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6, 2025

날이 좋아서

 날이 좋아서, 냉장고를 뒤져 김치찌개를 해먹기로 했다. 그리 거창할 수 없는 일이지만 먹다남은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고 나를 위해 맛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장철이 오기 전에 '묵은 지'를 처리하는 것도 슬기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김치찌개 냄새가 온 집안을 뒤덮어버린다. 김치찌개 냄새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열어놓은 창문으로 날카롭고 시린 바람이 들어온다. 

가을 옷을 제대로 입어 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겨울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망설임 없이 '여름'을 집어넣어야 할 시간이다. 이상하게 올 해는 단풍놀이도 별 흥미를 끌지도 않는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심심풀이로 보았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드라마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전개여서, 나중엔 그 지나침에 지쳐 보고 있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기도 하였다. 리모컨으로 통과시키는 부분이 점점 많아졌던 것은 유감이지만 '저항'이라는 단어의 위대함을 깨닫는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저항'한다는 것은 댓가를 치루는 일이며 희생을 요구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극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노예의 삶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을 선택했던 것은 위대한 일인 것 같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의 노예인가 생각해봤다. 자신을 얽어매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족쇄임에 틀림없다. 일단 난 오늘 김치찌개를 하기로 했다. 매일 감사하고 싶었는데 그만 '욕심'이 난다. 나의 삶에 집중하고  날마다 성장하기로 했는데 어느덧 다른 삶을 들여다 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날이 좋아서 창문을 활짝 열고 김치찌개를 해 먹기로 했다, 오늘은.

Tuesday, October 21, 2025

전화

 아무 때나 전화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언제든 전화를 걸면 받아 줄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적당한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먼저 전화를 하지 않고 살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소극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살았던 것 같다. 외롭고 심심하고 넋두리를 하고 싶어 전화를 하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자신을 지키지 못한 상태에선 위로는 커녕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화벨이 울린다~~~감당할 수 있는지 잠깐 멈칫거리게 된다. 아무때나 언제든지 전화를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삶에 큰 위로가 되는 일일 것이다. 

난 예전처럼 아무때나 언제든지 전화를 할 수 없다. 전화를 걸어봤다, 잠시 흔들려서.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도 없다. 왜 내가 전화하면 다들 바쁜 것인가. 그래, 바쁜 모양이다, 아니면 어디가 아파서 전화도 받을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홀로 있지 못해 전화를 먼저 건 내 잘못이다. 아니면 어느새 길 바닥에 뒹구는 말라 비틀어진 낙엽의 초상화에 새삼 놀란 것인지도.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려니~~~


Sunday, October 19, 2025

벌써?

 '어지러움'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불분명한 어지러움은 어느새 불안, 걱정, 염려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좌절의 무게를 키운다.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발을 내딛는 순간에 살짝 어지러움을 느꼈다. 민감하고 불쾌한 하루를 보내고도 쉽게 그 어지러운 불안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균형감각이 좋은 내가 이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날을 세운 초예민함이 결국엔  더 큰 불안함을 키워 겁을 내며 바깥 출입을 두렵게 만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식단에서 비롯된 부작용을 겪는 것일까 아니면 기승전 나이탓일까. 몇년 전 앓았던 증세가 재발한 것인가. 

담대하게 무식하게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예민하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잡아당기다 못해  무기력해지는 스스로 덫에 걸리고만다.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돌이켜 세워 경과를 지켜보며 몸을 움직여 우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와 초라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국화꽃처럼 있을 줄 알았는데...'초라한 넋두리'까지 남에게 내보이기 싫을 정도의 무력감을 나는 느끼고 있다.  걷고 볼 일이다! 

며칠 겨울을 안내했던 가을 비가 뿌려진 공원의 흙길은 부드러웠다. 초저녁 겨울 바람이 쌀쌀한 동네공원은 조용하다. 날씨에 당황한 사람들이  벌써 따뜻한 곳으로 숨어 버렸나 싶을 정도로.  작년보다 이 주일이나 빠른 겨울의 진격을 받아 들이고 옷을 두껍게 입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긴 여름이 지나갔나 보다. 갑작스런 초겨울 날씨에 나무들도 당황해서 푸른 잎 사이로  서둘러 지난 잎들을 떨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동네 아파트의 감나무들이 주황색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풍성한 모습과 산수유 나무의  빨간 열매들의 알뜰한 풍경은 '늦가을'인데 벌써 초겨울!

무사히 밤을 보내고 초겨울 아침을 맞이하였다. 맑고 푸른 초겨울 의 햇살에 감사하며 여름 옷들을 정리하고 여름 이불을 정리하다 보면 초예민함도 무뎌질 것이다. 하루하루를 지탱했던 일상의 건강한 습관을 소홀히 하고 상실한 탓이 클 것이다. 무덥고 긴 여름을 지나며 바깥 활동이 뜸해진 이유와 수면의 질도 좋지 않았던 이유들을 난 알고는 있다. 일시적인 어지러움이었을까? 아직 나는 병원에 가질 않았다. 

그냥저냥

 오랜만에 오래된목소리를 들었다. 긴 명절 연휴도 끝나고 모처럼 맑고 푸른 가을 날에 시간이 묵은 그리움들을 자극한 모양이다. 목소리들도 나처럼 주름지고 있는 듯하다. 잘 지내냐고 묻는 인사에 '그냥저냥'이라고 슴슴하게 답을 하였다.


Wednesday, October 15, 2025

유통기한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인공 눈물 박스에 찍힌 숫자를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지금이라도 발견을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일단 쓰레기 처리 박스에 집어넣고 볼 일이다. 사용하지 않은 텀블러 하나와 가방 하나 그리고 흰 블라우스 하나를 어렵게 찾아 내어 결정을 한다. 버리자! 매번 느끼지만 취하고 버리는 일이 단순명료하지 않고 심란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청명한 가을 날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창문을 열어 젖히고 못난 마음을 다스려 본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것이라며 곳곳에 물건들이 쌓여있다. 아무런 그적임 없는 작은 스케치북이 여기저기 꽂혀있다. 버릴 수 없다, 아직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흔쾌히 처분을 하지 못한다.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나의 역사를 다 버려버리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힘들다.  그냥 모른 척,  문을 아직도 활짝 열지 않는 슬픈 방이 내게 있다. 


Tuesday, October 14, 2025

맑고 푸른 하늘

 연휴 내내 흐리더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양심없이 흐린 나날을 길게 견뎌냈다. 마침내 청명한 가을 하늘의 맑은 푸른 빛이 선물처럼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다.  한참이나 그리웠지 싶다. 무더운 여름이 맑은 가을로 가는 길이 이토록 비내리는 나날로 우중충하게 지나야 했던가. '가을장마'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다음주는 기온이 한 자리로 가을 없이 겨울로 뚝 떨어지는 날씨를 보일 것이라는 뉴스이다. 급격한 변화에도 놀래지도 않을 것 같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맑고 푸른 기운을 불러 들이고 있는 중이다. 뭔가 '정리'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시작할까 궁리를 한다. '조금씩 천천히' 정리를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물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밤이면  잠을 설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부터 처리하기로 하고,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난초 화분을 과감하게 치워버리는 중에 난초의 뿌리들이 텅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직 살아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 미안하긴 하였지만 내가 살고 볼 일이다. 

온라인에서 저렴한 맛에 저질렀던 잘못된 여름 모자를  쓰레기통에 집어 넣으니 속이 시원하다. 신중한 소비생활을 하지 못해 '이쁜 쓰레기'를 만들고 말았다. 다음 주는 날씨도 분명하게 바뀐다고 하니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여름 옷도 정리하기 딱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저항하지 말고 수용하고, 유연한 자세로 응해야 할 때가 지금, 난 정리가 필요하다. 

Sunday, October 12, 2025

어딜 감히

블러그에 아무 말이라도 그적거리지 않았던 나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막연하고도 불안한 느낌에 쌓여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낸 듯 하다. 뭐에 홀린 듯  허망하게(?) 허구적거리는 느낌은 참으로 괴로운 것으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한참이나 노트북 앞에 앉지 못했다.   

너덜너덜한 남루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블러그에서의 그적거림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습관이라는 뜻밖의 깨우침을 얻었다. 참으로 나라는 사람은 연약하기 그지 없다. 비교하고 질투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신을 들들 볶는 성질머리를 고치지 못하는 나는 어리석기 그지없다. 어쩌면 나의 색을 잃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나를 각성시키기 위해, 보잘 것 없지만 뭔가 성실하게 실행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것들을 걱정하는 무기력한 자신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 아직 나는 진행형인데 왜 이리도 삶이 다  끝난 것처럼 무기력과 좌절감이 드는 것이지? 

흔들어 깨워 벗어나야 한다. 돌이켜 마음을 잡아야 한다. 새로움과 생명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어딜 감히, 어림 없지 '하며 짓누루는 무기력을 툴툴 털어내며 몸을 움직이며 일어나야 한다. 먼저 어리석은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데......그냥 여러 생각말고 몸을 움직여!

대수롭지 않게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애써 다리 힘을 키울 때이다. 몸이 늙어 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 들이고 생활방식도 변해야 한다. 다양한 인지활동과 열심히 사회적 관계의 소통을 소홀히 하고 있는 용감 무식한 나를 발견하고 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