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09, 2023

유토피아는 없다

 덩치 키운 태풍이 조깅 속도로 올라온다 하니, 쉬는 날이어도 집안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태풍이 집앞으로 오기전에 가까운 영화관에 가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영화를 보기로 했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양산을 들고 걸어가 시원한 지하철을 타면 된다며 BMW를 이용한 영화보기를 감행해 보았다. 무더운 여름 이겨 내자며 하루 종일 세끼 충실히 먹고 아무래도 여름탓을 하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주저앉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터라 살짝 건강이 염려가 되긴 하였다. 잠깐이라도 걷자며 길을 나선 것은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

공휴일이 아닌 평일의 시간이라는 것을 깜박했다. 시원한 지하철에서 더위를 피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덥고 뒤숭숭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오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관이 있는 건물은 정말 시원했지 싶다. 건물내에 머물며 절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의 시원함은 기분이 좋았지 싶다.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다 이미 두잔의 커피를 마신 것을 기억함에도 얼음이 들어있는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말았다. 그래, 여름이다! 참고로 난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얼죽아) 파가 아니다.

웹툰을 영화화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과 생존 그리고 블랙유머를 장착한 영화이다. 대지진이 일어나 온 세상이 폐허가 되고 '황궁 아파트'만 남았을 때 그 별빛이 흐르는 아파트 안에서 그들이라도 잘살자며 그들만의 이기적(?) 생존규칙을 만들며 사는 이야기다. 모든 사회기반이 무너지고, 안전에 대한 치안이 존재하지 않는 무질서의 세상은 생존하기 위한 힘과 물과 음식이 권력이 되는 것이다. 

선택 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이기적인 선택들을 누가 감히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착한 사람도 극한 환경에 놓이면, 악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은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그들도 그들 나름의 리그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힘이 생기면 조직을 만들 것이고 조직이 생긱면 규칙을 만들고 그리고 '정의'라고 명하고 스스로도 알차채지 못할 부조리를 만들고 다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때때로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의 의견도 반영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수용하고 살아야 스트레스가 덜 하겠지만 말이다. 세상에 공헌한만큼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이 불편한가? 일한만큼, 희생한만큼 보상 받는 사회는 정당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사는 세상 아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을 묻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느 누구 특별할 것 없이 누구나 극한 환경에 처하게 되면 선악의 구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쯤은 이해한다. 타인 때문에 조금 기분이 상해도 억울함으로 날 갈아진 그 뾰족함을 되돌려 주고 싶지 않던가. 세상살이가 덜 팍팍해졌으면 한다. 멀티데믹의 상황에서 경제가 어렵고, 흉흉한 묻지마 범죄와 날씨까지 이렇게 극한적이니 유토피아 세상은 더 멀어진 것 같다. 이럴수록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하고 폐를 끼치지 않는 최소한의 예를 챙겨야 함이다. 그래, 나부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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