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의 선택
'크리스토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보기 좋은 토요일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어중간하고 애매한 '오후 3시의 심심한 마음'을 장착하고 명장이 만들어 놓은 영화를 보러 갔나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 단어들이 떠올랐다. 사람과 적당한 장소, 제국주의, 냉전주의, 국가주의, 특별한 사람과 보통 사람, 과학의 힘, 어쩔 수 없는 선택, 자발적인 선택, 사랑, 입장의 차이, 이론과 실제, 현실과 이상, 사랑의 형태, 공산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파시스트, 국가의 힘, 선과 악의 기준, 핵의 분열, 핵의 융합, 원자폭탄, 수소폭탄, 신냉전의 시대, 과학자의 양심, 프로메테우스의 불,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천재의 오만, 평범한 사람의 시기 질투, 모욕감, 권력자의 권위, 발명자와 권력자, 이기적인 선택, 꽃과 사랑, 신념, 책임, 신뢰, 제도, 적대적 관계, 상의 의미, 상을 줄 수 있는 사람, 상을 받는 사람, 이용 당하는 사람, 일본의 입장, 원자폭탄의 피해, 아이슌타인, 히틀러, 원자폭탄의 아버지, 어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지구의 멸망......
생각거리가 많은 영화였지 싶다. 영화 초반부에 '오피'에게 부진하고도 비생산적 연구 활동을 염려하여 충고하는 대사, '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잘못 선택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가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누구?''여긴 어디?'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힘든 '상황'이란 것이 있다.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있는 자긍심'이 있다면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때때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있어야 할 환경을 잘못 선택함으로서, 그 특별함이 보통에 지나지 못해 심지어 미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처럼 '양자 물리학'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문과 출신인 사람으로서는 아무리 쉬운 설명을 들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양자 물리학'이지 않나 싶다. 국익을 위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서 결정지었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갈등적인 면면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결국엔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타인들과 평화를 유지하며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갈등의 양상들을 지혜롭게 잘 조율하고 해결하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 영화였지 않았나 싶다.
위험천만한 '원자폭탄'을 만들어놓고 지구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무분별하게 만들지 말라는 조약을 만들면 핵이 없는 나라는 '어떻게'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잘 살게 되는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지구 종말은 서로의 견제와 기본적인 '인류애'를 기반으로, 서로가 자멸하는 '핵'으로 인한 파멸을 쉽게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생각한 것은 환경오염으로 초래된 '지구 온난화'로 지구멸망이 오는 상상을 했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미세 세균들에 의해 정복되는 불길한 상상의 두려움과 '핵'의 존재감에 오는 '두려움'이 섞인 '불완전한 세상'에 대한 불안함이 밀려온다. 바로 옆, 같은 반도 내에 동일한 언어를 쓰는 다른 나라 '북한'에서 핵실험에 총력을 가하고 생존의 유일한 방법으로 핵을 내보이는 도발적인 행동을 일삼는 지경에, 이제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과 함께 연대를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신냉전시대'라는 말이 불안하다. 끼리 끼리 연대를 하여 동맹을 하고 긴장감을 높이면 '힘의 균형'으로 어쩌면 전쟁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편리한 생각도 하게 된다. 맨날 '살과의 전쟁' '코로나와 전쟁' '술과의 전쟁' 이런 단어들로 '자신과의 싸움'을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그만 눈을 돌려 거국적인 사안도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뭐라고? 개인전이나 잘하라고? ㅋ'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더 말하자면, 오펜하이머가 투루먼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손에 피가 묻은 느낌이다'라며 과학자의 양심을 언급하자 투루먼 대통령의 반응이 인상적이었지 싶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는 그저 일을 한 것이고 , 그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을 사용해서 무수한 인간들을 살상하는 결정을 내리는 권한은 '권력자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묻은 손은 권력없는 과학자의 것이 아니고 권력을 지닌 통치자의 것인데 '어디서 감히 피묻은 손!' 권력자의 오만 방자한 느낌을 주는 장면은 오피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장면으로서 충분했다.
'상'이라는 단어는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이다. 상을 받으면 그동안의 수고가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어 뿌듯해지기도 하고, 또한 그 동안의 고생과 노력이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더 잘하라는 격려 같아서 더 열심을 내는 동기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하겠다. 특히 권위가 있는 고급진(?) 상을 받게 되면 자연적으로 그만큼의 사회적인 보상을 받는 것 아니겠는가.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화가 끝날 즈음에 배치해 둔 대사, ''상'을 주고 치켜 세워주면서 이용하는 그 특별한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문장은 섬뜩했지 싶다. 공산주의 성향이 있는 아내와 애인 그리고 동생 등의 백그라운드가 있는 '오피'는 '공산주의자'라는 사상 검증을 받아야 했고, 결국 '보안 인가'를 받는 것을 실패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최고급 권한'을 내려 놓아야 했다. 역동적으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천재적 특별함으로 빛났던 별같은 존재가 '빛'도 없이 삶의 긴 시간을 평범한 과학자의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별'이라며 반기는 것들은 결국 빛을 받은 별의 반짝이는 빛이라고 한다. '오펜하이머'란 영화를 통해 감독이 안겨준 별빛을 한 동안 반짝거리며 품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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