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07, 2016

After the Rain

늦은 가을 비가 내리고 나면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 하여 겹겹이 옷을 껴입고, 털목도리를 하고, 장갑을 끼고 아침을 걸어 물가에 다녀왔다. 을씨년스럽게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화창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기대밖의 포근함에 당황하기까지 하였지만 중년 아짐처럼 우아한 낙엽들이 날리는 초겨울 그림에 행복해 본다.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을 핑계삼아 새로운 책을 구입하러 서점에 나가고 싶었지만, 택배 예정시간이 들뜬 아짐을 집안에 가두고 만다. 더디 마르는 옷들이 밀리는 빨랫감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축축한 서늘함에 전기요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닐을 덮고 서있는 선풍기가 있는 여름을 집어 넣는 일이 속도를 내지 않는 것은 언제나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군살처럼 들러붙은 게으름은 언제나 변명과 핑계거리들을 잘도 찾아낸다.

낯선 이곳은 김장철이다. 길거리에 동치무 다발이 나와있고, 유난히 비싼 배추도 누워있는 그림이 연말로 갈 것이다. 두고온 그곳엔 지금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휴일을 위한 광고들이 라디오와 텔비에서 가족적으로 흘러 나오고 있을 시간이다. 겨울로 들어가는 2016년에 감사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는 일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지내온 것, 더 건강해진 것, 가고 싶었던 곳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 3년 동안 기다린 일이 해결된 것, 하늘 위에서 라면 먹은 것 ㅋㅋㅋ, 옷사이즈 한칫수 줄인 것, 얼굴 좀 작아진 것 ㅋㅋㅋ, 그림 그린다며 허세로 스튜디오 차리지 않은 것 ㅠㅠㅠ, 물가에서 아직 열심을 내는 것, 지하철을 타고 다닌 것, 많이 걸은 것, 옷 이삐게 입을 줄 아는 것, 등등을 감사하고 싶다.

물가에서 입을 닫고 마음을 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니 아무 마음없이 몸을 움직였다. 아직은 쓸만한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인다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셀프로 기분을 업시키는 나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멋진 여인이라 하면 나의 단점을 잘아는 친구가 웃을려나?

from Monet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눈시울이 붉어짐이었다. 어떤 예술가의 작품앞에서 그런 가슴밑에서 올라오는 정체모를 울컥함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카메라에 작품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모네의 정원은 나를 지배하였음을 기억한다. 그의 브러시 터치가 언젠가 찢어 버렸던 나의 그림에 대한 방황했던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순간 하늘 빛을 담아 색이 변하고 물결이 바람에 춤을 추는 그 화가의 정원을 어찌 흔들리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 많은 연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지 존경심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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