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27, 2016

On Trail

가을비가 내리는 어두움을 앞두고 둥글레차를 마시며 괜시리 밀려오는 배고픔을 참아본다. 살찌는 시간이 된 것이라는 오래된 세포속의 본능들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베란다에 서있는 화초들에게도 물을 주지 않는 게으름은 무엇때문일까? 버리지 못해서 비롯된 것임은 알고는 있으나 오늘도 그 깔끔한 결단이 실패한 것을 모른 척 한다.

그래서 배가 더 고픈것인가?

지난 토요일에 둘레길 걷기를 준비운동 없이 한 탓인지 아니면 종아리 근육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허약함 때문이었던지 아리는 고통을  견디다 그만 음식으로 극복하고는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산을 오르지 않았으니 연약한 마음에 둘레길 걷기는 담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도한 것이었는데 그만 셀 수 없는, 인내심을 시험하던 그 막막한 계단에서 안쓰던 근육을 심하게 사용하였나 보다. 그리하여 신음하며 먹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푸른 나무들이 만드는 그림자와  푸근한 산길을 걷는 건강함이 있었기에 시간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 산행을 할까 하는 푸른 마음이 들기도 하였던 것 기억하고 싶다.  가마니가 깔려 있는 둘레길을 걸으며 가만히 있지 않으니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아재게그까지 겉들이면서 침묵하며 걸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끄럽기 그지없다. 나이가 든 것인지 아니면 이제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인지 시끄럽게 이야기 하고 가는 사람들로 부터 불쾌감을 받았기도 하다.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으며 계속 가야 하는 것인지 하며 수다떠는 사람들을 피해 산속을 걸었다.

입 다물고 조용히 산속을 걷는 것이 좋다.  숲속의 바람소리도 듣고 새소리도 듣고 그런데 사람들 떠드는 소리는 듣기가 싫은 것을 새삼 인지하였던 걷기였던 것 같다. 이곳의 사람들은 가끔 예의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주위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일에 집중하며 소리를 내는 사람들, 기차안에서 긴 통화를 하며 여행의 기쁨에 쓴맛을 더하는 사람들,  어깨를 치며 앞질러 버스를 오르는 사람들...그러려니하며 저리살지 말자며 하다가도 욱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무슨 영양소가 부족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홀로 늙으신 몸으로  산을 오르던  할머니가 있었던 광경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더 젊은 사람도 힘든 오르기를 하고 계시는 것인지 생경하였다. 산을 오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는거구나~~~

참고로, 트랙킹을 한다는 것이 하이킹을 하였다. 




Wednesday, September 21, 2016

Nabi

맑은 하늘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다. 높은 건물을 올리려고 땅굳히는 소리와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 소리보다 새들의 노래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바깥은 청명한 가을의 어느날이다. 아침 햇살이 두려운 나머지 냇물이 흐르는 원시적인 천가를 내려보게 되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날씨탓으로 덩쿨들이 약한 꽃들을 덮어버려 가을 꽃을 다양하게 볼 수 없는 그림이다.  세금 모자라 방치한 모습이 기분을 잠시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세련되게 정리되지 않는 현실에서 꽃한송이 발견하는 기쁨으로 흔들리는 코스모스에게 눈을 마주쳤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묶음이니 어찌할 수 없을 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꽃들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 어쩌면 스스로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찢어진 청바지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물가로 향했다.  김홍기님의 '옷장 속 인문학'을 읽은 후 옷을 입는 것이 더욱 즐거운 일이 된 것 같다.  자신을 존중하는 즐거움은 맛보았으나 타인들은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점에서 난 또다시 가벼운 인사라도 기분좋게 만들 줄 알던 그곳의 사람들이 그립다. 조그마한 관심을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ㅋㅋㅋ 파넬라 빵집의 여종업이라면 분명 관심을 보여줬을 터인데...결국 셀프로 즐겁고 말았지만 말이다.

코코 샤넬이 "우아함은 거절이다"라고 했다는데, 덧셈의 미학이 아닌 뺄셈의 미학을 기저로  절제와 거절의 선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결국 자신을 자신답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순한 선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였다. 다양성보다는 획일적인 이곳의 시장의 형태를 고려한다면 물론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으니 결국 발품을 파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곤하여 동네 옷가게에서 몇번 옷을 구입했더니 온동네 아짐들이 비슷하다. 결국 좀 멀리가 저렴한 옷을 구입했더니 바느질이 엉망하여 스스로를 싸구리로 만들고 마는그런 과정을 걸쳐 자신에게 생명력을 줄 수 있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옷을 구입하기 위해선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주제파악은 잘하고는 있는 것일까 하는 무서운 질문하나가 쑥 들어 온다. 꽃같은 열정을 아직 갖고는 있는 지 말이다. 아침 물가에서 어느 여인이 나이를 물었다. 대체 무슨 에너지가 그리 넘치시나이까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땐 언제나처럼 내안으로 밀어넣은  밥타령을 한다. 비록 과도기의 시간을 꾸리고는 있지만서도 나다운 에너지가 없는 것은 아니니 물속에서라도 열심히 내게 있는 좋은 에너지를 일으켜야 한다는 사실을 그녀들은 모른다.

언젠가 나비처럼 날아오를 날이 올겨~~~
something like happiness, mono print

Tuesday, September 20, 2016

Name

까만 시간에 컴앞에 앉아 나의 오래된 이름이 불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고보니 물가의 여인들은 좀처럼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아무 누구도 아닌 사람으로 왔다갔다한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는 생각이 위장이가득찬 지금 떠오를 것은 무엇인가. 나이는 궁금하면서도 이름은 묻지 않는 문화가 왜 이리도 불편한것인지. 이름을 기억하며 안녕하던 사람들이 그리운 것일까. 이대로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시간을 계속 꾸려나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어두운 동굴의 끝없는 막막함에 둘러져 있는 느낌을 견디는 시간은 밑으로 밑으로 쳐지고 있는 것인지.

땅이 흔들리는 여기에서, 뉴스에서 나오는 지진시 챙겨야 할 최소한의 물품을 바라 보았다. 뉴스가 너무 잘들리는 것일까 아니면 텔비 보는 시간이 많아서일까. 불안과 긴장감이 잔뜩 몰려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불행함으로 얼굴이 굳어진다. 몸과 마음을 바삐 움직이는 것이 예측할 수 없는 공포로 부터 좀 더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진 공포가 하나 더 첨가된 울 나라는 어찌 되는 것이지? 불행중 다행으로 며칠 하늘이 맑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푸르고 높은 하늘에 흰구름이 흘러가는 풍경이 이리도 행복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인지 모르고 살았다. 맑은 공기라도 있었으니 족한줄 알고 밀려있는 집안일을 우선 하기로 했다. 마늘을 까다가 손가락에서 피를 보았다. 지진 소식에 눈이 멀어 그만 사고를 치니, 비상 약품들이 눈에 쉽게 보이질 않는다.

비상시에 무엇을 챙겨야 한다고?
뉴스에 따르면 베낭에 최소한의 물, 고열량 음식(라면, 비스켓 초코렛), 비상약, 라디오, 손전등, 물휴지, 침낭,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옷...등을 챙겨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지진을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서  겸사겸사 여러 위험에 대비하는 것도 나쁠 것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지진시 집안가구로 인한  압사가 많은 것을 고려해서  가구배치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정보에 이번 주말이 바쁠 것 같기도 하다.

내일이 오면 물가로 갈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지만,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물가에 가서 늘 하던대로 밀고 땡길 것이다. 이름없이 노는 물가로 내일도 갈 것이다. 가슴이 희미하게 뛰질 않는가~~~

Monday, September 19, 2016

Red/Blue

Blue ii by Joan Miro

큰아들과 '후안 미러'의 작품들을 보러 댕겨 온 늦은 여름날을 기억하고자 그의 작품 이미지를 올려 본다. 미술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지 싶다.공간이 비좁아서 감상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점은 아쉬웠지만 위대한 님이 태어난 스페인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출렁였다. 스페인 천재 조각가 가우디를 존경했다는 미러님의 순수한(?) 작품을 지나던 똑똑한(?) 아이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것은 낙서같아요~~~ 물론 위작품을 보고 한 평은 아니었다. 

아빠가 뭐라 하셨을까요?



윤종신, 본능적으로

Shape Music

덥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한달이라는 숫자가 과거로 넘어갔다. 일상의 습관처럼 아니 의식처럼, 노트북 앞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찬바람 보다 먼저 일어난 것을다행으로 여기기로 한다. 비교적 서늘한 바람이 이는 가을이라는 곳에 속해 있을 때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살아있는 모습중에 아름다운 것임은 알고는 있으나 몸과 마음이 게을러 자꾸 드러누워 있고 싶기도 하다.

아직도 그늘이 있는 곳을 밟고 있는 시간이다. 어두운 방안에 몸을 가두지 않고 밖으로 나간 것은 물가의 상쾌한 즐거움으로 월요일을 여는 좋은 출발이었지 싶다. 명절 끝이라 물가의 여인들은 무거운 몸을 바삐 움직여 살이라도 털어내는 양 에너지가 넘치는 그림을 보여 주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는 주름진 여인들의 건강한 대화를 들으며 혼자 잘노는 쓸쓸한 모습을 잠깐 인식하기도 하였다. 마음맞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부러워했지 싶다. 더 주름지기전에 정스럽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씁쓸함이 소극적인 고독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서도 어쩌겄는가.

따뜻한 미역국을 끓이고, 구수한 둥글레차를 끓인 월요일 오후는 차들이 달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열린 창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 또한 감사하게 누리고 있는 중이다.작품 이야기를 하는 날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것 또한 아직 내안에 남아있다.다행인가?

그동안 집중했던 수묵화 흔적들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일상의 생활로 파묻히지 않도록 세우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 맑은 시간이다. 억지로라도 나다운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치열하지 않고 미치지 않아서 그냥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무표정하고 말이 없는 그런 얌전한 여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고, 색이 없는 무난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두려운 생각이다. 나다운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직은 끔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칡꽃
이진욱

첨탑을 타고 오르는 칡넝쿨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무모한 줄 모르고
고압에 닿을 때까지
사력을 다해 기어오른다

사랑을 위한 등정이라면
말리고 싶다
저긴, 너무 위험한 길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몇 볼트의 벼락이 필요 할까

뿌리에서 멀어져 
더 아찔한, 

칡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