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30, 2024

지금은 지금

 '다리 성성할 때 실컷 돌아 다니셔'하며 지팡이를 짚고 힘든 발걸음을 옮기는 더 주름진 할머니는 말씀을 외쳤다. 바쁜 걸음으로 이웃 아파트에서 열린 장에 향하던 길이었다. 흰 머리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쌩쌩하게 길을 건넜을까. 멀리서 머리 색을 보고 같은 나이쯤으로 짐작을 한 것일까 싶기도 하고, 길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잃어버린 두 다리의 소중함을 외치는 하소연(?)에  '네 네'하며 응대를 해 드렸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기쁨'은 3미리 두께의 부드럽고 말랑한 연골을 지켜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다 달아지기 전까진 아무런 징조가 없다가 갑자기 통증이 있어 병원을 가면 소중한 연골이 실종되어 있다는 정보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염려와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려, 체중을 좀 더 줄이고 다리에 근육운동을 해서 연골에 부담이 가지않는 더 성실한 노력이 내 삶에 필요가 있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지금은 지금, 나중은 나중'이다~~~미리 불안 비용을 치룰 필요없이 오늘을 성실하게 기본에 충실하며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나답게 살면 되는 것을~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제도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쓰러지며 주저 앉았지만 걷고 걸어 이제 한 해가 매듭을 짓는 시간에 접어 들었다. 

올해도 푸른 낙엽으로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 한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쉽게 보지 못하니 그 귀함을 알 것 같다. '있을 때 잘 하자~~~'


Thursday, October 24, 2024

있는 그대로

 나이가 들면서도 오래된 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서로의 장점을 칭찬해 주고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품어주는 '넉넉함'이 동반되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을까. 

길을 오가다 보게되는 다정한 친구끼리 수다를 나누는 모습은 마음 속에 부러움을 만든다. 그렇지만 오래된 친구에게 쉽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못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은 지금의 시간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한 것 같다. 


Wednesday, October 23, 2024

나답게

 하루를 쉬었더니, 월요일 같은  목요일 아침은 '올 들어 가장 추운 가을 날'이라고 하니 겹겹이 옷을 껴입었지만 약간의 싸늘한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뀌면 왜 항상 입을 옷에 대한 당황감을 갖게 되는가. 노쇠한 기억력 때문일 수도 있겠고 정리 정돈의 어리숙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새로운 환경과 더 성숙한(?) 자신에게 걸맞는 옷을 선택하는 것은 어떤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작년엔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닌 '변화'라는 것이 있고 그것에 맞는 '적당함'을 찾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 '직무유기'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아직 남아있다. 다행히!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면 옷가게들이 있다. 가지고 있는 옷에 대한 어울리는 아이디어를 옷가게 사장님의 연출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발품을 팔아 비교적 가성비가 좋은 가게를 방문하여 적당한(스타일이 확실한) 바지를 구입하고 나니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ㅋ 가지고 있는 옷에 이리저리 잘 어울리며 무엇보다 자신다운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아직도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등을 펴고 자신있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으면 되었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오늘이다! 허투루 보내지 말고 나답게 홧팅~~~



Monday, October 21, 2024

처음을 놓아야 할 때

 추위를 재촉하는 가을 비가 오는 화요일 아침이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기 전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챙겨보니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비 오는 날의 습기를 다시 머금기 전에 푸른 공기와 맑은 햇살에 잘 말려진 옷가지들을 서둘러 정리해야 하고고,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수선 집에서 맡긴 옷도 찾아와야 하고, 아파트 장에서 신선한 먹거리들도 구입해야 하고, 세탁소에 맡긴 여름 옷도 찾아 와야하고, 여름 이불도 정리해야 하고......

'삶은 타이밍이다~~~'

끝은 아쉬운 말이 아니라 설레는 말이다. 가을 끝에 첫눈이 있고, 사춘기 끝에 첫사랑이 있고, 백수 끝에 첫 출근이 있다. 모든 끝은 자신이 있었던 자리에 '첫'을 데려다 놓고 떠난다.-정철

끝자락에 처음을 놓아야 할 때이다. 



Sunday, October 20, 2024

표범과 나

 표범 무늬가 프린트 되어있는 블라우스를 챙겨 입고 노트북을 켰더니 표범이 나뭇가지 위에 팔과 다리 그리고 꼬리까지 올리고 앉아있는 사진이 스크린에 떠 있다. 표범은 홀로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잠시 높은 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다음 먹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들판에서 빠져나와 높은 나무 위로 올라와 시야를 바꿔보는 것도 슬기로운 생활일 것이다. 

흐린 월요일 아침에 왜 표범 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앉아 있냐고 묻는다면, 큰 아들의 멋져 보인다는 옷평이 기억나 챙겨 입었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나의 옷들도 기억을 갖고 있다. 표범 무늬를 입어도 '야'하지 않은 그 시점이 어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선을 넘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젊은 에너지와 열정을 다 기억하고 떠오릴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표범 무늬 블라우스를 입어 본다. 

 쌀쌀한 월요일이니까 귀걸이도 좀 큰 것으로 하고 나가기로 한다. 처음 살아보는 오늘이니까 스스로 자축하는 것으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자유롭기까지 하다. '자기만족'이란 행복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챙기면 되는 것이다. 삶은 셀프이다! 늙고 지친 투덜거림을 하지 않아도 평온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한다. 



Thursday, October 17, 2024

보람찬

 '보람'이란 단어는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살았나 보다. 다른 날에 비해 분명 더 피곤할 것 같은데 쓰러지지 않고 아직 남은 힘이 있지 않은가. 그 동안 '나'라는 사람은 '보람찬'이란 단어를 챙기지 못하고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커다랗고 노란 달이 밤 하늘에 나타났다. 큰 달을 보며 술 한잔 할 수 없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Tuesday, October 15, 2024

드넓은 하늘

 아침 하늘이 잔뜩 흐리다. 비가 내린다고 하여 손잡이가 있는 큰 우산을 가지고 나갔던 어제는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져 주위 눈치를 보며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했다. 오늘도 흐리고 비가 내릴 것이며, 흐린 날씨에 오히려 구름에 기온이 갇혀 날씨가 더 온난할 것이라고 한다. 

 이른 저녁을 챙겨먹고 나간 풍경은  아직 빛이 남아 어슴푸레하다. 어두움이 내려 앉는 시간은 편안하기까지 하다. 아파트 대추 나무에 무겁게 매달려 있던 붉은 대추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붉은 대추가 마음 속에 있으니 없어진 붉은 대추가 보인다. 고개를 돌려 아파트 주위를 살펴보니 감들이 붉게 물들어간다. 감나무 나뭇잎이 떨어지면 둥글고도 붉은 자태가 시적으로 서 있을 것이다. 

긴 여름하고 바로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뉴스에 울긋불긋한 전형적인 단풍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노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도 이제 귀한 일이 되어버려서 발품을 팔아 단풍이 고운 곳으로 찾아 가야 할 것 같은 사실을 받아 들이기엔 세상의 변화가 당황스러울 뿐이다.  

 동네공원에서 늦게나마 활짝핀 코스모스들의 핑크 빛 무리를 보았다. 이상하게 코스모스 꽃을 보면서 도화지에서 뭉게지던 어린 시절 크레용이 그린 꽃이 생각났다. 꽃의 색이 선명하게 칠해지지 않던 그 순간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실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하필! 도화지에 안착되지 않았던 미끈거리던 느낌과 얇디 얇은 도화지의 불편함이! 난 아직도 멀었다.

푸른 가을을 걷고 걸으니 어두움이 내려 앉으며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고개를 들어 올려 본 푸른 밤이 넓고도 둥글게 펼쳐져 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드넓은 하늘! 감사하다!!  

 


Sunday, October 06, 2024

그래선 안된다고

10월 7일 월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많던(?)징검다리 붉은 휴일을 다 보내고 맞는 월요일은 긴장감이 들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일요일 오후는 뭔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사람처럼 불안감이 가득하다. 어느새 10월 7일이 되었단 말인가!

'가을'다운 가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녁 공원 산책을 나갈 때 장갑을 끼는 사람을 보았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져 공기가 쌀쌀한 반면 낮엔 태양이 뜨겁고 하여 하루 일교차가 심한 날씨다.  감기에 딱 걸리기 좋은 달! 인디언들은 10월을 가난해지기 시작하는 달,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말하는 달, 시냇물이 얼어붙은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큰 바람의 달, 잎이 떨어지는 달 등등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겪고 있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양식을 갈무리 하는 달'이란 이름은 뜨거워진 지금 여기서도 얼추 틀리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 마주하는 일상의 것들은 소중함을 갖고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평범한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행은 좋은 것이다. 우선 동네 공원의 관리되지 않아 번지르하지 않은 모습이 주는 평안함과 집에서 직접 차린 소박한 먹거리가 주는 가벼움이 좋다. 날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잠깐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기에 유익한 것이다. 

여행중에 붉은 '꽃무릇'이란 꽃을 보게 되었다. 황금 벌판 주위로 붉은 꽃무릇(석산) 꽃들이 피어있는 동화같은 이상한(?)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을에 붉은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지면 잎이 돋아나와 겨울, 봄, 여름을 푸르다 사라진다고 한다. 

 

털썩 주저앉아버리고만 

이 무렵


그래선 안 된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안간힘으로 제 몸 활활태워 

세상, 끝내 살게 하는


무릇, 꽃은 이래야 한다는 

무릇, 시는 이래야 한다는

                                                       -오인태 시인, 꽃무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