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ry
마크 맨슨'의 '신경끄기의 기술'이란 책은 지금 여기 속한 그동안의 선택들에 대한 뒤돌아보기를 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선택의 묶음이란 말은 언제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내가 만들었던 선택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많이 성숙하고 있음을 알았다. 다행히 셀 수 없는 실수들을 저지르면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과정이 내게도 있었음을 감사해 보기도 하였지 싶다.
솔직해서 혹은 솔직하지 못해서 불편했던 서툴렀던(?) 그림은 아직도 그리고 있는 중이지만 '고통'이란 단어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의심 혹은 질투 시기 그런 어두운 단어들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의식할 필요가 없고 부자는 부자임을 티를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문학의 거장인 부코스키의 묘비명은 '애쓰지마'라고 한다. ㅠㅠ
대단한 사람은 사람인 것 같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 공포 등등의 외롭고 초라한 사슬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읽었던 책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못난 모습과 넘어지는 실수를 허해서 도달할 수 있었던 자유스럽고 자연스럼 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50대에 들어선 난 무엇에 몰입하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나아지고 있는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인지 물어본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뾰족하게 물으니 한숨이 또 나온다. 어쩌면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보통 아짐으로 자신을 몰고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술이란 이름을 달기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감내하고 있는 것인지 묻는다면 난 그 질문에 항복하고 싶다. 나날이 살고 있는 모습은 평범한 아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평범해진다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어쩌면 과분한 욕심에서 나온 사치스런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겪었던 환희와 고통을 아직도 난 기억한다. 뭔가 걸작을 만들려고 달려들었을 때 겪었던 그 불편한 시작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그 소중한 경험을 지금도 기억한다.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스스로를 기쁘게 만들었던 그 순간을 지금 여기에 있는 나도 지금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근데 왜 이리 살고 있냐고? 치열하기까지 했던 해산의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없어 보인다는 스스로의 판단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난 예술가로서 살아가야 할 고통을 못견디는 것이다.
선택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을 향하여 떠났던 그 쉽지 않았던 결정 그리고 결정적인 선택으로 인해 화가가 되었던 사십대의 꿈같은 시간들 이제 오십대는 한국으로 돌아온 선택으로 인해 보통아짐으로서는 행복하지만 예술가로서는 희미한 정체감을 갖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일 것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물가에 가서 수영을 하고 왔다. 몰입이란 단어를 수영을 하는 일에 쓰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지는 않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가끔 자기만족에 빠질 때도 있다.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이 좋고, 솔직해서 좋고, 남 비위 맞추느라 힘을 쏟지 않아 좋고 그래 바로 그게 나야~~~
'죽음'이란 단어는 불편한 단어인 것 사실이다. 언젠가는 나도 묘비명에 뭔말을 남기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그 단어를 위해 남은 시간을 나답게 알차게 살아봐야 할 것 같다. 뭐라고 애쓰지 말고 그냥 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cxnZt7NPiTY
김종서, 아름다운 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