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20, 2019

Considerations in the White Box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지역의 작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한다고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전시를 접근도가 쉽지 않은 곳에서 짧은 기간 동안 한다는 것이 먼저 아쉬웠다. 작가가 전시를 하지 않으면 작자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무섭게 다가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혹시라도 나를 나답게 할 수 있는 내적 나침반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의미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귀찮은 마음을 억지로라도 떨쳐 내었던 것 같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면 전시장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 뚜렷해지는 장소였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는 수집가 혹은 경제적 여유를 주머니에 넣고  작품들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기에는 전시회 위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작가들과 작가와 관련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덜컥 들어서고 말았다. 우리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지 싶다.

전시 작품을 바라보는, 길러지기도 한 비판적인 시선이 무뎌지고 그냥 순수하게 바라보게 되는 자신의 변화에 조금 덤덤해졌다. 화가에게 꽃이란 유혹적이라는 것을 나 또한 경험했었던 일이라 그림으로 피어있는 상투적인(?) 꽃그림을 그런대로 용서할 수 있었다. 무언가 신선하고 무언가 독특한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들이 비슷비슷하고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어떤 기술적인 능력을 뽐내는 전시회라면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유하고도 창조적인 면에서라면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이 없었다는 평을 한다면 스스로가 교만방자한 것일까. 자신의 분신처럼 쏟아냈을 작가들의 열정을 무시하는 발언이 될 수 있기에 삼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만, 시각적인 이미지가 난무하는 세상에 굳이 그만그만한 작품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난 아직도 그 거창한 '아티스트 병'에서 치유받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만 순간인지도 모른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붓을 들고 서성거렸을 그 아름다운 마음이 시간과 정성과 열정으로 피어나 캔버스 위에 꽃으로 집으로 나무로 바다로 그렇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많은 작품들이 비좁게 걸려있는 점은 전시회의 품위를 떨쳤고, 조명 또한 치명적이었다. 수묵화나 디자인 작품에나 사용할 명확한(?) 조명을 빛조절을 해야 할 분위기 있는 작품에 마구 쏟아 붇고 있는 것은 부끄럽게 다가왔다.  어느 섹션은 작품마다 조명을 신경쓰고 어디는 천장의 플랫한 불빛 아래 부모없는 애들처럼 희멀겋게 걸려있는 짜증나는 분위기를 둘러보자니 화가 은근히 치밀어 올랐지 싶다.

작품들을 걸 때 어떤 생각으로 배치를 한 것일까? 조직에 공헌한 작가님들의 작품을 눈에 띄는 자리에 걸고, 관계되는 중요한 작가의 작품을 배려하고 그리고?

작품 전시회에서 조명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의 주제에 따라 혹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조명을 맞추어야 하고, 그림의 배치 또한 흐름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작품이 독립적으로 빛나야하는 것은 이상적인 '당신의 생각'이라는 , 씁쓸한 지금 이곳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분노하라~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될테이니~~~
맞다! 작가는 개인전을 해야 하는 것이고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려,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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