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01, 2026

작은 죽음

 주말 동안 '듄(모래사막)' 1부와 2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무지막지한 모래벌레와 모래폭풍이 도사리는 극한 곳에 가장 필요한 물질인 '스파이스'가 매장되어있다는 설정이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고 누리고자 하는 기득권자들이 필요로 하는  '스파이스'란 물질이 매장된 이유로 온갖 고난을 견디며 생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치적인 이유로 기득권의 세력에서 퇴출당한 금수저는 흑수저 속에 들어가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며 마침내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킨다는 이야기로 추측된다.  병약미가 보이는 주인공이 생각보다 갈고닦은 무술이 출중하며 게다가 초능력까지 겸한 캐릭터로 '사랑'을 한다. 3부와 4부에서는 '사랑' 하나로 만족할 수 없는 운명의 금수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공상 과학 영화로, 체온과 수분을 유지하는 '스틸슈트'라는 의복의 기능은 인상적이었다. 수분이 극도로 부족한 곳이니만큼 인체에서 배출되는 모든 수분을 다시 재활용하여 사용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금수저 주인공의 엄마가 두려움에 대해 '두려움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고 그것은 작은 죽음을 자행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곤 한다. 

영화를 보다가, 나의 두려움과 맞닥뜨렸다.  며칠 동안 해결되지 않는 불합리한 시간과 위치 그리고 치루어야 할 경제적 댓가에 대한 저항감이 파도처럼 일면서 마음의 안정이 깨진다. 두려움이다! 마음의 평화를 깨부수는 일에 대한 자유함이 없으니 난 두려움에 잡힌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오직,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네네'하며 감사하는 자세로 모든 불합리성을 받아 들이는 '수용적 태도'가 최선이란 말인가.

Friday, January 30, 2026

입을 다물 수 있다면

 그 입을 다물면 좋으련만 훨씬 먼저 주름지며 자신의 틀로 단단해진  '어르신'이 입을 열어 지적질과 가르침을 주신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면 좋으련만 옛날 사람답게 굳혀진 틀이 정답인양, 다른 사람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훈수를 두며 강요를 한다. '참아야 한다, 그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자신의 생각의 틀에 갇힌 사람과 말을 섞어야 할까. 똑같이 나의 생각을 입밖으로 표현한다면 전혀 원하지 않는 질퍽거리는 추한 그림을 만들고 말 것이다.'그려, 그러려니~~~'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하여 못마땅할 수 있겠지만, '존중''배려'가 결여된 생각으로 함부러 말씀을 하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입 다물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침묵의 때와 입을 열때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미래가 이와 같다면 슬픈 일이다.  오래 살아서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듯, 우매한 사람들을 꾸짖듯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그 입을 다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흉 보면서 배우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입을 조심하고 경거망동을 경계해야 한다. 



Thursday, January 29, 2026

어쩔 수 없다

갑갑하고 열 받는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혹시 갑질에서 나오는 갑갑?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맞닥뜨린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고 일을 진행했을 것이고 효능감 있는 해결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존중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대안이 있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을 경청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고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막상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참으로 구태의연하다. 절차를 따르고 예전의 낡은 방식을 안이하게 따르는 것에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어찌 감히 어떤 저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으니, 폭력처럼 다가오는 불합리함을 내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쯤은......결국 무능함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라며 자신을 탓하고 있자니 갑갑하기 그지 없다. 결국 감내하고 받아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해결점이 있을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나는 농락당하여 점차 불쾌감과 무력감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 한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정성과 시간을 들여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며,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주름져가지만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기회를 이렇게 마주하는 것인가.

Wednesday, January 28, 2026

인정사정 없이

 언젠가부터 소설이 현실보다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 점차 소설은 넷플렉스 드라마와 영화에 밀리고, 유튜브의 따끈한 생활정보에 밀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심리적인 책과 실용서적에 자리를 뺏겨 좀처럼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주름시는 시간에 필요한 명상까지 할 수 있는 성경이나 불경같은 곱씹고 음미할 수 있는 책이 더 나을 수 있기에 소설이란 책은 지금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탈리아 태생인 '디노 부차티'의 소설, '60개의 이야기'를 아주 느리게 읽고 있는 중이다. '느리게'란 말보다 정독, 대충 설렁설렁 읽지 않고 꼼꼼이 글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읽고 있노라니 단편의 이야기에 오는 '재미'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화가이기도 한 작가의 표현력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 매력적이다. 

 책은 60개의 짧은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으로, '7층'이란 단편을 읽고나서의 감정은 멍멍했다. 인정사정 없이 '시간'이 데리고 오는 종점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서 삶은 그렇게 진행되고 그리고 각자의 종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결국엔 우리 모두가 다다를 종점을 향하는 동안 마주하는 아이러니가 때때로 모순과 부조리의 쓴맛을 느끼게 하지만,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지혜와 유머 그리고 수용하는 힘으로 삶을 즐길 필요가 있다. 인생은 짧다!



Tuesday, January 27, 2026

그 자리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차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갔더니 타인이 던진 말 한 마디에 감정이 흔들린다. 불안을 자극하는 서열의 언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부지부식간에 사람들은 비교를 한다. 민감성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려니'했지만, 감정의 휩쓸림으로 인한 조각난 생각들을 붙잡고 잠 못들고 있는 모습은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이 이끌고 온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생활을 하며 관계를 만들다보면 이런 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적절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한 것을 느꼈다. 칭찬과 배려가 담긴 좋은 말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어떤 조건에서 내 삶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은 같을 수 없고,  존중 받아야 하고  서로가 응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쉽게 비교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 삶에 대한 불안함을 자극시키는 일을 정지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 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Monday, January 26, 2026

때때로 슬픈 일

 나름의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난 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지만 오른 쪽 손가락의 통증을 갖게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때때로 슬픈 일이다! 아뿔싸, 손가락 스트레칭을 찾아보면서 새롭게 등장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예방'의 중요성이다. 미리 겸손하게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하여, 특정 동작을 오랜 동안 유지함으로 초래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집중을 한다며, 뻑뻑거리는 뇌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이 덩달아 손가락에 너무 과도하게 손에 힘을 준 것이다.  돌이켜보면 손이 아리다며 신호를 보냈는데 '그러려니'하며 괜찮겠지 했다.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너의 손가락은 관리가 필요해!

남자보다 여자의 손이 더 민감하고 취약하다고 한다. 집안 일을 해야 하는 손이 그동안 사용를 많이 했을 것이고,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약해진다고 하는 정보를 접하고 나니 후회가 밀려온다.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부터라도 특정 동작을 오래 하지 않도록, 하게되면 스트레칭과 운동으로 유연성과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음은 감사할 일이다. 때때로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을. 

Saturday, January 24, 2026

이기거나 배우거나

어릴 적 온 식구가 큰 방에 모여 친정 아버지의 고향 출신인 세계 챔피언의 경기를 응원하던 밤들을 난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텔레비젼이 귀하고 칼라 텔레비젼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경기를 해설하는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 매 경기의 숫자를 알리던 짧은 옷차림의 아가씨, '땡'소리의 휴식과 시작, 얻어 맞은 얼굴의 붓기와 상처.....

시간이 흘러 언젠가부터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가해'를 끼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야만적인 스포츠'라는 생각에 이르러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을 때려서 승부를 가리다니!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지 못해  맞은 사람은 피가 나고 얼굴이 붓고 몸은 휘청거린다~~~ 맞기 전에 먼저 때려야 하고, 아파도 참고 안 아픈 척도 하고, 흥분해서 이성을 잃고 실수를 하게끔 약을 올리기도 하며......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쏠 수 있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듬을 타면서 요리조리 상대를 피하며 재빨리 유효한 치기를 툭툭치다 때를 만들어 큰 거 한방을 날려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운동, 권투는 야만적이다. 

나는 맞지 않고 상대방을 때리면 되는 것으로, 상대의 스타일을 간파하고 있어야 하며 갑작스런 변칙에도 당황하지 않고 최적화된 움직임을 해야 할 것이다. 리듬을 타는 가벼운 발걸음과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위압적이거나 도전적인 발걸음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강력한 주먹, 한방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튼튼한 체력뿐만 아니라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하여 약점을 노리는 영리함이 있어야 하는 운동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멘탈 게임이기도 하다. '기세'에 밀리는 순간 상대방의 스타일에 끌려들어가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잘 풀리지 않는 힘든 경기를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야만적이지만 스포츠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체력, 심폐 지구력, 기술, 민첩성, 유연성, 균형감 등의 여러 좋은 점이 있고 더구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신감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점이 많은 스포츠라고 보여진다. 권투를 하면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어느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스포츠의 순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경기를 앞둔 아들에게 해준 엄마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이기거나 배우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승부를 떠나 열심히 하라는 격려이다. 이기거나 지는 경기가 아니라 이기면 좋고, 혹시라도 지더라도 그것은 패배로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큰 배움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걸음으로 삼으라는 뜻일 게다. 

하지만 사람에게 신체적 가해를 하는 행위는 '야만적'이다. 야만적이라고 말 하면서, 최후 승자가 나올 때까지 권투 방송 매회를 다 챙겨보고 있는 나는 야만적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