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17, 2024

보람찬

 '보람'이란 단어는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살았나 보다. 다른 날에 비해 분명 더 피곤할 것 같은데 쓰러지지 않고 아직 남은 힘이 있지 않은가. 그 동안 '나'라는 사람은 '보람찬'이란 단어를 챙기지 못하고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커다랗고 노란 달이 밤 하늘에 나타났다. 큰 달을 보며 술 한잔 할 수 없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Tuesday, October 15, 2024

드넓은 하늘

 아침 하늘이 잔뜩 흐리다. 비가 내린다고 하여 손잡이가 있는 큰 우산을 가지고 나갔던 어제는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져 주위 눈치를 보며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했다. 오늘도 흐리고 비가 내릴 것이며, 흐린 날씨에 오히려 구름에 기온이 갇혀 날씨가 더 온난할 것이라고 한다. 

 이른 저녁을 챙겨먹고 나간 풍경은  아직 빛이 남아 어슴푸레하다. 어두움이 내려 앉는 시간은 편안하기까지 하다. 아파트 대추 나무에 무겁게 매달려 있던 붉은 대추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붉은 대추가 마음 속에 있으니 없어진 붉은 대추가 보인다. 고개를 돌려 아파트 주위를 살펴보니 감들이 붉게 물들어간다. 감나무 나뭇잎이 떨어지면 둥글고도 붉은 자태가 시적으로 서 있을 것이다. 

긴 여름하고 바로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뉴스에 울긋불긋한 전형적인 단풍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노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도 이제 귀한 일이 되어버려서 발품을 팔아 단풍이 고운 곳으로 찾아 가야 할 것 같은 사실을 받아 들이기엔 세상의 변화가 당황스러울 뿐이다.  

 동네공원에서 늦게나마 활짝핀 코스모스들의 핑크 빛 무리를 보았다. 이상하게 코스모스 꽃을 보면서 도화지에서 뭉게지던 어린 시절 크레용이 그린 꽃이 생각났다. 꽃의 색이 선명하게 칠해지지 않던 그 순간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실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하필! 도화지에 안착되지 않았던 미끈거리던 느낌과 얇디 얇은 도화지의 불편함이! 난 아직도 멀었다.

푸른 가을을 걷고 걸으니 어두움이 내려 앉으며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고개를 들어 올려 본 푸른 밤이 넓고도 둥글게 펼쳐져 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드넓은 하늘! 감사하다!!  

 


Sunday, October 06, 2024

그래선 안된다고

10월 7일 월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많던(?)징검다리 붉은 휴일을 다 보내고 맞는 월요일은 긴장감이 들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일요일 오후는 뭔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사람처럼 불안감이 가득하다. 어느새 10월 7일이 되었단 말인가!

'가을'다운 가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녁 공원 산책을 나갈 때 장갑을 끼는 사람을 보았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져 공기가 쌀쌀한 반면 낮엔 태양이 뜨겁고 하여 하루 일교차가 심한 날씨다.  감기에 딱 걸리기 좋은 달! 인디언들은 10월을 가난해지기 시작하는 달,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말하는 달, 시냇물이 얼어붙은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큰 바람의 달, 잎이 떨어지는 달 등등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겪고 있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양식을 갈무리 하는 달'이란 이름은 뜨거워진 지금 여기서도 얼추 틀리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 마주하는 일상의 것들은 소중함을 갖고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평범한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행은 좋은 것이다. 우선 동네 공원의 관리되지 않아 번지르하지 않은 모습이 주는 평안함과 집에서 직접 차린 소박한 먹거리가 주는 가벼움이 좋다. 날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잠깐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기에 유익한 것이다. 

여행중에 붉은 '꽃무릇'이란 꽃을 보게 되었다. 황금 벌판 주위로 붉은 꽃무릇(석산) 꽃들이 피어있는 동화같은 이상한(?)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을에 붉은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지면 잎이 돋아나와 겨울, 봄, 여름을 푸르다 사라진다고 한다. 

 

털썩 주저앉아버리고만 

이 무렵


그래선 안 된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안간힘으로 제 몸 활활태워 

세상, 끝내 살게 하는


무릇, 꽃은 이래야 한다는 

무릇, 시는 이래야 한다는

                                                       -오인태 시인, 꽃무릇


Sunday, September 29, 2024

슴슴한 시간

 아직은 가을이 아니야! 그래도 도로변 은행 나무는 반기는 이 없는 것도 모르고 노랗게 여문 은행알을 내려 놓는다. 귀여운 은행알의 유쾌하지 않은 밟히는 냄새에도 아직 지금 이곳은 여름이다. 늦더위가 9월말까지 지속되고 경험하지 못한 강한 추위가 있는 겨울이 예상된다는 뉴스가 전해 온다.

'저속 노화', '저당 고단백질 식사'에 관련된 정보가 가득찬 지금은 '변혁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을 거스릴 수 없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저항하지 않고 달달했던 것들과 간간했던 것들을 내려 놓는 겸허함(?)에 도달한 것이다.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삶이며 참으로 붉은 꽃같은 청춘은 짧았던 삶의 여정으로 정리하기엔 '아직도 난 여름'일 수 있다는 생각의 짜투리가 남아있는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과 '스트레스' 그리고 '수면부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이 두렵다. 근육을 저축해야 하는데 몸은 자꾸 편하게 쉬고 싶다. 에너지가 충만했던 어제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변화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기운이 없고 삶에 대한 충동과 저항 그리고 삶에 대한 흥취나 멋부림이 없어진 고요한 상태? 막상 도래하고 보니 단순하고 단맛과 짠맛이 없어진 슴슴한 시간이다. 

Wednesday, September 25, 2024

버스 정거장에서

 같은 시각,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봄과 여름이 지나는 동안 만나지만 별다른 인사를 하지 않는다. 무심하게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깨달은 것은 '질서'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먼저 탈 것 같은데 실상은 '버스 기사님 맘'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명확하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아니니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손을 번쩍 들어 의지를 '강'하게 휘저어 보이는 사람 앞에 버스를 세우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와서 오랜 기다림을 가진 난 알고 있다. 손을 들어 표시를 했지만 기사님은 오히려 짖궂은 자리에 버스를 세운다. 그 무색함과 불쾌함이 싫어 손을 들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늦게 나타난 사람은 먼저 온 사람들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손을 휘젓는다. '무슨 생각이지?'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이다. 아침부터 타인으로부터 불쾌함을 받아 안을 필요가 없다. 개선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으로 보여, 온 세상이 그리 아름답지 않게 보일 때도 있는 것이 문제이지만 어쩌겄는가. '그러려니~~~'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입을 열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같은 시각,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먼저 오셨으니 먼저 타세요'라고 등 뒤로 줄을 서는 사람은 버스 기사님이 선두를 알아 볼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기 버스 정거장의 문화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 아니면 아직도 기사님이 오랜(?) 기다림을 가진 선두를 알아챌 날카로운 시선이 있다고 믿는 것인가. '버스 기사님 맘이세요'라고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내가 조금은 미안했다. 역시나 버스 기사님은 자신의 지점에 버스를 세웠다. 이미 체념한 난 상처를 받지 않았다. 



Monday, September 23, 2024

어쩌나

 어스름히 해가 지는 시간에 동네 공원을 걷는 일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 중의 하나로 반드시 챙겨야 할 신체적 정신적 영양제이다.  평온한 공원이 웅성거린다. 아무것도 사람의 것을 매달지 않은, 증거 인멸된  하얀 개 한 마리의 모습에 사람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라 보고 있다. 개를 버린 사람에 대해 혀를 차며 '이를 어쩌나' 안타까운 마음에 가던 길을 쉽게 가지 못하고 있다. 키울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만 버려진 순백색의 개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 신고를 하든지, 혹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챙겨 주겠지......' 

다음 날, 공원 어딘가에서 어두운 시간을 견딘, 어리둥절한 하얀 어린 백구(?)는 수척한 모습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나타나 낑낑 소리를 낸다. 작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견주들이 자신의 개를 보호하느라 조심스럽게 바쁘다. 누군가는 눈가에 눈물을 훔친다. 그러나 그들도 나처럼 집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다. 

어디서 잠이 든 것일까? 물과 음식은 먹은 것일까? 배를 보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물이라도 한 모금 먹여 줄까나.' 흔히 보이던 플라스틱 컵도 보이질 않는다. 주말이라 개를 구조(?)하는 사람들이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로 아직도 공원에서 밤을 보낸 것일까? 운동장 구석에 수도가 있으니 생존 본능으로 물을 얻어 먹지 않았을까?

지나가는 할머니는 불쌍하다는 생각에 앞서 개가 갑자기 덤벼들까 무섭다는 불안과 걱정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야생 들개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해 위험에 빠뜨린다는 뉴스를 엊그제 본 게 기억이 난다. 

주말이 지났으니 구청에 누군가 신고를 하고 뭔가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원에서 다시 버려진 하얀 개를 발견한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나누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들 것 같아 물과 사료를 준비해 공원에 나가기로 하였다. 어두움이 내려앉은 공원에 허옇게 보이는 것들은 힘 없이 앉아있는 불쌍한 개로 보인다. 출몰했던 길가에도, 사람들이 걷고 있는 운동장에도, 수돗가에도 하얀 개는 보이질 않는다.


Thursday, September 19, 2024

우산

 9월 20일 금요일! 아직 여름이다. '가을 장마'라고 불리는 비가 며칠 내리고 나면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도 찬바람 기운에 물러난다고 한다. '비가 내린다'는 말이 예전처럼 반갑지 않은 상황에 살고 있는 현실적인(?) 자신의 무기력을 본다. 무엇보다 자신의 에너지가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되는 형국이라 블러그에 글을 남기는 일도 시들해지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요란하게 비가 내린다고 하니 우산을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