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30, 2025

난 안녕한가?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빗자루를 들고 쓸어야 하는 이 때가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가장 힘든 때일 수도 있겠다.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치워본 경험이 없기에 그 힘겨움을 오로지 알 수는 없다. 나보다 훨씬 나이테를 두른 몸으로 늦가을 비로 젖어버린 낙엽을 땅에서 쓸어 담는 일은 생각외로 힘을 써야 하는 일일 것이다.  이 추운 날에도 등줄기에서 땀이 맺히는 일일 수 있겠다. 

그냥 못본 척 그 옆을 지나려고 하는데,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경비원 아저씨는 참 밝다. 조용히 그 옆을 지나려는 나의 의도는 놀랐다. 낙엽 쓸기도 힘드실텐데......

밖으로 나오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동네를 지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고 젊은이는 일터나 취미 배움터에 있을 시간이니 그것도 그럴만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이 같은 색 조끼를 껴입고 정거장 통유리를 맑게 닦고 있다. 

 동네 마트에서 특별할인한 김장 무 다발의  푸른 머리가 삐져나온 카트를 끌고 가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 모습을 두 세명 보았다. 가을무가 가장 맛있을 때 아닌가. 배추 한 포기를  구입해 집으로 향하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거동이 불편한 부인을 부촉해 함께 걷는 노부부,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건강한 할머니들......추운 겨울에도 그렇게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매서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이파리들을 서둘러 땅으로 내려놓고 있는 중에도 복숭아빛으로 물드는 단풍나무가 아직 이쁘게 물든 가을을 그림처럼 달고 있었다. 빨간 단풍이 아닌 복숭아빛이다! 귀여운 국화꽃이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것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난 안녕한가? 



Thursday, November 27, 2025

혹시나, 만약에, 어쩌면

 분명 날씨 예보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하는데, 갑자기 온갖 먼지를 다 씻어낸 맑은 햇살로 온 집안을 비춘다.  덩달아 우중충했던 기분이 빗물과 함께 씻겨 나가고 햇살 가득한 환한 느낌이 든다. 감사~~~! 선물이다!

 생각보다 춥겠지만 동네 공원 마실이라도  다녀오면, 혹시라도 들이닥칠 우중충한 에너지를 마저 몰아낼 것 같아 다시 날씨를 확인해보니 온 종일 비가 온단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인가 보다. 그럴 수도 있지!  비가 내리고 나서 겨울 추위가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생각보다 바깥은 더 추울지도 모른다. 

읽을거리라도 있으면 방전된 내적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을까하여, 최근 베스트 셀러 책들을 검색해 보아도 그닥 끌리지 않는다. 책장에 남아있는 오래된 책 한권을 챙겨두고 책상 앞에 앉아 그냥 그적거리고 본다. 

'든든하게 점심을 챙겨먹고 장갑과 목도리를 두르고 온 몸을 겹겹이 싸매고 나가볼까?'  내적 갈등이 잠깐 일었지만 비가 내리는 추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최근들어 '혹시나, 만약에, 어쩌면'  이와 같은 단어로 시작되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주 잠식될 때가 있다.  생각에 생각을 무는 생각을 멈추고 바깥으로 후딱 나가야 하는데 자꾸만 부정적인 에너지를 당기고 있다. 일단, 먹고 힘을 내어야 한다. 뭐가 맛있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나. 

금지하고 있었던 '소금빵'을 구입해 먹다남은 닭가슴살과 게맛살 그리고 야채를 넣은 샌드위치를 해먹었다. 행복했다, 그 순간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곧바로 실내 자전거를 한 시간 정도 타야 했지만서도. 때때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살 것 같다. 단순 탄수화물인  밀가루나 떡으로 된 탄수화물을 실컷 먹지 못한 탓인지 사는 것이 때때로 맛이 없다. 

 

Sunday, November 23, 2025

어라, 늦가을

 어라, 아직 가을이다. '늦가을'이란 단어로 부르고 '초겨울'로 불러도 될 것 같은 날이다. 추위를 타게 된 난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왔다. 땀이 살짝 나며 기운이 돌며 좀 살 것 같기도 하다. 집안에 있으면 마음 속에 꽈리를 틀고 고개를 쳐드는 부정적인 생각과의 전투에 쉽게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기력한 긴 터널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깨닫는다, 어리석게도. 

선물처럼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선물처럼 떨어진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영화같은 풍경에 위로를 받는다.  가을 없이 겨울이 들이닥친 작년엔 푸른 낙엽을 밟으며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던 그 풍경에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던가. 

붉은 단풍나무 아래에서, '어쩌면 이리 예쁘찌!'  나이 지긋한 여인의 혼잣말이 들린다. 햇살에 반짝이는 붉은 별들을  자신의 스마트폰에 기억하며 저장한다.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던, 무기력했던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고 말았다. 어찌나 붉고 아리땁던지. 선물이다!

밖으로 나와 두 팔을 흔들고 두 다리로 성성한 걸음을 누리는 것이 커다란 치유였던 것을 잊고 살았다. 더 힘든 시간속에서도 걸으며 잘 견뎌냈던 나를 잠시 잊어버렸던 것이다. 

 동네 공원엔 지난밤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초저녁엔 보이지 않던 산수유 붉은 열매들이 보였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노란 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알을 줍는 모습,  혼자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할아버지 모습, 아픈 사람을 부축해 함께 걷는 모습,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줌마......그리고 늦가을 햇살에 피워낸  붉은 장미 몇 송이와 분홍 철쭉꽃 몇 송이를 보았다. 



Monday, November 10, 2025

겨울이 오는 중

 겨울이 모든 것을 얼려 버리기 전에, 맑은 햇살과 선선한 바람으로 여물어진 가을 무를 데려와 깍뚝이라도 후딱 담아야겠다.  가을 무 한 다발을 들고 집까지 오려면 어깨가 힘들 것이고, 집앞까지 배달을 고려하면 몇 다발을 더 구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급시들해진 주부본능으론  그 엑스트라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문제를 간과할 순 없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지금은 새콤한 '깍뚝이'나 슴슴한 '동치미'라도 담아야 할 것이라고 늘어지는 게으름을 후딱 일어나 떨쳐내고 볼 일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눈이 내리는 날처럼 고요하고 흐린 날이 오늘이다. 시기적으로 입동이 지나갔지만 이번 겨울은 작년에 비해 늑장을 부리는 모양이다.  길가 가로수들이 뜻밖의 '선물'처럼 노랗고 붉게 물들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푸른 가을이 떨어졌던 작년의  풍경이 아니다, 내 마음의 겨울 풍경과 달리. 

한동안 친밀했던 젊었던 옷들을 마침내 헌옷박스에 집어 넣었다. 나의 청춘을 헌옷 박스에 함께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컴컴함 박스 속으로 들어가는, 벗겨진 친밀함을 보지 않으려고 후딱 밀어 넣었다. 새삼스럽게! 

미그적거리는 자신을 한참이나 꾸짖는 중에도 겨울이 성큼성큼 오는 중이다. 

Tuesday, November 04, 2025

이미 겨울

 선풍기의 회전날개에 들러붙은 먼지를 제거하고 에어컨 필터의 먼지를 씻어내며  겨울을 맞이하는 하루를 보냈다. 길가의 가로수들도 노랗고 붉게 물든 시간은 분명 가을이며, 베란다 창가로 들어오는 맑은 기운도 분명 가을인데 내 마음은 이미 겨울이다.

삶은 '태도'에 달려있다고 긍정적으로 애를 써본다. 이기고 지는 승부욕을 버리고 링에서 내려온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배앓이'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ㅋㅋㅋ 어쩌면 아직 살아있는 반증 아니겠는가. 마음의 평온함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기로 한다. 감당할 수 없을 땐, 후딱 도망가고 보는 것이 나은 선택인지도. 

눈이 부시게 날이 맑아 창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Monday, November 03, 2025

다섯, 넷, 셋, 둘, 하나

 치과에 가기 전에 차분하게 책상 앞에 앉았다. 치과에 가는 것이 정말 두렵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단체 벌을 받을 때, 기다리는 동안의 쿵쾅거리며 심장을 때렸던 시달림이 생각났다. 임시로 장착된 치아를 시험운전하는 한 달 동안 내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휩쌓여  살고 있는 자신의 연약함이 참으로 당황스럽다.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서 보수 보완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아직도 나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낡아가고 늙어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반갑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이 자신 안으로 엄습해 들어올 때, 숫자를 거꾸러 세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후~~~, 그만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여 행동을 실천했던 어제의 하루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일이 시야를 좁히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성장에 집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