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20, 2016

The eyes of Justice

'My eyes went Dark'이란 연극을 관람하게 된 것은 초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마르지 않는 촉촉함이었지 싶다. 종로 5가에 위치한 두산 아트홀 조그마한 공간에서 의자 4개를 두고 연극인 세사람이 펼치는 어두움과 빛은 두다리 내리고 사는 세상에 대한 더 풍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관람을 일주일에 한편 정도 하는 사람으로서 간만에 라이브로 펼쳐지는 연극이란 열정이 펄떡이는 현장에 함께 하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가슴뛰는 살아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값을 아껴서라도 연극을 즐기고 싶다는 다짐이 희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낙엽이 뒹구는 오래된 거리를 걸어왔나 보다.

연극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기도 하다. 총체적인 부실로 인한 대재앙을 두고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라며 그 지독한 슬픔을 덮어버리고 살아 남은자들은 잘살아아야 한다며 그렇게 날카롭고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언제나처럼 삶의 모습인 것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연극에선 어린 두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주인공의 슬픔이 어떻게 현실의 달콤한 협상과 위로를 마다하고 나름의 진실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국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 죄책감없는 사람을 처리함으로 자신도 그 댓가를 치루는 과정을 걸쳐야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응징은 한 것 같기도 하다. "정의란 무엇이지?" "정의가 있었나요?" 연극중에 가장 남는 대사로 기억된다.

온통 회색빛인 월요일 아침에 언제나처럼 물가에 다녀왔다. 물가의 여인들은 김장을 다들 끝낸 이야기로 피곤하다는 사실에 유난히 김장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 되는 것 같다. 부지런한 여인들이 사우나장에서 흥근히 땀을 빼며 일상의 잡담을 주고 받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잘못을 인정 못하는 지도자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은 나라 걱정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은 나라가 걱정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것인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대응이 이 나라 내치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어디로 갈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대통령의 탄핵이 정치적인 문제라면 어서 빨리 정치 전문인들이 정신 차리고 창피한 지도자를 신속하게 대통령 권한에서 내려오게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그것은 그렇고, 비가 오기 전에 김치 몇포기를 담아야겠다. 그래야 토요일에 나름의 정의의 빛을 비추러 나갈 수 있을 터이니...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을 촛불을 들고서  밖으로 나갈려면 오늘 난 김치를 담아야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KhsHGfrFmY
삐딱하게, G-dragon

Wednesday, November 16, 2016

The Beauty Stand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

두 팔도 없이 삐딱하게 서있는 아름다움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이 더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기원전 130-100년전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시대정신에서 비롯된 완벽한 팔등신 인체비율을 하고 서 있는 여인은 부드럽게 미소짓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섬세한 실루엣 자락으로 가릴 것 가린 그 우아함에 다들 넋이 나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보통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들어 올려 사진을 찍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 그 오래 전 사람들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름다움으로 선다는 것은 경직되지 않는 유연함을 갖는 것이며 적당한 의문점들을 품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 미상의 작품이며, 팔이 유실된 그 형태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상상력을 을 확장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힘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명세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내안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기 위해 미장원에 다녀온 날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처럼 머리를 정리하고 나면 신선한 에너지가 새로 솟아날 것을 기대하며 미장원 거울 앞에 앉았다. 이상적인 절대미와 거리가 먼 아짐이 화장기 없이 앉아 있는 거울속에 여인을 바라보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난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 같기도 하다.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위해 영양제를 구입하고 헤어 관리 방법에 대한 정보도 구한 것을 보면 아직 여인으로서의 나를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을 때가 언제였든가? 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을까 한다. 아직은 그 대답으로 하고 싶다.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리고 나만의 독창적인 것을 치열하게 창출했던 그 순간의 내가 나답게 가장 아름다웠을 것이다.

나답게~~~





Tuesday, November 15, 2016

Be Kind~~~

-from Paris 2016

배추김치를 담고, 아들들이 좋아하는 고추장 불고기를 준비한 어두워진 오늘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이다. 고운 가을 빛으로 물든 옷을 아직 입고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아직은 낭만적라는 것을 쉽게 변해 가는 스스로에게 다짐해 주고 싶은 화요일은 알뜰하고 피곤하다.

자신의 일을 갖고 있는 전문 직업 여인들이 무척이나 부러운 시간이다. 그녀들의 성공에 조바심이 일어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니나,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감이 허허롭기도 하면서 때로는 그 일상의 소소한 의미가 너무 쉽게 탈색되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파를 다듬다가, 우연히 텔레비젼에서 백자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좌우 균형이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하게 마무리가 닫혀있지 않아서  더욱 우리 사람들과 닮아 있어서 아름답다는 조선의 백자의 아름다움에 한번 고개를 들어 쳐다 보게 되었다.  불속에 들어가 구어져 나오는 과정을 걸쳐서 나오는 도자기의 기적같은  이야기가 아득한 시간의 가슴 뛰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던 것 같다.

무심하게 도자기를 만들며 시간을 꾸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또 무엇인지?

물가에서 작은 수영복을 입을려고 하자면  타인의 몸을 옷속에 집어 넣을려고 달려드는 이름모를 여인들은 대체 누구들이란 말인가! 이곳 한국 아짐들은 때때로 이름도 없이 친절하기도 하다. 기어이 도움의 손을 뻗어 아기처럼 옷을 입혀 주는 여인들 땜시 아침에 웃고 말았다. 그것은 아기가 된 기분이라고 해야겠다. 누가 나를 옷을 그리 야무지게 입혀준단 말인가~~~ 멀리 있는 그곳 물가에선 있을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가끔은 이곳 아짐들이 참으로 푸근하고 정스럽다. 그리고 서로가 이름도 묻지 않는다.

가장 익숙하지 못한 '평영'을 마스터하고 나면, 2016년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왜 못하는 것인지 묻는 심각한 질문에 젊은 샘은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연습을 하시지 않잖아요" ㅋㅋㅋ 불편한 영법인 '평영'을 극복하고 하고 있노라면 추운 겨울의 시간이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



Tuesday, November 08, 2016

어느 멋진 날에

Wind behind the Wall, Oil Painting on Canvas, 40x40 inches

김동규, 10월의 어느 멋진날에

Monday, November 07, 2016

After the Rain

늦은 가을 비가 내리고 나면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 하여 겹겹이 옷을 껴입고, 털목도리를 하고, 장갑을 끼고 아침을 걸어 물가에 다녀왔다. 을씨년스럽게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화창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기대밖의 포근함에 당황하기까지 하였지만 중년 아짐처럼 우아한 낙엽들이 날리는 초겨울 그림에 행복해 본다.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을 핑계삼아 새로운 책을 구입하러 서점에 나가고 싶었지만, 택배 예정시간이 들뜬 아짐을 집안에 가두고 만다. 더디 마르는 옷들이 밀리는 빨랫감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축축한 서늘함에 전기요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닐을 덮고 서있는 선풍기가 있는 여름을 집어 넣는 일이 속도를 내지 않는 것은 언제나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군살처럼 들러붙은 게으름은 언제나 변명과 핑계거리들을 잘도 찾아낸다.

낯선 이곳은 김장철이다. 길거리에 동치무 다발이 나와있고, 유난히 비싼 배추도 누워있는 그림이 연말로 갈 것이다. 두고온 그곳엔 지금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휴일을 위한 광고들이 라디오와 텔비에서 가족적으로 흘러 나오고 있을 시간이다. 겨울로 들어가는 2016년에 감사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는 일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지내온 것, 더 건강해진 것, 가고 싶었던 곳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 3년 동안 기다린 일이 해결된 것, 하늘 위에서 라면 먹은 것 ㅋㅋㅋ, 옷사이즈 한칫수 줄인 것, 얼굴 좀 작아진 것 ㅋㅋㅋ, 그림 그린다며 허세로 스튜디오 차리지 않은 것 ㅠㅠㅠ, 물가에서 아직 열심을 내는 것, 지하철을 타고 다닌 것, 많이 걸은 것, 옷 이삐게 입을 줄 아는 것, 등등을 감사하고 싶다.

물가에서 입을 닫고 마음을 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니 아무 마음없이 몸을 움직였다. 아직은 쓸만한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인다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셀프로 기분을 업시키는 나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멋진 여인이라 하면 나의 단점을 잘아는 친구가 웃을려나?

from Monet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눈시울이 붉어짐이었다. 어떤 예술가의 작품앞에서 그런 가슴밑에서 올라오는 정체모를 울컥함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카메라에 작품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모네의 정원은 나를 지배하였음을 기억한다. 그의 브러시 터치가 언젠가 찢어 버렸던 나의 그림에 대한 방황했던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순간 하늘 빛을 담아 색이 변하고 물결이 바람에 춤을 추는 그 화가의 정원을 어찌 흔들리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 많은 연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지 존경심이 일어났다.

November

The Corner in My Garden, Mix Media, 40x40 inches

울긋불긋한 단풍을 입은 십일월의 날들은 풍성하고 아름답다. 당장이라도 붓을 들고 풍경화를 그리고 싶을 만큼 그 경치가 시처럼 운치가 있고 가슴이 시리다. 추운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습관처럼 알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얼어붙은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초미세먼지가 가장 두려운 겨울의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몇번의 겨울을 나름 잘 보내지 않았던가!

루브르를 다녀온 인문학자의 책은 한번 더 시간을 만들어 읽어 볼 생각이다. 10년 동안 거주하며 쓴 책이라고 하기엔 왠지 싱거운 맛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프랑스 작가가 쓴 감성주의 자에 대한 책 또한 좀 실망스러운 것이 이 책 또한 일본 심리학자들의 책보다는  마음에 담기질 않는다. 결국 책을 덮고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그래, 걷는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을 힘들게 찾아 갔지 싶다. 새 소리 나고 물 소리 나는 둘레길을 상상했던 탓인지 북한산 둘레길이 소란스러워서 우리집 뒷산이 그립기까지 하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시끄럽고, 어디선가 유행가 소리 크게 들려오는 둘레길에 그래도 푸른 소나무들이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었고,  고급스런 가을 빛 곱게 물들인 나무들이 이파리를 떨구고 있었다. 사방에 다시 가을이 온 것이다.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빛은 참 아름답다.  오늘 밤 비가 내리고 나면,  겨울로 서 있을 나무들을 보는 것은 추운 일일 것이다. 유난히 값이 오른 배추로 김장을 하고 나면,  올해 월동 준비 끝이라 할 수 있을까 싶다.

감사할 몇가지를 떠올리자면, 좋은 사람과 맛난 점심과 커피를 나눌 수 있었던 것,  무엇보다 두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었던 것, 옷가게에서 필요없는 쇼핑을 하지 않은 것 ㅋㅋㅋ, 전화해서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물가에서 침묵할 수 있었던 것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