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8, 2025

나의 오버

 나의 무장아찌는 꼬들거리지 않고 이상하게 아삭거린다. 생각보다 간간한 맛에 식초를 첨가했더니 아삭거리는 무맛과 쪽파의 향긋한 맛이 어우러져 그런대로 맛이 나서, 거칠거리며 겉도는 잡곡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소금과 시간의 삼투압 현상으로 무의 수분이 빠져나가, 쪼글쪼글 꼬들꼬들 하지 않고 아삭거리는 맛을 내는 나의 무장아찌는 신기하다. 

한 달 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온 검사를 했고, 드디어 그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초조하게 서둘렀다. 얼른 닥치고 볼 일이다.  부정적인 '만약에'를 상상하며......갑자기 맥문동 보라색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 불안해~~~

그 동안 은근 스트레스 받으며 두려움과 불안으로 시달려 온 것이 억울하게 결과는 간단하게 '괜찮다'고 한다. 순간 순간 부정적인 상상을 하며, 그럴 리 없다며 무더운 한 달을 보냈던  것이 억울하게.  정말 어딘가 아픈 것 같았던 그 시간들은 뭐지?

'좋아지셨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서 다행이었지만 금세 의구심이 든다. 무엇이 추적 검사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숫자를 만들었단 말인가. 두번 다시 같은 이유로 병원에 오고 싶지 않았기에 '챗지피티'에게서 얻은 정보까지 동원해서  의심할 수 있는 원인을 나열해 보았다. '그것은 아닙니다.' 라고 짧게 대답하는 의사선생님은 전문적으로 무심하다. 잠시 무심하게 짧고 건조한 전문적인 태도에 당황했다. 바쁜가 아니면 내가 오버인가.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 막막함이 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그런 숫치가 나온 것이지? 당사자인 나만 궁금한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은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만큼 별 일 아닌 모양일 수도 있다. 그지!

 이왕 말 나온 김에 당면한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진술하였다. '약이 필요없습니다!' 또 다시 단호한 처방을 내리신다. 아무래도 내가 오버인가 보다며 진료실에서 후딱 후퇴하고 볼 일이다. 

어쨋든 결과가 좋게 나왔으니 기뻐할 일이다. 바른 생활과 착한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저속노화를 누려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스트레스로 있던 찝찝한 문제가 풀려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동안 더위탓을 하며 챙기지 못했던 건강한 습관들을 실천하고 더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야 한다. 

기념삼아 미처 끝내지 못했던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보고 귀찮았던 스쿼트도 해보았다. 마음과 허벅지가 묵직해진 건강한 느낌이 든다. 어제 내린 비로 정말 선선한 가을이 되었나 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나의 나무들이 흔들리며 기뻐한다. 스트레스는 오버할 수 있단다.ㅋ



Wednesday, September 17, 2025

꼬들꼬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있다. 몸과 마음이 아직 무덥기에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TV 홈쇼핑에 시선이 전혀 멈추질 않는다. 쉽게 가을이 올 리 없는데,  선선한 가을 날씨님을 데리고 올 것이라는 비가 내리고 있는 중이다. 앞뒤 온갖 창문을 닫고 있자니 급급하기 그지없다. 할 수 없이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돌리고 본다. 

에어컨도 켜고 선풍기도 돌리고 있자니 뭔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양심이 든다. 무더운 여름탓을 하며 미뤄두었던 일을 한 가지를 하면 덜 불안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늦가을 김장 프로젝트로 담았던 무 장아찌 생각이 났다. 미리 구입해 놓은 '쪽파'가 시들해지기 전에 지난 겨울에 품었던 꼬들꼬들 무 장아찌 무침 그림을 완성해야 할 적당한 날이 오늘이다. 이중삼중으로 단단하게 밀폐된 장아찌 통을 열었더니 고추씨 매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쩌면 삶은 '기억'으로 펼쳐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점심 도시락 무 장아찌 생각이 난다.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신 전통 무장아찌의 귀한 맛을 모르고 친구의 사각거리는 노란 단무지를 부러워했던 그 어린 시절. 그땐 엄마의 것은 흔하고 친구의 것은 귀한 것이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검은 항아리에서 꺼낸 엄마의 무장아찌는 쌀겨 속에서 시간과 수고가  발효된 것인 것을 알았다. 지금은 맛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지난 늦가을, 엄마처럼 할 수 없기에 난 스마트 폰을 보고 간단하게 무 장아찌를 담궜다.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품은 짜디짠 무를 송송 썰어서 물 속에 담궈 두었다. 짠맛을 없애려고 맛을 보았더니 깊은 짠맛과 고추씨앗의 매콤한 맛이 위장에 길게 남는다.   나의 것은 짜고 맵콤하여 시간의 짠기를 더 빼야 하는 모양이다.

Monday, September 15, 2025

대수롭지 않게, 그냥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데리고 동네 병원엘 다녀왔다. 살다보면 아플 수도 있는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기도 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욕심이다. 그 욕심의 크기로 인한 불안함의 크기를 응당 감내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내것이 아닌양  오늘도 나에게 지고 있는 있는 것 같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을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옷깃을 흔든다. 푸른 은행 나무 속에는 알알이 가을 알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름 동안 익은 푸르름이 흔들리며 풀벌레 소리가 노래를 하는 지금은 첫가을의 아침이다. 난 아직 여름 옷 정리를 하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타오르던 여름이 절대 쉽게 물러날 리 없다. 대수롭지 않게! 그냥 살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자신을 쓰다듬고 안아주어야 한다.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기로~~~


Wednesday, September 03, 2025

interesting

 'interesting'이란 단어는 오래된(?) 미술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특히 미술작품의 클리티크, 비평 시간에 사용하거나 듣게 되는 말로,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한참이나 그 의미를 되씹어봤던 흥미진진한 단어이기도 하였고,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게 되었을 때  그 난처함(?)이 숨겨져 있던 것을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의 취향에 들지 않지만, 작품을 표현한 창의적인 열정과 동기 의식에 난도질을 하지 않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가끔 이해되지 않는 현실 상황에서도 이 단어를 떠올리곤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모두 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을 재미있고 흥미로운 단어인 'interesting'으로 정리해 버리는 것이다. 

'인생의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또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오스카 와일드)라는 문장이 와닿는 순간들이 있다.  삶의 모순적인 양면성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종종 사는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씁쓸한 얼굴로 오늘 하루를 살지 않도록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