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8, 2023

바비가 아닌 걸

 삶을 돌아보니 '바비' 인형이 내겐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상적인 인형을 갖고 놀며, 꿈꾸고 상상한 대로 현실을 추구해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영화에 대한 공감력이 좀 덜했으리라 짐작한다.  현실의 세계에서부드러운 긴 금발 머리에 큰 눈이 있는 작은 얼굴 그리고 잘룩한 허리에 긴 팔다리의 몸매를 소유한 '전형적인' 바비의 미모를 누려 볼 일 절대 없다. 솔직히 뭐 그리 간절히 그런 얼굴 그런 몸매 원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고 용감 무식하게 열심히 성실히 잘 살았나 보다.

미국에서는 '바비'라는 영화가 빅히트를 기록한 것에 비해, 이곳 한국에선 그닥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미국 '최고의 영화'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캐이블 방송에 올라왔길래, 쿠폰을 총동원을 하여 거실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는 예의를 못차리겠다. 요즈음의 극한 물가에 적응하다보니 영화관에 가서 꼭 감상해야 할 영화를 추리게 된다.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국민학교를 가기전, 시골에서 뛰놀던 유년 시절에 '인형'없이 어른들의 삶을 흉내삼아 소꿉놀이를 또래 친구들과 했던 기억이 난다.  작은 꽃을 모아 밥을 짓고 풀을 뜯어 반찬을 만들었던 우리만의 그늘지고 한적한 어느 곳에 또래들이 모여 소꼽놀이를 하였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올챙이 잡고, 나무 하러 다니던 촌스러웠던 시절에 무슨 인형이란 말인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려 옷을 입혔던 놀이는 해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만화책과 어린이용 잡지를 많이 보았던 친구들의 솜씨가 뛰어났었던 것을 기억한다. 모방이란 창조의 어머니이다.

그땐 가게에서 상품으로 나온 종이옷 입히는 것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고 재단을 하여 옷 입히고 놀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궁하면 사람들은 몸과 머리를 쓴다! 물론 좀 있이 사는 아이들은 큰 눈이 있는 인형을 가지고 있었고, 이쁘고 비싼 인형 드레스를 구입해서 입혔던 것 같다. 그런 사치(?)를 난 꿈꾸지 않았었다. 다행인가? 그때 꿈을 꾸었더라면, 결핍에 대한 굶주림이 더했더라면 더 열심히 살았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바비가 하이힐을 신다가 '족저 근막염'에 걸렸을까나. 드디어 이쁘고 몸매 좋은 바비도 나처럼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하히힐을 벗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높은 구두를 신으면 사실 코어에 힘이 들어가 배가 들어가고 등이 펴져서 당당하고 멋진 폼이 나오긴 한다. 코어에 힘이 빠지면 절대 높은 구두를 착용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구두를 버리고 편안한 신발로 내려 오게 되는 그 순간, 충격을 받는 장면은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부분이다. 언제까지나 '하히 힐'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하히 힐'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오면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받아들임이 지극히 자연스러움이요 슬기로운 지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그렇게 이쁜 미모와 좋은 몸매만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티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서도, 땀 흘리는 농부의 그을린 얼굴에서도 아름다움이 있고, 친절하게 인사하는 기사님의 얼굴에도 멋짐이 있다는 것이다. 평안한 노인의 얼굴과 티없이 맑은 어린 아이의 얼굴, 우아한 중년 여성의 얼굴에도, 자신감 넘치는 사람의 얼굴에서도......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이상하게 어려운 단어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울 받고, 갈고 닦은 능력을 인정 받아 사회에 공헌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페미니즘적인 발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물음표를 가져 보았다.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부여 받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아직도 뿌리 깊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비만 사랑하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캔캐릭터는 흥미로웠다. 사랑에 불만을 가진 캔이 각성하여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체계를 구축하지만, 다시 바비들이 연대하여 여성성으로 멍청한 척 모질 한 척 하며  캔의 세계를 정복해 버리는 것은 흥미로웠다.

바비가 높은 구두를 벗고 대신에  편안한 신발을 신고 '두려움' 없이 현실로 향해 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 바비도 나처럼 높은 구두에서 내려 오고 말았다. ㅋ 다들 그리 사는 모양이다. 세상에 시간을 이길 것은 없다!

'나답게' 잘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답게가 무엇이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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