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9, 2022

The Used

 '사랑초'라고 불리는 식물을 중고거래를 통해 공간안에 들여다 놓았다. 한번은 키워보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던 식물이다. 검은 자주빛과 보라색이 섞인 오묘한 색과 어리어리한 어린 줄기에 나비를 연상시키는 이파리가 인상적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허락해야 할 나이다. 그렇지만 자꾸 베란다창가에 햇살 비추는 비어있는 공간이 아깝다.

중고거래를 하다보면 이웃님들의 물건을 들여다보며 삶을 배우기도 한다. 타인의 공간에 있다 나오는 물건들은 가끔 놀랍다. 살아가는 모습이 각기 다르기에 나오는 물건은 흐름이 있다. 그릇 욕심이 많아 그릇이 넘쳐나는 사람, 화초를 좋아해 여기저기 식물이 공간을 점령하는 사람, 여기저기서 선물을 받아 세트로 그릇이 나오는 사람, 취미로 모았던 물건들을 드디어 정리하는 사람, 고급진 장식물을 내놓는 사람, 나눔을 받아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내놓는 사람, 돈이 급해 이것저것 내놓는 사람, 금을 내놓는 사람, 등등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물건을 내놓는다.

필요없는 물건을 내다팔고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중거거래가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물건을 팔기만 하던 때도 있었고 구입만 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적당한 조율을 하는 것 같아 내심 다행이기도 하다. 뭐든 과한 것은 부족함 보다 못하니 말이다. 

길에 오가다 동네 꽃집에서 '사랑초'를 찾아보지만 잘 보이질 않는다. 우연히 중고거래에 나와있는 저렴한 사랑초를 발견하고 마침 비어있는 화분에 심어주기로 하였다. 단단하게 컴팩트 하게 키워보리란 각오로 흙에 마사토를 많이 섞어주었다. 남쪽으로 나있는 창가에서 햇빛을 받으면 줄기가 튼튼해지고 색이 더 선명하게 찬란하리라. 

콩나물 보다 더 여리한 줄기에 깜짝 놀란다.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를 새화분에 옯겨 심은다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고 준비하고 있었던 화분으로 집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몇줄기가 끓겨 나가는 희생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였다. 

다음날 아침기운에 사랑초는 누윈 몸을 일으켰다. 다행이다! 그래도 일어나지 못한 줄기들을 제거했다. 견뎌내는 것들만 살아가는 것이다. 넘 참혹한가.

자꾸만 눈이 간다. 여릿한 생김새와 달리 알뿌리 식물이다. 화분에 옮길 때 보니 콩알만한 알로 뿌리를 만들고 있었다. 보라색 꽃도 들어 올릴 것이지만 이파리로만도 충분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다양한 사랑초들이 등장을 한다. 나에게로 온 사랑초는 이파리가 큰 자주보라빛 사랑초다. 미국집에 잡초처럼 올라왔던 작은 크로바에 노란꽃을 기억한다. 화단정리 할 때면 뽑을까 말까 망설였던 그 꽃이 사랑초였다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중고거래 알림단어들을 청소삼아 제거하니 세상이 조용하다. 그래도 부르는 소리가 나서 들여다보니 구매하고 싶다는 이웃님의 반가운 소리이다. 필요한 이웃님이 물건을 가져가 감사하다는 인삿말을 풍성하게 보내신다. 이웃님의 말씀을 읽고나서 깨달은 바 있어 구석진 곳에 내팽겨진 물건을 찾아내 수선집에 맡기고 돌아왔다. 새로운 가치를 일깨워주신 이웃님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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