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22, 2023

봄은 봄이다

 베란다 창너머로 저만큼 거리에서 고귀하고 우아한 흰목련꽃이 달처럼 차오르고 있다. 작년 이맘때 보았던 그 흰 달덩어리가 때를 알아 피어나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자꾸 바라보게 된다. 흰 목련이 꽃피는 3월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등의 이파리 없는 꽃들만의 잔치가 먼저 시작하면, 연두빛 연두의 이파리들이 물감을 뿌린듯 색을 입으며 아름다운 4월의 시간을 재촉하는 모습이다. 새봄 잔치의 끝판왕 4월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든지 미국에서는 '에프릴'이란 이름을 사람명에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보았다. 

 쓰레기 무단투척 금지 방송이 들리는 삭막하기 그지 없는 도시속 작은 골목길을 걷다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들으니 내심 깜짝 놀랐지 싶다. 삐롱삐롱 삐로롱 작은 날개짓을 하며 날아가는 새들도 새봄을 축하하는 것일까. 숲은 멀고 추상적으로 짤린 가로수와 근처 오래된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 밖에 없을텐데 새들은 어디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는 것일까.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면서도 잠깐이나마 작은 새들의 소리에 감사했지 싶다. 새들도 살고 있고나. 비둘기도 살고 까치도 살고 작은 참새도 살고 다 어울려 살고 있고나.

옷장정리라는 것을 하면 계절이 완전히 바뀌는 것인데 아직도 정리를 미루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탁을 하여 집어넣은 두꺼운 옷을 다시 빼내어 챙겨입고 집어 넣지 못한다. 여러겹의 옷을 껴입으며 상황에 맞게 한겹씩 벗으면서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문을 읽다가 수선화의 만개한 꽃은 머리가 커서 지지대를 하지 않으면 그 무게를 못견뎌 쓰러지기에 지지대를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미안하든지요. 수백송이 되는 수선화에 어떻게 지지대를 해준다는 것이지. 이쁘다고 하면서도 지지대도 해주지 않았던 자신의 무식용감함이 생각나 웃픈 소리를 내고 말았다. 

운동삼아 걸어서 멀리있는 쇼핑센타에 나가게 되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많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구입할 목록이 있어서 충동적인 소비는 하지 않아 다행이었지 싶다. 마음껏 옷을 골라 실컷 입어볼 수 있었던 미국의 경험을 잊어야 한다. 구입할 의사가 없으면 묻지도 입지도 말라는 판매하는 사람들의 귀찮은 태도에 익숙해졌지만 쇼핑이 즐겁지가 않다. 다들 피곤한 모양이야. 다음부턴 돈 막 쓰게 생긴 옷차림으로 변장을 잘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ㅋ 옷들이 널려져 있는 좌판대에서 천이 좋은 티셔츠를 보물처럼 발견하고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겠어! 넘쳐나는 살도 좀 빼고 말이야!!

봄바람이 나에게도 불어오는 것일까?

날이 따뜻해지니 초미세먼지가 가득한 도시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날씨 따라 기분이 꿀꿀하긴 하지만 달처럼 차오르는 흰목련화를 생각하며 봄의 기쁨을 누리려고 한다. 오래된 아파트 쓰레기장 구석진 곳에서 진달래가 피어있는 풍경도 기억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는 것이고 봄은 봄이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