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
동네 빵가게 쿠폰을 사용하는데 '신분증'이 필요하단다. 자본의 원리, 소비자가 돈을 사용하는 것은 쉽게 하고 돈이 다시 회수되는 것은 어렵게 하는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이다.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인증하면 될 것을 굳이 신분증이 필요하냐고 물음표를 세웠더니, 자꾸 전화번호를 도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다 한다. 맞는 말 같은데 뭔가 맞지 않다. 그래도 명성이 있는 빵집이니 신분증을 요구할 만큼 충분한 이유들이 있을것이라 수긍해 본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 박혀있는 신분증은 타인에게 내밀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사진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아서였을까. 잘 보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은 머리 스타일과 얼굴 그리고 보정이 들어가지 않은 사진이었다. 미국본토에서 나온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이국적인 다른 맛, 순순함 내지는 촌스러움이 충만한 얼굴이 십년전 나의 얼굴이 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차저차하여 새로운 신분증에 사용할 사진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동네 사진관에 갔었다.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필요하다. 인터넷 검색을 한 뒤, 숨은 고수가 운영하는 동네 사진관을 가게 되었다. 외관만 번지르르 하고, 적은 시간을 들여 대충 일하고도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는 사진관과 다르게, 실력도 있고 금액도 착하게 요구하는 사진관을 알게 된 것이다.
사진사님은 경험이 많아서인지 여유가 있으시며 처음 보는 손님과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있으시다. 불편하지 않게 친절한 안내를 하고, 기분 좋은 소통을 잘하시는 사진사님의 손을 거친 사진은 역시 훌륭하다.
일단, 사진사님은 굳어진 얼굴에서 좋은 에너지가 나올 수 있게 부드러운(?) 안내를 잘하는 것 같다. 평소 익혀진 잘못된 자세도 유연하게 바르게 잡아 주시는 날카로운 매의 눈과 따뜻한 마음을 지니셨다. 나이든 사람한테 할 수 있는 달콤한 말중에 하나는 '젊어 보인다'일 것이다. '립서비스'인 것은 잘 알지만 언제나 기분 좋은 마술이다. 어색하고 긴장된 얼굴이 하얀 거짓말에 힘을 받아 환하게 조명 불빛을 받아 돌려준다.
사진을 찍은 후, 나이에 비해 별로 주름도 없으시다며, 잔주름을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얼른 쓱쓱 쓱쓱 신속하게 지우신다.ㅋ 눈동자가 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시다며 특히 눈동자가...ㅋ특별한 언급을 해주시니 사진사님의 립서비스는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프로의 손가락은 바삐 성실하게 보정 들어가신다. 늘어진 목도 쓱쓱 지우시고, 넓어진 이마도 줄이시고, 머리도 정리하고, 목도 라인을 좀 고치고...ㅋ
그야말로 '알아서' 프로답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얼굴 보정을 마치고 나니 정말 나이 들었어도 아름답고 멋진 여인의 얼굴이 나왔다. ㅋ 디지털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시는 사진사님은 위대하시다!
그런데, 증명 사진아닌가? ㅋ누군가 신분증 사진을 본다면 다시 내 얼굴을 들여다 볼 것 같다.ㅋ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보정 들어간 티가 나지만 디지털의 힘을 용서하고 싶다.
우리 동네에 숨은 고수가 운영하는 사진관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다. 아들들에게 사진 보내주며 자랑했다. 이런 분들이 돈벼락 맞고 잘 되어야 하는데... 사진사님이 도시 생활에 염증이 나서 시골로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기적으로 해봤다. 좋은 분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서인지 '행복감'이란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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