르는 타인들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 문을 열고 다가가서 생채기를 남겼던 쓰라린 추억을 지우고 다시 사랑해야 하는데 연약한 난 오늘도 마음을 닫고 입을 닫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타인에게 문을 열고 사랑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인정!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과 아침을 보내는 일은 즐거운 일인 것을 알고 말았다. 명랑하고 활기찬 젊은 여샘은 귀한 행복한 엔돌핀을 어찌 만드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쓸데없이 재잘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일에 완전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분을 알게 되어 기쁜 날이기도 하였다는 것 기억하고 싶다.

숫자송

Saturday, April 01, 2017

The Egg in Square

아침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트려 네모난 모양의 후라이펜에 넣으니 네모난 후라이가 만들어진다. 동그란 후라이에 익숙한 난 잠깐 그 낯설은 각진 네모난 모습에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지 싶다. 거창하게 그 깨달음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굳어져 있는 고정관념 하나가 변화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직접적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네모난 샌드위치 빵에 적당한 네모난 후라이를 얹고 네모난 치즈와 햄을 넣고 동그래서 불편한 토마토와 양파를 겹쳐 넣은 네모난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유동적이어서 가능했던 달걀의 변형 내지 변신을 보게 된 것은 작지 않은 발견이었지 싶다. 자신의 생각의 틀속에 집어 넣어 생각하고 다시 뱉어 내었을 그 헤아릴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한 침묵!

인터넷 서점보다는 책들의 기운이 쏟아지는 아날로그적인 서점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지하철을 타고 나가 새로 알게된 서점은 큰 기쁨이었지 싶다. 다가올 무더운 여름날 피서삼아 에어콘 켜지는 서점에서 책을 읽을 새로운 즐거움을 감추기 어려울 것 같다.  어서빨리 동네 빈터에 도서관이 생긴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지만 말이다.

더 멋지게 성숙하기 위해 '말'을 잘 관수해야겠다는 차원에서 관련된 책과  오랜만에 책을 낸 님의 책과 그리고 현대 미술사책을 구입해서 들어오는 길은 행복하였다. 품위있는 언어생활에 대한 배고픔이 심했던지 빛의 속도로 책을 읽었지 싶다. ㅋㅋㅋ 새로운 시간엔 두개의 귀 한개의 입을 잊지 않기, 부드러운 미소 만들기, 긍정적인 말하기, 칭찬하기, 맞장구 치기 등등의 결심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무엇보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침묵하며 잘 듣기를 잘해야 할텐디...

아무래도 네모난 후라이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사람들과 어울려 잘 살아야 하니 나름의 셀프 교육도 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변신을 시도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화이트 유영석, 네모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