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03, 2019

Invisible

'묻지도 않고'~~~
토요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실로 들어가니 다행히 회원들이 많지 않았다. 공간을 차지하고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내하며 열심히 운동해 준 소중한 몸에 대한 감사도 가끔 하면서 멍하니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나이가 묻어있는 목소리가 들린다.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총각김치'를 담아야 하는 때임을 확인한다. 김장철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김장 절임배추를 주문받노라는 현수막이 걸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 요즈음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의 의지와 달리 육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김장을 해야하지만 몸이 아프고 힘이 들어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힘든(?) 마음을 알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타인들의 대화에 몰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묻지도 않고 남편이 고냉지 배추를 30폭을 사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다. 고냉지 배추의 생산이 종결되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는 김치를 담아야 할 할머니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감히 3폭짜리 망을 10개나 들고 왔다는 괘씸한 이야기이다. 애기같다면,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었다며 하소연을 한다.ㅋㅋㅋ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의 의사를 묻지 않았을 이유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나름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자신의 판단력을 따라 상대방의 의견을 아랑곳하지 않고 실행하는 그 결단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하는 생각이 따라 들어왔다.

의견을 묻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라도 했을까 아니면 결단력 있는 자신의 행동을 지지하는 합리적인(?) 이유들을 주절주절 할머니 앞에 내놓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니 상대방을 배려하는 척 하며 사과는 내밀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미안하다~~~'라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멋진 님들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남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혹시라도 상처가 났음을 드러낼 땐 적절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무시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차별하여 의견을 물어야 할 사람과 묻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 나누는 행위이다. 어떤 의사결정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유령취급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아주 기초적인 일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다.

'배려'가 없는 조직에선 유령인간들이 산다. 못본 척, 안들은 척, 말 없는 척 그렇게 척척하게 살게 만드는 조직은 집단적이며, 따돌림을 만들어내며, 갑질에 붙어 연대하기 마련이다. 현명한 유령인간들은 '각자도생'하며 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에 영화로 나왔다는 '82년생 김지영', 조남주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대신 책을 들고 만나고 싶었다. 도대체 이 소설이 왜 사회적인 이슈가 종종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생각나는 말은, '차마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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