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너, 그건 너
'사람들이 그러던데...'하며, '사회적 평가'를 들이대며 나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파괴하고 위협했던 순간들을 마주한 적이 내게도 있다. 그리고 그 위험천만한 심리적 위기에 봉착했던 순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떠오른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난 50이란 숫자를 달고 있었고, 익숙한 한국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적응을 해야만 했었다. 수영장에서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사회적응을 해보자며 열심을 내어 성실하게 배우고 익히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욕심많은' 모습으로 보였을 수 있으며, 못하는 것이 없다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잘나 튀는 모습이 거슬리기도 했을 것이다. 목소리도 큰 것이...ㅋ
돌이켜보면, 내심 쿨하고 멋지고 좋은 사람이고 싶었기에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겠는가.
수영장 물터에서 산전수전 다 격으며 인격을 닦았지 싶다. 시간이 가면서 차차 '척척척'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노력이라는 것을 했지만, 더 눈을 감고, 더 입을 다물고, 더 귀를 막는 그 길 밖에는특별한 묘책이 없었을 것이다.
어디 사람 마음이 어떻게 나와 같을 수 있으며 너와 같을 수 있겠는가.
어떤 나쁜 의도 없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신의 정서적 결핍으로 인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줄기차게 타인의 흉을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차마 앞에서는 무례할 수 없어, 등 뒤에서라도 뚫린 입으로 흉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며 권리이지만 그것은 그렇게 끝나야 한다. 무슨 꼬투리라도 잡은 사람처럼 '나를 생각해서 말한다며' 라는 말로 시작하는 충고를 하는 행위는 절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냥 지켜야 할 '선'을 넘기로 한 것이다.
그때 수영을 마치고 수영장 샤워실에서 머리에 거품을 내어 샴푸를 하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얼마나 무안하고 무색하던지 샤워장 불빛이 흐려서 다행이었다. 그 흐릿한 불빛 아래서 거품이 눈에 들어와 쓰라리고 옷 하나 거치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알몸은 가시 박힌 쓰라린 판단질을 받아내야 했던 순간을 어찌 잊으리요~~~
'충고'라는 것은 타인에게 하지 않은 편이 낫다라는 것을 그때 덕분에 알았다. 결국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심지어 한 두사람이 말한 것을 전부가 그리 여기는 것처럼 '사회적 무게'를 실어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후다닥~~~그 어질했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그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내 편도 되어주지 않는 섭섭해서였을까 아니면 스스로 무색하고 무안해서였을까. 나의 부끄러움을 일부러 들추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친하다며 선을 넘게 만든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 오죽하면 그리 둥글둥글하고 착해 보이는 그 사람이 충고질을 했을까 ㅋ 살다보면 자신의 주제파악은 하지 못하고, 남 일에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가르침을 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앗, 바로 나, 그건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