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가고
태풍을 핑계삼아 쇼파와 한몸을 이루어 지낸 댓가를 체중계에서 보았다. 여름 휴가라 부를 수 있는, 출근 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에 하필 태풍이 길게 자리 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럼에도 하루 하루 알차고 의미있는 시간을 꾸리자 했는데, 지나고 보니 늘어난 살이 명확하게 숫자를 올려서 보여준다.
부정적인 수집을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좋은 영화들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집밥 그리고 동네 공원에 나가 여름밤을 걷지 않았던가. 그만하면 족해도 되는 것을, 휴가라고 명명했던 시간이 빠져 나가고 나니 그만 허한 마음이 들고 만다. 그래도 아직 황금같은 주말이 남아있다.
태풍이 북으로 올라갔지만, 바깥은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반경이 짧아지고, 생활리듬이 불규칙해진 탓인지 몸이 무겁고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우산이라도 쓰고 동네 한바퀴 돌고 오고 싶지만, 비가 하루 종일 내릴 것이라 한다.
태풍이 올라오는 시간에, 집에서 '패라다이스'란 영화를 보았다. 밀린 책을 읽고 싶었지만 깊은 사유 대신에 그냥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회공헌도가 있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의 생명을 연장해서 세상을 좀 더 발전시키겠다는 슬로건을 걸고, 타인의 시간을 가져가 불로장생하며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물질은 참 좋은 것이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무엇이지? 사랑? ( 아닌 것 같은데...)사람의 마음을 물질로 살 수 있음을 쉽게 부정할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꾸려 가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로 하고, 누구나 행복하게 부족함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일자리가 풍부해서 청년들은 각각의 적성에 맞게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일한만큼 정당한 댓가를 제공 받고, 여유있는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노년의 나이에도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노후의 사회 보장이 잘 되어 있는 세상을 바란다.
때가 되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삶의 마무리를 잘 하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질만능주의적이고 승자독식적인 세상에서 우승자들이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극단적으로 돈이 많고, 잘난 사람들은 정말 죽음을 맞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돈으로 타인의 시간을 제공받아 삶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볼 것 같기도 하다. 할 수 있으니까!
영화가 끝나고,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세월을 먹은 흰머리와 잔주름 그리고 늘어짐이 보인다. 피부관리를 하고 머리 염색을 하면 젊어 보일 것이다. 관리라는 것을 하면 좀 더 노화를 늦출 수도 있고 병으로 덜 고생할 수 있다. 결국은 때를 따라 살다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좀처럼 말하기 어렵고 두려운 단어는 절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늘 만만년 살 것처럼 나날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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