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ning Forward~~~
그림자를 껴안을 수 있을까? 갑자기 생각하고 말았다. 그림자는 껴안을 수 없잖아, 캄캄한 밤이 되어 한몸이 되기까지는~~~ 빛이 있는 곳을 걷고 있자면, 그림자는 날 따라 오는 거 아닌가?
서둘러 읽은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음미하다가 함께 가야 할 '그림자'를 잠시 생각해 본다. 서양화적 관점에서 '원근법'이란 가까운 것은 크고 먼 것은 작고 희미하다. 그림자라 말할 수 있는 어두움은 빛을 표현하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빛은 어두움이 없다면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훈련 받아졌다. 그러나 현실의 그림에선 중요한 것이 커다랗다!
입체적으로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어두움과 숱한 회색의 애매함을 배경으로 그 어떤 그 무엇을 작가의 의도대로 나타낼 수 하나의 방법이 있다. 때로는 작가의 표현 욕구에 의해 강한 대조로 극명 극암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무시하고 제거하고 작가의 표현이 넘쳐나는 그림도 그릴 수 있다.
현실의 그림에선 애매함이 부족해서, 애매모호함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불리하고 불편할 때가 있다. 현실에 충실한 더 많은 회색지대를 만들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그 회색지대에서 자신의 색이 무엇인지 들키지 않고 극명한 꽃 한송이 피워낼 수 있을까. 뭣이 중한가! 의심하지 말고 피어야 한다!
물속에서 우아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무거운 머리를 잘 간수해야 한다. 머리를 숙였으나 눈은 앞으로 보고 중심을 잡고 균형감을 잃지 않고 물과 싸우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저항감을 줄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매일 다짐하고 다듬는 아침수영을 통한 지혜는 타인들과 함께 하면 흔들린다. 저항하고 싶다!
지금 여기 물밖의 난 때로는 저항본능과 마주한다.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으로서, 물밖 사적인 밴드모임은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영반 밴드모임에 가입여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인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책임이 따르고, 왕따질을 당하거나 혹은 모두를 왕따를 시키는 그런 치사하거나 용감한 풍경속에 있는 스스로를 인지 하게 된다. 정해진 시간에 나와 그룹수업을 참여하는 것 외에 친목 도모는 부수적인 일이다. 부수적인 일( 강사샘과 식사, 단체모 선정)로 인해 순수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찍 소리 말고 입다물고 모자 쓰라고 하면 쓰는 것이지 멀 그리 쯧즛)
'반에 들어와서 수업을 받으려면 반모자를 써야지~~~'
수영 단체모는 과연 누가 그토록 원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수영모에 대한 안목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과 개인적 취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고, 밥먹고 차마시느라 수영모를 여러개 살 돈이 없는경제적으로 어려운 약자들을 위한 허벌나게 좋은 세상에 사고 있다. 헐! 쓰고 싶지 않은 단체모를 마음을 다둑거리며 써왔다. 진작에 저항을 할 것을 그랬다.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여. 그까짓 것 못쓰고 수영하겄어요~~~ '그러려니'하고 뭣이 중헌겨 하고 받아 들였다. 이렇게 세상 아주 조그마한 일도 악습이 이어지는 것이다. 전통이란 이름을 가장하여 관습이란 단어에 적응하며 집단적인 악행으로 소수의 개성적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싫으면 떠나든지~~~'
홀로 튀는 것도 불편하고 해서, 참고 쓰고 다녔더니 이제 새로운 모자로 바꿔 쓰자고 ㅋㅋㅋ 내 이럴 줄 알았다.(막 숫자를 써주고 싶다~~~)
도대체 왜 단체모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인가!
첫째, 단체모를 쓰면 수업 때 눈이 어지럽지 않다.( 수영하느라 남 수영모 볼 틈 없다.)
둘째, 단체모를 쓰면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절대 그럴 일 없다. 강사샘 맘이다.)
셋째, 단체모를 쓰면 비슷해 보여서 차별받지 않는다.( 절대 그럴 일 없다. 멋진 수경을 쓴 님들 이 더 튄다)
넷째, 단체모를 쓰면 단합력이 생긴다.(단합력은 함께 더 밥 많이 먹고, 뒷땅 나눈 사람들과 생긴다.)
다섯째, 단체모를 쓰면 멋져 보인다. ( 수영 못하면 하나도 안멋지다.)
여섯째, 단체모를 쓰면 수모 살 돈이 들지 않는다.( 수모에 어울리는 수영복 사느라 돈이 더 든다.)
일곱째, 단체모를 쓰면 상급반인 줄 알고 존중한다. ( 사람들은 보는 눈이 다들 나름대로 있다.)
여덟째, 단체모를 쓰면 패셔니스타의 민폐를 줄일 수 있다. ( 페셔니스타는 수모로 튀지 않는다. 수모 말고도 여러가지 장치가 있다.)
아홉째, 단체모를 쓰면 자긍심이 생긴다.( 수영장에선 수영을 잘하는 것이 자긍심이다)
열번째, 단체모를 쓰면 강사샘이 같은 반으로 여겨준다.( 같은 모자써도 찍히면 아무 의미 없다.)
ㅋㅋㅋ
비겁하지만 신경쓰기 싫어서 단체모를 선택했다. 감정을 낭비하기 싫다! 어떤 사람들도 나처럼 그리하였을까? 나만 그런다고? ㅋㅋ 그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선 할 수 없다! 그까짓 맘에 들지도 않는 모자 눌러 쓰고 가는 것 일도 아니다. 뭣이 중헌겨!
서둘러 읽은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음미하다가 함께 가야 할 '그림자'를 잠시 생각해 본다. 서양화적 관점에서 '원근법'이란 가까운 것은 크고 먼 것은 작고 희미하다. 그림자라 말할 수 있는 어두움은 빛을 표현하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빛은 어두움이 없다면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훈련 받아졌다. 그러나 현실의 그림에선 중요한 것이 커다랗다!
입체적으로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어두움과 숱한 회색의 애매함을 배경으로 그 어떤 그 무엇을 작가의 의도대로 나타낼 수 하나의 방법이 있다. 때로는 작가의 표현 욕구에 의해 강한 대조로 극명 극암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무시하고 제거하고 작가의 표현이 넘쳐나는 그림도 그릴 수 있다.
현실의 그림에선 애매함이 부족해서, 애매모호함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불리하고 불편할 때가 있다. 현실에 충실한 더 많은 회색지대를 만들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그 회색지대에서 자신의 색이 무엇인지 들키지 않고 극명한 꽃 한송이 피워낼 수 있을까. 뭣이 중한가! 의심하지 말고 피어야 한다!
물속에서 우아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무거운 머리를 잘 간수해야 한다. 머리를 숙였으나 눈은 앞으로 보고 중심을 잡고 균형감을 잃지 않고 물과 싸우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저항감을 줄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매일 다짐하고 다듬는 아침수영을 통한 지혜는 타인들과 함께 하면 흔들린다. 저항하고 싶다!
지금 여기 물밖의 난 때로는 저항본능과 마주한다.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으로서, 물밖 사적인 밴드모임은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영반 밴드모임에 가입여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인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책임이 따르고, 왕따질을 당하거나 혹은 모두를 왕따를 시키는 그런 치사하거나 용감한 풍경속에 있는 스스로를 인지 하게 된다. 정해진 시간에 나와 그룹수업을 참여하는 것 외에 친목 도모는 부수적인 일이다. 부수적인 일( 강사샘과 식사, 단체모 선정)로 인해 순수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찍 소리 말고 입다물고 모자 쓰라고 하면 쓰는 것이지 멀 그리 쯧즛)
'반에 들어와서 수업을 받으려면 반모자를 써야지~~~'
수영 단체모는 과연 누가 그토록 원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수영모에 대한 안목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과 개인적 취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고, 밥먹고 차마시느라 수영모를 여러개 살 돈이 없는경제적으로 어려운 약자들을 위한 허벌나게 좋은 세상에 사고 있다. 헐! 쓰고 싶지 않은 단체모를 마음을 다둑거리며 써왔다. 진작에 저항을 할 것을 그랬다.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여. 그까짓 것 못쓰고 수영하겄어요~~~ '그러려니'하고 뭣이 중헌겨 하고 받아 들였다. 이렇게 세상 아주 조그마한 일도 악습이 이어지는 것이다. 전통이란 이름을 가장하여 관습이란 단어에 적응하며 집단적인 악행으로 소수의 개성적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싫으면 떠나든지~~~'
홀로 튀는 것도 불편하고 해서, 참고 쓰고 다녔더니 이제 새로운 모자로 바꿔 쓰자고 ㅋㅋㅋ 내 이럴 줄 알았다.(막 숫자를 써주고 싶다~~~)
도대체 왜 단체모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인가!
첫째, 단체모를 쓰면 수업 때 눈이 어지럽지 않다.( 수영하느라 남 수영모 볼 틈 없다.)
둘째, 단체모를 쓰면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절대 그럴 일 없다. 강사샘 맘이다.)
셋째, 단체모를 쓰면 비슷해 보여서 차별받지 않는다.( 절대 그럴 일 없다. 멋진 수경을 쓴 님들 이 더 튄다)
넷째, 단체모를 쓰면 단합력이 생긴다.(단합력은 함께 더 밥 많이 먹고, 뒷땅 나눈 사람들과 생긴다.)
다섯째, 단체모를 쓰면 멋져 보인다. ( 수영 못하면 하나도 안멋지다.)
여섯째, 단체모를 쓰면 수모 살 돈이 들지 않는다.( 수모에 어울리는 수영복 사느라 돈이 더 든다.)
일곱째, 단체모를 쓰면 상급반인 줄 알고 존중한다. ( 사람들은 보는 눈이 다들 나름대로 있다.)
여덟째, 단체모를 쓰면 패셔니스타의 민폐를 줄일 수 있다. ( 페셔니스타는 수모로 튀지 않는다. 수모 말고도 여러가지 장치가 있다.)
아홉째, 단체모를 쓰면 자긍심이 생긴다.( 수영장에선 수영을 잘하는 것이 자긍심이다)
열번째, 단체모를 쓰면 강사샘이 같은 반으로 여겨준다.( 같은 모자써도 찍히면 아무 의미 없다.)
ㅋㅋㅋ
비겁하지만 신경쓰기 싫어서 단체모를 선택했다. 감정을 낭비하기 싫다! 어떤 사람들도 나처럼 그리하였을까? 나만 그런다고? ㅋㅋ 그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선 할 수 없다! 그까짓 맘에 들지도 않는 모자 눌러 쓰고 가는 것 일도 아니다. 뭣이 중헌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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