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30, 2019

Enough!

'Brad's Statues'(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란 영화는 월욜 오후에 보기에 좋았다. 집안 일을 대충 해놓고 열심히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혹시나 우울해질까(?) 두려워 영화 한편을 양식으로 먹기로 하였다. 지난밤에 보았던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는 좀 그랬다. (?)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통 종잡을 수 없었다. 영화 보기전에 공부를 하고 가서 봐야 하는 영화였다며 감상평이라고 주절거릴 말이 없다. 그냥 잘생기고 나름 잘 늙'어가는 배우들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했으면 될 일이다.

다시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다. 몇번 눈시울이 촉촉해졌지 싶다. 술한잔과  오징어 숙회 초무침에 취한 탓도 없진 않지만 영화가 잔잔하니 잘사는 삶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자주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을 건드린 탓도 있을 것이다.

'enough'란 단어는 어려운 형용사이다. 우월하고 잘난 사람들을 너무 일찍 제거했을까?ㅋㅋㅋ
쉽게 만족하고 쉽게 행복한 브래드의 아내가 부럽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쉬운 것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 잘나지도 않았으면서 남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운운하며 살아갈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가질 수 있다면 언제나 행복할텐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이 흥미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들이 우울해 하는 아빠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일만 생각하느라 남들에게 신경을 그리 쓰지 않는다.' 타인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은 것도 외로운 삶이기도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쓰고 사는 위선적인 (교양(?)사람들의 삶 자체도 그리 달달해 보이진 않는다.

옛날 학창시절 나보다 더 공부 못하고 더 이쁘지 못한 친구들 지금 나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잘나가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름 최선을 다해 내 레인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다. 좌충우돌 흔들리면서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양산도 쓰고 이모냥 저모냥으로 열심히 때로는 견디며 삶을 꾸려가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다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나아갈 방향이 못잡아 뒤를 돌아보며 방향을 잡아 보기도 하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누구의 삶이 어쩌고 저쩌고 비교하며 기죽을 일 있는 일인가. 기죽을 일 없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I'm Still Alive'로 영화는 깜깜해졌다.

Brad's Statues Sound Track






Time

날이 좋아 어디론가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잠시 일어 났었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의 맛을 잊지 못함인지 자꾸만 집을 떠나 멀리 멀리 떠나 낯설은 곳을 보고 느껴보고 싶은 열정이 일어났다 사라기기를 반복한다.  매번 자신에게 축적된 세월과 게으름의 무게감을 못이겨 주저앉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안감이 들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는 것 외에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선택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집안일을 하기 좋은 선선한 가을 날이기도 하며 맑은 햇살에 이불 말리기도 딱 좋은 날이기도 하고 쇼파에 기대어 밀린 책을 읽기도 좋은 날이기도 하다~~~

살다보니, 인터넷서점에서 신청한 책이 미인쇄된 부분을 유지한 채 배달되기도 한다. 책의 두께에 질려 주제별 책읽기를 하던 중에 미인쇄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별 일이 다 있다! 그만 나쁜 인간 본성을 자극 하기에 책을 덮고, 침대 머리맡에 둔 책을 들고 나와 읽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 읽기 딱 좋은 날이야~~~

'소박한 정원'이란 책이다.  저 멀리 두고온 나의 정원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저자는 40대에 영국에 유학을 가서 정원에 관련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나 또한 40대에 미국에서 그림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40대를 회상하며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마음이 향기로운 꽃밭으로 향한다. 

이웃집과 콘크리트 담장을 쌓을 수 없어 대신 울타리 삼아 '오스트리아 소나무'를 심었었다. 목마른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소나무가 더 단단해지고 한결 푸르러지고 더 키가 자랐던 것을 기억한다. 땅을 파고 뿌리를 넣어주고 지켜보고 사랑을 주었던 나무들이었기에 지금도 거기에 살고 있을 나무들을 그리워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아침운동을 갈 때, 곧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대신 이웃의 정원들이 있는 길을 골라 지나간다. 가느다란 코스모스가 귀엽게 피어있고, 금잔화, 상사화, 수국 꽃이 보인다. 이웃은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며, 정원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상황에 맞게 품종을 골라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은 가든을 통해 얻을 소중한 가치들이 부럽기도 하다.

책속에서 '기다림'이란 단어와 진하게 부딪혔다!

정원은 기다림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적당한 때를 골라 씨를 심고, 적당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빛을 좋아하는 꽃은 빛이 많이 드는 곳에, 그늘을 좋아하는 꽃은 그늘을 따라 꽃에 맞는 환경을 배려해 주는 것이야말로 사랑 그 자체 아니겠는가! 그리고 기다림~~~


Friday, September 27, 2019

Minimal Life Style

여행을 다녀온 후 나름의 글쓰기 마무리를 하지 못하니 모든 것이 엉망인 느낌이다. 뭣인가 자연적인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때문인지 읽고 싶은 책도 많아지고, 계절을 바꿔입는 일련의 가사일도 해야하고, 잃어버기기 쉬운 정체감 하나를 챙길 시간과 공간에 자신을 노출 시켜야 하고, 좋아하는 운동도 계속 해야 하고...마음이 번잡스럽다.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란 단어로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뭔가 시도하려 했던 기특한(?) 생각 하나를 제거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란 말을 '곤도 마리에'님이 하였다고 한다. 더 가슴 설레는 일을 선택하기로 하기까지 혹시나 벗어나지 못하는 '중독'이나 적당하게 안주하고 싶은 '여우의 합리화'란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게으름의 무게를 못견뎌 주저 앉을 어떤 핑계를 찾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밤은 길었다.

오십대 오십인 상태에서 선택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육체가 편안한 쪽으로 선택을 내리는 자신을 주름져가는 하나의 현상을 보이는거라며  다둑거려 본다. 뭔가 도전적인 결정은 시간과 열정을 필요하는 일이고 반드시 육체의 힘이 뒷바침 해주어야 할 일이다. 물론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연약한 육체를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운동없이 못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깨우쳐 익히고 싶은 것들이 수영장으로 향하게 한다. 수영을 하지 않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금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을 하러 간다.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다듬을 것들이 내적 동력이 되어 자신을 물속에서 부유하는 즐거움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습관을 버려야 하는가를 아는 것은 모든 세상 이치와도 같이 중요하다. 더하는 것 보다 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고보면, 개인적으로는 물건이든 감정이든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그날 그날 잘 버리고 살았으면 지저분한 것들에 둘러쌓여 살지 않게 될 것을, 참으로 간단한 습관 하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자신은 겸손하여야 한다.

수영 영법 4가지(자유형, 평영, 접영, 배영)중에 평영이 가장 배우기 힘든 도전적인 영법이었는데, 오늘 뭔가 깨닫고 말았다. ㅋㅋ 한단계 나아간 느낌이 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던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고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완전하지 않지만 더 나아갈 수 있는 한 단계를 올라섰단 점에서 기억하고 싶다. 물론, 접영의 문제점이 스스로를 급하게 하긴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을 들여 연습하면 되는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없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로 한다.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 확신하며 운동인의 기본 예의라 생각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심플하게 집중하기로 한다! 앞으로~~~










Tuesday, September 24, 2019

옹기종기(onggijongi(?))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그런 말의 의미가 적당할 때가 있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라서 오고가는 감흥이 더 새롭고, 더 맛있고,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온 이곳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 같은 날이라 일교차가 심하다. 아침 저녁이면 바람의 서늘함을 견디지 못해 창문을 닫거나 겉옷을 걸치면서 느끼는 낯설음!  밤산책을 하기 위해선 얇은 옷을 겹입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베트남 환전률이 좋은  100달러 화폐를 구해가 공항에서 우선 사용할 비상비를 위해 100달러를 베트남 화폐로 환전을 하고, 시내구경을 나가 환전률이 가장 높은 '금은방'에서 하면 되었다.  호텔로 가는 택시도 호텔픽업용 택시는 비싸니 '그랩'이나 '클루'를 예약해서 부르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현지상황이 낯설어서 선택한 첫날 호텔 조식은 비싸고 맛이 별로였다. 워낙 길거리 음식이 저렴하다보니 호텔 조식의 편리함이나 고급짐이 부럽지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오토바이'를 타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온 가족4명이 함께 자동차와 같이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모습은 놀라웠지 싶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국민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생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 하나를 장착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토바이를 위한 도로를 덩치 큰 자동차나 버스가 침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오토바이는 리듬을 타고 살아  움직였지 싶다. 무질서 중에도 나름의 리듬이 있어 자연스럽게 흘러 가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시내 거리엔 경찰이 있을 법한 자리에도 경찰은 없었고 오토바이 사고도 없었다.

오토바이가 많다는 정보는 알고는 갔지만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행단보도를 건널 때도 자연스럽게 교통 흐름에 맞게 그냥 지나가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토바이가 몰려와도 그냥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쭈욱 가면 사고가 신기하게 나지 않는 것이었다. 쭈뼛쭈볏 눈치를 보다가는 흐름이 깨져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몇번 오토바이와 섞여 오가는 것을 하다보니 그 베트남적인(?) 편리함에 쉽게 젖어 들었지 싶다.

여기 저기 가릴 것 없이 목욕탕 플라스틱 작은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먹는 길거리 문화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음식값이 우선 한국에 비해 저렴하고 반면에 음식맛도 나쁘지 않으니 즐겁지 아니한가! 화폐단위가 무지하게 크다보니 한끼 식사를 하고나면 베트남 돈으로 백만원이 나와서 그만 웃고 말았다. 동그라미 하나 제거하고 그리고 이등분을 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을 할 수 있다. 2천원, 4천원, 2천 5백원 이런 착한 숫자와 자주 만나면 가성비 높은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중 이모작을 하는 나라로, 쌀이 풍부해서 쌀국수가 우수했다. 각종 먹어봐야 할 음식들은 실망 시키지 않았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두려울 것이 없었기도 하였다.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먹었던 음식(라면튀김위에 얹혀진 쇠고기)는 뜻밖에 맛있었다.  라임과 베트남 고추를 넣은 쌀국수 국물맛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동남아에 위치한 나람답게 '하노이'의  9월의 시간은 아직 여름이다.  후덥지근하고 땀이 옷에 젖어드는 날씨를 견디는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맥주와 코코넛 커피가 있다. 무더운 여름이라 식욕이 떨어질만 한데 무섭게시리 음식은 단순하고 맛있다. 음식값이 착해서 감동이 더 오는 것 아니겠는가 한다. 초록색 라임을 시원한 맥주에 넣은 맛과 라임 몇방울과 땡고추를 넣은 쌀국수의 시원한 맛이 그리워 또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긴 여행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수영장이 딸린 호텔을 일부러 예약하고 갔더니 먼지와 소음을 일으키며 열심히 공사중이다. 수영장 바닥에 공사의 잔여물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뭐라 한소리 하며 호텔 숙박비를 깍고 싶었지만 입이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경우로 뽑힌 것은 택시비이다. 택시 기사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순간에 이성이 마비되었다. '미터'로 가는 택시라며 타라고 했다. '미터~~~'

택시 기사는 '미터'라는 이성적인 단어를 앞세우며 호객행위를 했고, 미터로 가는 것이면 정확하겠다는 생각에 속임수를 쓴 것이다. 아마도 미터가 고속도로 계산법을 따른 것이거나 아니면 미터기에 속임을 넣었을 것이다. '이천오백원'이면 될 거리를 미터로 '이만오천원'인 오십만동을 달라 하였다. '박항서 감독'이 어쩌고 저쩌고 한국이 좋아하며 환심을 사게하고, 도착해서는 그 환상적인 미터기 숫자를 내밀었을 때 냉철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오십만동'을 주고나서, 정신을 차리고나니 택시는 달려가고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여기저기서 택시 사기 조심하라는 이야기이다. 택시 기사가 돈이 넉넉해져서 통닭이라도 사서 집에 들어가 온 가족이 행복할 것이라 상상하기로 한다.

5박 6일의 일정에서 이틀에 걸쳐 하노이 시내구경을 하였다.
호안끼엠호, 호찌민 묘소, 탕롱 황성,못꼿 사원(한기둥 사원), 응옥선 사당, 쩐꾸옥 사원, 성요셉 성당과 맛사지 샾, 맛집, 기찻길 카페(마을), 콩카페, 콩카페 원조 카페, 분짜, 반미 샌드위치, 구시가지와 시장구경, 맥주거리와 야경








현지 하롱베이 하루 패키지를 국내에서 선예약을 하였다. 관광버스를 호텔앞에서 기다리다가 결국은 급한 오토바이 서비스를 받았다. 뜻하지 않은  오토바이를 타고 관광버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기분은 그저 당황스럽고 놀랬지 싶다. 안전모도 없이 성인 3명이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급하게 내달릴지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풍경보다 하롱베이를 가기위해 오토바이를 타야했던 사실이 인상깊게 남고 말았다.


닌빈이란 곳도 역시 현지 패키지를 이용하여 하루치기 여행을 하였다. 보통 배를 타고 갔던 하롱베이 보다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아마도 천천히 느리게 여행을 했던 이유가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나룻배를 타고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멋진 일이기도 했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웠던 것 기억한다. , 킹콩 스컬 아일랜드는 영화를 찍던 배경이 되기도 하여서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Thursday, September 19, 2019

Raining Monday

'링링'이란 태풍도 지나갔는데 왜 비가 오는 것이지? 태풍이 지난 후엔 청명한 푸른 하늘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벗어나,지금 여긴 반갑지 않은(?) 가을 비가 내리고 있다.

급급해서 선풍기를 돌리고 있는 지금은 이른바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가을임에 틀림없다. 봄비다운 봄비가 오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기에, 장마다운 장마를 보지 않았기에 지금의 가을 비의 소중함을 떠올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가을햇살에 곡식이 익어가고 과일이 탐스러워질 시간에 웬 비가 내린단 말인가. 초가을 월요일에 내리는 비는 낭만적이지 않고 급급하고 귀찮기만 하다.

태풍이 지나간 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흔들린 나뭇가지의 부스러기들과 야무지게 정리하지 않은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예상밖의  얌전한 뒷모습 풍경을 남겼다. 빗탈진 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기울어졌고, 올바로 곧게 서지 않은 나무들은 균형을 잡지 못해 나무가지들을 꺽어내야 하는 아픔을 경험 했던 모양이다. 거센 바람이 불때 뿌리를 잘내린 나무들은 잘 흔들렸던 것인지 덜 움직였던 것인지 안전하게 견뎌낸  반면, 균형을 잡기 어려운 빗탈진 나무들은 바람탓에 큰 변화를 겪은 모습이다.

빗탈진 곳에 있는 나무들이라도 엉기성기 서로를 기댈 수 있었던 어린 나무들은 위기를 잘 견뎌냈고,  홀로 비탈진 곳에 있는 어린 나무들은 쓰러져 있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어려울수록 서로 보듬고, 때로는 견디며 함께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큰 바람이 부니 홀로 있는 나무들을 보호해 줄 그 무엇이 없다.

대자연의 세계엔 때론 태풍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체된 것들을 뒤집어 질서를 다시 잡는 일종의 '조율'같은 것이라 대자연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 들이지만 태풍때문에 여기저기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얼굴을 텔비를 통해 보고 있노라니 태풍이 없는 세상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태풍으로 인해 정성을 다한 과일들이 나뒹굴고, 태풍이 가지고 온 열대성 해류가 양식장의 서식조건을 파괴시켜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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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08, 2019

The Room

가을 장마로 비가 내리더니 이제 역대급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은 물기로 인해 땅을 잡고 서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강풍까지 불어 닥치면 쓰러지기 쉬울 것이다.

미국생활 동안 만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도 비가 며칠 동안 내렸었고 그리고 약한 토네이도의 비바람이 불었다.  토네이도가 침범할 수 없는  저지대로서 안전한(?) 지형이란 말이 무색하게 이웃들의 지붕은 날아갔고 큰 나무들은 쉽게 무너져 버린 풍경이 기억난다.

가을 비가 연속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키운 태풍의  뉴스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조용하다.  뭔가 큰 것이 올 것 같은 조용함이다!

아침운동을 두 다리로 오가는 나는 바깥 출입을 억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가로수가 갑자기 쓰러질 것이고, 건물의 많은 간판들이 떨어져 날아다닐 것이며, 쓰러지는 가로수 때문에 전기줄이 끊어질 수 있는 태풍 부는 날을 상상하니 무섭기 그지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꾹 참고 집안에 있어야 할 모양이다.

어제 아침신문에서 만난 푸드 파이터, '로니 칸'의 인터뷰가 생각이 나서 적어 본다.
'먼저 내가 무엇으로 행복한지 찾고, 그걸 위한 일을 늘려 가라. 또 주변에 열정적인 사람들 둬라. 열정은 사람을 감화시킨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 지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마음 속에 구정물을 일으키는 것은 타인들로 부터 시작될 수 있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지키는 정화 시스켐을 간직하여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타인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내적 단단함을 얻을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태풍이 데리고 온 좋은 생각이다.

'소박한 정원'이란 책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선, 타고난 본성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함께 존재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을 깨달은 '오경아'님의 책을  태풍이 부는 날에 함께 만나기로 한다.










Tuesday, September 03, 2019

knock knock

'녹록지 않다'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만만치 않다라는 뜻을 달리 표현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흔히 사용하지 않은 어려운(?) 표현이라 검색을 해보았다. 타인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유지해 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부정적인 말투로 징징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어쩌다 한번이면 좋겠고, 남의 뒷흉을 소근거리는 사람 또한 어쩌다 한번이면 좋겠고, 소유한 부의 숫자가 늘어난 자랑을 하는 단순한 사람도 어쩌다 한번이면 좋겠고, 앞에선 웃고 뒤에선 뒷땅까는 사람은 안보면 좋겠고, 자신의 유익에 따라 배신을 일삼는 영리한 사람도 안보면 좋겠고 ㅋㅋㅋ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져 혼자이고 싶어진다.

이러면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라며 마음을 다둑여 마음 문을 열고 입을 열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하면 잘 듣고 꿀걱하고 삼키고 배려해 주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배려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들어주는 것만으로 임무를 마치면 안되는 것일까. 남에게 말을 옮기고, 일을 확대 시키고 결국엔 차 마실 때 내놓을 에피소드 한편을 제공하고 말았다는 그런 느낌은 받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그러려니'다! 다시한번!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음으로 때로 단순하게 무식하게 입에서 튀어 나오는대로 말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보호적인 차원으로 적반하장의 형태를 취해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안합니다','감사합니다' 이런 단어들만 제대로 사용해도 될터인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잔머리를 굴리며 합리화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무식한 사람의 좌충우돌의 꾸중물을 보는 것 보다 여우처럼 잔머리를 쓰며 달콤하게 부드럽게 의사소통을 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남의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피해야 할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함부러 남의 인상이 어쩌고 저쩌고 지껄이는 사람 또한 냄새나는 그것처럼 피해야 한다. 물질적인 축적이 많다하여 없는 사람위에 올라 앉아  괄시하는 사람 또한 추한 사람이다. 물질은 아름다운 것이나 그렇다고 밥이나 얻어 먹는 사람이나 콩고물이나 줏어 먹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런 거들먹거리는 꼴을 쉽게 받아 들이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다. ㅠㅠ)

물가의 여인들이 가장 거센 사람들이다는 말을 자주 듣기에 조심하고 조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빚어지는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삶이란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 꾸러미일터인데 풍부한 경험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선을 지키고  즐겁고 기쁜 이야기만 나누는 관계를 만들면 피곤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만든 사람에게 충고는 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를 걸고 하는 말이다.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며 다만 나에게 집중하고 더 단단하게 서면 되는 것이다.  나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까!




Together

'함께(together)란 단어는 다정하지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가 각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멋지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함께 있어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태도가 기본적인 기초를 갖고 있거나 혹은 시간의 축적만큼이나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드럽고도 단단한 넉넉함이 마련되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뒷담화를 실어 나르기를 즐겨하는 사람과의 식사와 커피는 피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무심하게 편안한 커피 한잔 하기가 쉽지가 않다! )

'그럴 수도 있지', '그러려니', '괜찮아' 등등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단어들이 없다면 어찌 미묘하고도 애매한 감정을 정리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한다. 그러나 이런 무심한 단어들은 술처럼 취하게 하여 무기력하게 쓰러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자꾸만 수용하고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다보면 어떻게 되는거지?


'여름과 가을의 공존'이란 단어를 아침신문에서 보았다. 애매하고 모호한 것은 아름답지만 복잡할 때가 있다. 선명한 것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것 아니겠는가. 나무들은 아직 푸르고 서늘한 시간을 따른 꽃들은 치열하게 꽃들을 들어 올리며  9월이라는 시간에 접어 들었다.  이곳으로 돌아온 나의 시간은 6년이란 숫자를 축적하였다. 돌아보면 보잘 것 없고 남루한 기억이 쌓여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삶이었다. 지금 여기서 진정 내가 꾸린 삶의 모습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마음 편해지는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돌아보면, 6년의 시간은 사라졌다! 65세를 노인으로 칭한다면 아직 중년의 시간이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가을 꽃처럼 최선을 다해 피워내야 할 것이라고 마음밭을 다져보기로 한다.

내 삶의 마지막 날에 갖게 될 단어는 무엇일까? 나 또한 남들처럼 마지막 날을 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냥 잊고 살고 싶은 멀리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가을이니까 물어본다.



내 삶을 함께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삶의 결이 더 풍부해지고 깊이가 깊어지고, 더 단단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음을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