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12, 2019

Grouping

아침수영을 가지 못하는 2월은 모든 것이 무겁다.  한달가량을 수영장 리모델링을 하게 되어 휴관을 한다고 하니 그 노후한 설비를 보완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운동을 하지 못한 무거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지 싶다.  수영을 하면서 어깨와 테니스 엘보우 통증과 겨울비염을 달고 있는 시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중순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 운동하지 않는 어깨와 팔꿈치의 통증은 좋아졌는가?
비염치료도 되었는가?
그동안 밀린 일(?)도 하고 있는가?

일상의 리듬이 깨진 생기없는 무거운 얼굴을 하고 거울앞에 서는 것은 두려움이다!

여행가방을 챙기며 예전과 달리 그리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심드렁하게 별 기대하지 않는 난 이제 한살을 더 먹었다.  흰머리를 애써 감추려 노력하지 않는 난 이제 늙음을 받아들인 것 같다는 것이다. 여행을 앞두고 미장원에 갔더니만 늘상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게 나왔다. 애써 이른 불쾌감을 감추고 무심한듯 만지작거리는 미용사님의 마지막 매직같은 손길을 기대했었다. 눈뜨고 볼수가 없다! ㅋㅋ결국 자신 스스로의 못난 미모탓이라 여기며 직원에게 팁까지 주는 덕(?)을 베풀었다.

다시 안방 거울앞에 있는 낯선 얼굴을 보며, 다시는 그 미장원에 가지 않겠다며 다짐을 한다. 타고난 미모(?)에 어울리는 머리를 해줄 수 있는 헤어디자이너는 없는 것인가!  처치불가인가?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빨리 말할 수 있다는 글을 아침신문에서 읽었다. 반면에 행복둔재들은 싫어하는 것에 반응하며 근심으로 마음을 채운다는 내용이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경험을 최근에 하였지 싶다. 김영란법 이후로 강사 떡값회비를 걷지 말라는 공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듯 하더니만 이제는 단합의 명분을 내걸어 단체 회식을 잡았다. 집단적인 일에 '노'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하고 사회성이 부족하며 제거되어야 할 회원인가. 달달하고 매끈한 친화력을 지닌 핵인사가 '단합'이란 명분을 내걸었다. 지도강사의 관심을 받는 회원들은 핵심 회원이 되어 그 뿌듯한 자신감으로 분위기를 챙기는 응대를 한다.  자신들은 모르겠지만 '진상질'의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회비를 더 내는 것도 아니고 운동하러 왔는데 왜 자꾸 불편하게 하는 것인가. 늙고 쭈그러든 회원은 입다물고 밥먹자면 밥묵고 모자쓰라면 쓰고 입다물고 막 나름의 힘빠진 할메 수영을 하면 된다는 것인가. 어쩌다 강사의 가르침이라도 받으면 황송하여 그동안의 무심함을 용서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이 무슨 교양있고 우아한 처세술처럼 말이다.

대단하지 않는가! 단체회식이야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인 선택의 자유가 있다지만 단체수영모자는 어찌 하는가!  여우같이 주름진 사람들이 좋은 것이 좋은겨 하며 두리뭉실 잘도 넘어가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일이 절대적으로 단합적으로 공산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침묵하며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진상질의 대물림이 되는 순간은 이런 것이다. 집단적인 힘은 이렇게 길러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수영복과 깔마춤한 나의 수영모자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개인의 취향을 무시한 단체 수모는 누구를 위한 선택이란 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영대회도 없고 그다지 수영실력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똑같은 단체 모자를 쓰게 만든 핵인사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한, 단합이란 명분을 내건  갑질에 놀아나고 있는 느낌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심혀,  찍히면 자기 왕따되어 수영장 쫒겨난다~~~'

이  비현실적인 갑질적인 폭언이 속삭여지는 상황이 인정하기 싫은 갑질 현실이다. 누가 갑질을 조장하는가. 누가 그 갑질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인가.  좋은 것이 좋다며 사회성 좋은 언니들의 세련된 격려와 침묵,  침묵할 때를 아는 여우같은 현명한 선택이 더해지고 그리고 젊고 이쁜 회원들의 친절하고도 자발적인 영향력, 모두가 공범의 지분을 이루어낸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회원 모두 간절히 단체수모를 바라고 있었던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나?

날마다 얼굴보는 회원들끼리 불편한 감정이 오가는 것이 싫어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두리뭉실하게 살아야한다며 싫어도 티내지 않는 집단적인 처세술을 배우고 있나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비겁하게 글을 토해내고 있다 있는 것이다. 아직 단체모자를 쓰고 가야 할 날이 남아있지만 행복감이 떨어지는 시간엔  내가 비겁하게 저질렀던 침묵의 선택이 불쾌하게 떠오른다.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함께 단체모를 쓰니 눈이 어지럽지 않다던 회원의 덕담을 떠올리며 웃어본다.  수영을 더 좋아하는 내가 져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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