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무거운 비를 실컷 땅으로 쏟아부은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무심하게 뭉글뭉글거린다. 말갛게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을 올려다 보다가, 동네 공원에 새로 생긴 황토길이 궁금해졌다. 황토길이 맨발로 걷기에 너무 딱딱해서 사람들이 호수로 물을 뿌리며 말랑한 모습을 만들려는 모습이 나의 맨발이 기억하는 딱딱한 감촉과 함께 떠오른다. 비를 흠뻑 들이마신 말랑거리는 황토길을 상상해 보았다. 어쩌면 거센 빗줄기을 견디지 못하고 벌겋게 벌겋게 더 낮은 곳으로 흩어져 내려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모를 일이다. 맑은 얼굴로 뜨겁게 빛나는 불볕 햇살에 적당하게 꾸덕거릴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상상을 품고 모자와 양산을 챙겨 공원 황토길을 가보았다. 앗뿔싸! 질떡질떡 사람의 발로 만들어 놓은 질퍽거리는 작은 산들이 무수하게 솟아나 있다. 군데군데 황토물로 가득찬 곳은 나무 그늘 밑에서도 번질거린다.
등산용 스틱을 사용해서 걷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다. 미끈미끈하고 질떡질떡거리는 누런 황토물이 튕겨 바지에 묻을 수 있는 질펀한 상황이다. 할 수 없이 입고 있는 바지의 길이를 무릎까지 올리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미끄러지 않으려고 무거운 고개를 숙여 황토 바닥만 보게 되고 두 팔은 활발히 젓지 못한다. '건강에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냥 온 김에 최선을 다해 걸었지 싶다. 미끈거리는 황토길을 지팡이 없어도 잘 걷는 자신의 '균형감'에 감사하면서. (ㅋ그냥 포기하고 돌아오기엔 음식을 너무 먹었어.)
밀가루 반죽을 발로 하는 느낌이 드는 곳은 발바닥 기분이 말랑거리며 좋았다. 군데군데 물이 많은 곳에선 원래 자리하고 있었던 길바닥의 까실거리는 부분이 발바닥에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지 발가락 피부가 손상을 입긴 하였다.) 요령껏 방향과 속도조절을 하며 걷는 동안 나의 소중한 두 발의 발가락 사이로 황토가 끼고 벌겋게 뒤덮이고 만다. 원초적인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한 쾌감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황토길만 바라보고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쩌면 '명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 있는 수돗가에 앉아 붉으작작하게 물들어진 발바닥을 보았다. 붉은 발을 시원한 수돗물로 씻어내니 나의 소중한 하얀 발이 나왔다. 발톱 사이의 붉은 황토흙은 씻기지 않았다. 집에 가서 비누로 사이사이 싹싹 문질러야 할 모양이다. 좋은 자연의 기운이 같이 스며들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나라 무궁화 꽃을 보았다. 낙화하는 모습이 고급진 우리나라 무궁화, 샤론의 꽃을 보면서 내 정원의 무궁화를 떠올리는 나를 보았다. 나무나 사람이나 적당한 곳에 어울리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곳엔 무궁화꽃을 파먹는 재패니스 비틀스가 없다. 이상하게.....
매미소리가 이상하게 나지 않았다. 최근에 매미를 식용으로 먹는다는 사람들이 해질녁에 다 잡아간 것은 아니겠지? 설마? 느닷없이 맹꽁이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는 동네 공원이다. 비가 심하게 와서 동화처럼 울고 있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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