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날을 선물이라 여기던 며칠간의 맑은 기쁨은 어느덧 뿌연 회색빛의 무게감에 흐려지는 것 같다. 칠월의 그날을 기점으로 컴앞으로 돌아오지 못했지 싶다. 현실적인 버거움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며 열심히 살다보니 이리 되었노라 한다면 칙칙한 변명이 되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팔월 구월 그리고 시월이 가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그곳에서의 무병했던 그 긴장된 시간과 바쁜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훨씬 한가롭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이곳에서 자꾸만 아프다는 소리를 하고 사니 진정 늙은 기분이 아니 들 수 없는 사태에 이른 것 같다.
그래, 늙어서 그런 것이겠지...수용하고 받아 들이고 그러려니 하고 긍정적으로 주어진 삶의 여건을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언제나처럼 내안에 일어나는 잡초같이 올라오는 무성한 잡스런 생각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방향감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쥐고 있는 것들을 적당히 놓아 버린 것도 같고 갑자기 늙어버린 듯한 그런 흐릿한 상황속에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버리고 있다.
누군가는 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으니 자유롭고 행복하다는데 난 그렇지도 않는 것 같고, 생각이 많은 것인지 단순해진 것인지...그래 늙어버린 그 기분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가! 욕심을 버리고 그저 내 몸둥아리 하나 챙길 양으로 수영을 다니고 있다. 아침마다 치솟는 게으름을 물리치고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가는 길에 듣는 시냇가의 물소리는 내가 오전중에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소리일 것이다. 시냇가 바윗돌 위에 잠을 자는 오리들, 목욕하는 비둘기들 그리고 조그마한 송사리들...이런 저런 모양의 시냇가의 모습들을 친구삼아 오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난 아무래도 늙은 것 같다.ㅎㅎㅎ
블랙 프라이데이 폭탄세일을 한다해도 백화점에 나가지 않고 수영장에 간 난 무서운 중년 아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럴땐 백화점에 나가 하루 종일 쇼핑하고 그렇게 사는 것 아닌가? 하여튼 난 백화점에 나가지 않고 쇼파에 늘어져 종이 신문을 읽는 즐거움을 꼭 챙기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난 집안퉁이가 되었나 보다.
어수선한 과도기를 지나다 보니 나 이리 되었나 싶기도 하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버티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며 화성에서 길잃은 영화 한편을 꼭 보아야겠다는 모처럼의 욕구가 일어난 것은 좋은 징조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애매하고 어정쩡한 시간을 잘 견뎌서 멋진 배경으로 만들었던 것 기억하기로 하지.
내 시간이 주어진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
물으면 답이 있다했는데 그 답은 포기하지 않는 그 열정에서 나오겠지하며 자꾸만 잠자는 열정을 깨워 보기로 한다.
still spring, Oil Painting, 29x39 cm
2015 대한민국 현대미술 비엔나 초대전-
2015,9.6-9.16
Invitation Exhibit Republic of Korea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Vienna & Paris 2015
국제 교류전이라 하여 참가하였다. 미국 그리고 한국 밖에 스펙이 없는 연유로 경험이라 생각하고 참여 하였다. 작은 10호 사이즈로 규격이 제한되다 보니 이 작품이 나가는 행운을 가졌나 보다. 다음엔 작은 작품들을 만들어 공간을 할당받아 해외 전시를 해보는 것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얼마지나 도록과 함께 그림이 배달되어 왔다. 이렇게 국제 교류전을 하는 것이고나! 어떤님이 파리에서 국제 교류전 한다며 콧대를 세우길레 부러워했던 순진했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서도 현실감각을 키우기엔 좋은 경험이 되었지 않나 싶다. 이제 이력에 국제 교류전 어쩌고 저쩌고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어 좋았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