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16, 2023

기억이란 해석이다

 어라,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그야말로 적당한 아침이잖는가. 창문을 열고나니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늦은 걸음으로 오는 가을이 바로 창문밖에 도착한 모양이다. 

창문을 열고 뜨끈한 찌개를 끓여도 괜찮은 날이다. 이때다 싶어, 냉동고를 털고 냉장고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야채들을 동원하여  된장찌개를 끓이니 온 집안에 구수한 한국의 향기(?)가 퍼진다. 친정엄마 된장국은 정말 맛있었는데...왜 나의 된장찌개는 그런 맛이 안날까 묻다가 엄마표 맛이 난다는 조미액을 첨가하고 만다.ㅋ 그래도 그맛은 아니다.

'주렁주렁' 푸른 대추 열매가 달린  대추나무 가지가 밑으로 휘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며 시간의 무게를 벗어날 수 없음을 생각한다. 아파트 정원수로 심어진 대추나무에서 푸른 대추들이 푸르다 못해 익어가는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라,  대추맛을 아는 누군가는 부끄럼없이(?) 긴 막대기를 들고 대추나무를 흔들어댄다. '푸른 대추'는 피로회복에 좋다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게다가 '붉은 대추'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는 것쯤은 알고는 있지만 나에겐 '긴 막대기'도 없고 대추 나무를 흔들어댈 '용감함'(?)이 없다. 

그래서 대신에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로 그 보암지고 하고 먹음직도 한 '대추'에 대한 미련을 대신하고자 한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도로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가 차들이 뿜은 매연에 힘들었는지 유난히도 일찍 열매를 떨어뜨린다. 은행나무도 환경호르몬으로 '조숙'하게 된 것일까. 아직 나뭇잎들은 푸르고 그 황금색 잎으로 변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열매들을 떨구어낸단 말인가.

사람들이 밟으면 냄새나는 '은행알'을 요리조리 피해서  걷느라 분주하다. 은행나무는 이미 가을을 시작한 것이다. 

저녁에 비가 온다하여 오후에 서둘러 동네 공원을 나갔더니, 코스모스가 '한들한들'거린다. 정성들여 관리하지 않은 공원답게 숱한 잡초들과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혼잡한 상황에서도 코스모스가 그래도 가을이라고 투덜대지 않고 때를 알아 피어나는 것을 보고 '우주'가 코스모스 꽃 안에 들어있다는 시적인(?) 생각을 하였다. ㅋ 너무 거창한 시적인(?)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보니 바람 부는 가을이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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