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2, 2019

The Door

인사동 겔러리를 방문하다. 작가의 정체감 대신에 스포츠인으로  살아 가는 부인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인사동에 나가자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지 않은가.

오랜만에 전시회란 단어와 만났나 보다.  얼마만인가! 시간은 사랑했던 혹은 집착했던 많은 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전시회에 필요한 단어들을 머리 속에서 찾아 내느라 힘이 들었다.  적당한 전시회장과 시간을 정하고, 그림을 운반하는 택배회사와 그 운임과 써비스의 질을 알아봐야 하고, 초대하는 카드와 화보집을 만들어야 하고, 전시회 타이틀과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도 필요하고, 그림제목과 사이즈 그리고 미디엄의 정보를 담는 라벨과 겔러리 도면 배치도에 따라 그림을 배치할 계획도 필요하고, 리셉션 등등의  지금은 낯설어 멀게만 보이는 단어들이 신경을 쓰게 만든다 괜시리.

잠을 설쳤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얼기설기 얽혀서 올라왔다 사라지는 시간은 평화롭지 못하다. 전전반측 어두운 시간을 지나도 마음의 다짐을 굳히지 않으면 상당히 흔들릴 것 같다.  관성의 법칙이라고 해야할까. 지금 내모습이 싫지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단다. '전시회를 하면 작가요, 하지 않으면 작자라고!' ㅋㅋ ㅠㅠ

전시회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화롭고 하루가 짧은데 이제와서 굳이 '작가'란 정체성을 다지기 위해 그리 갈망하지 않는 전시회를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만들어 흔들어 깨울 필요가 있다는 말엔 반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말았다.

아침운동을 하고, 좋은 글을 읽고, 집안 일을 하며 저멀리 있는 그리운 그림 생각도 하고, 뭐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난 핑계를 내밀고 있는 것인가.  설거지를 할 때마다 시간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어떤 명상에 가까운 즐거움마저 찾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리 한심하지는 않다. 산더미로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며 무엇인가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너무 사소한(?) 것에 의미를 심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자문해 본다.  '전시회'란 말은 가슴이 뛰는 단어이지만  마음 깊은 어느 서랍에 넣어두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 여기 있는 난 그동안 흘려보낸 시간이 길들인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잘살고 있는가하는 물음표를 아직은 품고 있기에 흔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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