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밀어버린다
기억을 버리는 법
김혜수
버리자니 좀 그런 것들을
상자 속에 넣어 높은 곳에 올려놓는다
가끔 시선이 상자에 닿는다
쳐다보고만 있자니 좀 그런 것들을
더 큰 상자에 넣어 창고 속에 밀어버린다......
창고를 넣을 더 큰 상자가 없을 때
그때 상자 속의 것들은 버려진다
나도, 자주, 그렇게 잊혀갔으리라
출처: '이상한 야유회'(창비2010)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김혜수'님의 '기억을 버리는 법'에서 나오는 것처럼,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을 창고 속에 밀어 넣으며 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유목민적인 삶을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 곳에 오랫동안 사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란 단어를 가슴 판에 끌어 안으면,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며 감당해야 고단함이 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 다양한 환경에 놓였기에, 새로운 에너지를 흡수하고 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할 때 항공사에서 정해진 '이민 가방 두 개'를 가지고 갔었다. 최소한의 것들을 가지고 비행기에 함께 태운 것은 신선함과 두려움이었지 싶다. 비행기에서 내려 첫 호흡으로 마신 공기 맛은 달랐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여행자의 홀가분함까지 느끼지 않았던가. 며칠 살다 갈 여행자처럼 냉장고를 가득 채우지 않을 것을 다짐했지만, 집착과 소유에서 벗어나 물건과 가구들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다짐들이 무안하게 텅 빈 집은 낯선 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머물렀던 시간과 비례해서 짐과 같은 부피가 채워져 넘치기 시작했음을 기억한다.
지금 여기, 아직도 차마 버리지 못한 작품들이 쌓여 있는 방이 내게 있다. 웬만하면 문을 닫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시야에서 멀어지게 눈을 감고 그리고 문을 닫고 지내고 있는 것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 자신에게 저지르는 망각, 그때의 나를 저 깊숙한 방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잊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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