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9, 2026

너를 보면

 

동네 근처에서 발견한 아리따운 흰 목단 꽃이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먼저 났다. 단정하게  뒤로 넘긴 머리에 은빛 비녀를 꽂았던 나의 할머니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그동안 블로그에 포토샾으로 만진 이미지들을 잘 올렸었는데, 왜 지금은 안 올려지는 것이지?)


Tuesday, April 14, 2026

어리석게도

 나의  몸이 보이는 이상증세에 당황스러웠지 싶다. 살면서 '소화가 안된다'라는 말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특별할 것 없이 평소대로 잘 먹었었는데 아무래도 위장에 탈이 생긴 모양이다. 비상약으로 챙겨 놓은 '가스 활명수'를 찾아야만 했다. 

 지난 주말여행이 해외 나들이를 다녀온 것처럼 피곤한 것도 당황스러웠지 싶다. 그 동안 기피하고 조심스럽게 섭취해야 했던 맛있는 떡과 과일들을 과하게 섭취하고 과일 주스도 마시지 않았던가. 여행내내 속이 부글거리며 이상 증세를 보였지만 그러려니 했고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독이 풀릴만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가는 오후 시간에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다 쓰러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힘차던 발걸음이 힘이 없고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렇지 않는 척, 모른 척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몸은 쉽게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기엔 뚜렷한 증상도 없다. 무슨 이유이지? 

평소대로라면 학생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꼬르륵거리는 배고픈 소리가 위장에서 들려야 한다. 하지만  배고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고 축쳐서 그냥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상태는 비정상이다. 생각외로 빨리 늙어가는 몸의 변화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더 소중히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리석게도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Monday, April 13, 2026

나의 살던 고향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도시로 향한 마음은 일찍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여느 때와 달리 어린 시절의 소풍을 기다리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긴 겨울을 보낸 후에 꽃이 피는 봄날에 여행이라 그렇기도 하고 적지 않은 나이를 품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강산이 바뀌어도 여러 번 바뀌었을 것이다. 특히 도시의 외과지역으로 변두리였던 곳에 지하철 역이 들어서고 그로인해 아파트와 상권이 속도를 내어 들어서고 개발된 탓에 도저히 어디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고 오래품은 기억의 추적은 불가능하였다. 다행히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서 살고 계시는 절의 주지사 스님을 만났기에 그나마 옛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주지사님이 손수 심어놓은 고개숙인 여름 눈송이꽃이라고 하는 '은방울 수선화' 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꽃말처럼 행복했지 싶다.(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반드시 올 행복'이라고 한다.) 

무등산을 향한 증심사 진입로의 맑은 계곡물의 물 흐르는 소리는 정말 좋았다. 대학시절 오고갔던 그 계곡 길이 단장을 하여 깨끗하였다. 4월의 숲은 파스텔 톤으로 푸른 옷을 입고 있었고 산벚꽃이 아직 피어 있었다.  별처럼 푸르게 반짝거리는 머위대 푸른 손바닥들을 개울가 언덕바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낯선 도시이지만, 그곳으로 향한 오랜 기억을 품고 살고있기에 아직도 그곳은 제1의 고향인 것이다.  사람들 인파속에 파묻혀 걸었던 충장로 거리를, 학생회관 뒷골목을 걸으며 젊은 시절의 시간 속으로 걸었나 보다.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팝의 비트에 맞춘 물불쇼에 그만 흥분되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봄나들이의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ㅋㅋ  봄 소풍을 나온 주름진 어린아이들이 맞다. ㅋ 나의 살던 고향은 무등산이 있는 광주!

Thursday, April 09, 2026

떨어지는 봄비

 

오래된 아파트는 낡고 허름하지만 함께 세월을 품은 오래된 나무는 봄이면 잊지않고 새 꽃으로 새 봄을 노래한다.  봄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장면은 언제나 낭만적이며 영화적이다. 봄비가 그치고 나면 아마 속도를 내어 푸른 여름으로 달려 갈 것이다. 자동차 번호판도 나오지 않고 지나가던 사람도 인식하기 어려우니 블러그에 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뿌연 내 시야같은 뿌엿고 흐릿한 풍경이 왠지 더 편안하고 좋다.

Wednesday, April 08, 2026

너의 대한 예의

 새로 구입한 트웨이드 자켓은  벚꽃처럼 하얀 핑크빛으로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옛날 같았다면면 너무 반짝임이 부담스럽다며 마다했을 것이다. 무대에 서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주위를 집중시키는 연예인의 의상아닌가. 내가 늙었나 보다, 반짝거리는 것이 좋아지다니. 언제 어디로 입고 나갈 것인가 묻지 않기로 했다.  결국엔 너를 데려오고 말았다. 내가 저지른 과한 선택이 부담스러워 잠시 하루 동안 눈에 띄지 않게 감추워 두었다. 그런데 이른 시간 잠이 깨자마자 생각했다, 반짝이는 네가.

늦잠이라도 자며 잠을 보충했어야 했는데, 미지적거리지 않고 이른 아침을 덕분에 일어나야했다. 내가 구입한 옷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답게 나다운 코디를 완성해야 한다.  반짝이는 너를 소화하려면 단순한 옷을 받쳐입어야 하고, 채도를 생각하면 바지 색은 하얀 바지 아니면 밝은 회색바지로 가야겠지.....이런 일련의 과정도 더 늙으면 못하려니......즐기도록 하자^^

갑자기 흰색 바지에 꽂힌 자신에게 살짝 놀라고 있는 중이다.  학교 체육복 흰바지 말고는 입은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더 늙기전에 입어보지 않은 색에 도전하고 싶기도 하다. '도전'이란 말을 의상구입에 사용하기가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또 뭐람. 

 온라인에서 사이즈를 다운시켜 구입한 흰색 바지는 허리가 크고 바지 길이도 길다. 왕성한 소비활동에 따른 죄책감 때문인지 수선가게에 가지않고 자체적으로 수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돋보기를 쓰고 바늘귀에 실을 꿰어  엉성하고 누가 볼까싶을 정도로 뚝딱뚝딱 바지길이를 수선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신발이 문제이다. 흰바지에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까. 밝고 얇아진 바지의 특징을 고려해 얄상한 운동화를 챙겨보았다. 마침내 다 이루었다 ㅋㅋ 반짝거리는 너를 책임을 지려고 소중한 오전 시간을 다 썼음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반짝거린다. 

Tuesday, April 07, 2026

반짝이는 너

 내가 봄처럼 저지르고(?) 있는 소비활동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린시절 겪어야 했던 '겹핍'이란 단어를 내밀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이쁜 옷을 무지 부러워했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 주름지고 있는 이 시간에도 무슨 옷타령? 아냐, 어쩌면  '봄'이니까 봄꽃처럼 화사한 옷을 입고 싶어지는 것은 건강한 반응일지도.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스스로를 고발하며 자백했더니 나처럼 주름지고 있는 친구도 새옷으로 봄단장을 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나만 봄을 타는 것 아니니 말이다^^

새 옷을 구입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옷을 깨끗이 세탁하여 슬기롭게 코디하여 입고 다니겠다는 결심이 무색하게 자꾸만 보암직도 하고 예쁘고 멋진 봄옷을 장만하여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올 해 봄처럼 많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동안 코디가 딱 떨어지지 않아 옷장에서 시들고 있는 옷들을 구해낼 수 있는 아이템들을 보며 아이디어가 샘솟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던 중에 동네 옷가게에 걸려있는 벚꽃 분홍색 자켓에 눈이 꽂히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 보암직도 하고 이쁜 옷이 자꾸 생각난다! 저항할 수 없다.  동네 옷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목이 자꾸 해바라기처럼 그 반짝이는 옷을 향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도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할 나의 무모한 욕구(?)에 대한 이성적인 저항을 나름 하였지 싶다.  온라인에서 세일 중인 비슷한 옷을 골라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국 만족할 수 없어 반품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치루고 말았다. 그래, 입자! 더 늙어지면 못입어보나니~~~결국엔 그 보암직도 하고 아리따운 핑크빛 자켓을 구입하고 말았다.

이렇게 반짝이는 핑크빛 옷을 어디에 입고 갈 것이지? 반짝이는 나의 은발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가 말이다! 너무 반짝거려도 상관없다! 내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난 내 삶을 반짝이며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근거있는 자신감은 밑받침하는 근거들이 사라지면 버티기 어렵지만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은발에 주름지고 있는 나를 칭찬하고 보살피면 되는 것이다. 당당하게!

Monday, April 06, 2026

신문을 끊는 방법

 구독하던 신문을 끊는 방법을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다. 신문을 끊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도 쉽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에 돌아와 10여년이 넘게 구독한 신문을 정지하기로 하기까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로 내내 잡고 있었다. 신문을 읽으면서 한국에 적응을 하는데 적지 않은 긍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였고 특히나 저명한 분들이 좋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신문을 그만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들기 시작했다.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살다보니 신문이 구문이 되고, 구문이 쌓여 부담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한번 끊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결정을 내리고 고지를 했더니만 그동안 상냥하던 대리점 측의 태도가 끔찍하다. 애걸복걸 어려운 사정을 하며 구독을 해달라며 불쌍모드로 매달리기도 하고, 달콤한 무료 써비스로 붙들려고 하기도 한다. 그것도 안되니 목소리를 바꿔 강압적인 권유까지 하면서 포기를 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 좋지 않은 감정이 쌓여 절대 신문을 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신문을 끊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상당히 불쾌했지 싶다.  

그리고 신문 대리점은 막무가내식으로 신문을 계속 넣고 있는 중이다. 자동이체에서 구독료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정지를 하고 신문 본사에 전화를 걸어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용없이 없다. 집앞에 지저분하게 신문들이 쌓이는 꼴을 보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함께 쌓이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이 점을 노려 10년 애독자의 이별통지에 나름의 복수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