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13, 2022

Cutting

 '가치 치기'라 부르기엔 손끝에 짓눌린 콜레우스 작은 이파리는 연약했다. 지역 중고 사이트에서 만난 이웃님의 선물로 받은 '콜레우스'를 수경으로 재배할까 한참 망설이는 중에 어느새 콜레우스는 유리컵안에서  하얀 수염같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너무 여리하게 자라나는 것이 불편해서 흙속에 뿌리를 든든하게 넣어 주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길다랗게 웃자란 식물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와중에 너무 여린 두줄기가 끊어지는 참사를 겪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 물이 잘빠지게 난화분에서 나온 난석을 밑에 깔고 세척된 마사토를 섞은 배양토로 집을 만들어 주는 정성을 들였다. 물과 햇빛을 먹으면 멀겋게 빛바랜 이파리가 활기있게 짱짱하리라는 어렵지 않은 비젼을 보았다. 난 할 수 있어. 전혀 귀찮지 않아. 나의 의미가 될 것들은 귀찮지가 않은 모양이다.

소문대로 남쪽으로 난 창가에서 신선한 바람과 맑은 햇살을 먹으니 줄기가 튼튼해지고 이파리가 커지고 붉은 핑크가 진하게 퍼진다. 신기하다. 웃고 있지만 빛을 못보고 구석에 박혀있던 스마일 티팟에 서있는 콜레우스의 붉은 빛은 이상하게 치열하다. 왜 그렇지? 티팟에 표정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웃고 있는 머리위로 붉은 빛 핑크가 자라니 시각적 언어는 웃프다.

뿌리내린 스마일 티팟이 작으니 웃자라게 해서는 안된다. 분양해서 돈을 벌 의지도 별로 없다. 다만 갖고 있으니 이웃들의 콜레우스에 더 눈이 가며 물욕이 생긴다.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콜레우스라는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동네 부동산 가게 앞에서 거칠게 자라나고 있는 튼튼한  남의 콜레우스 바라보고 걷다가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혀 넘어질 뻔 하지 않았는가. 욕심이 많다.

두근거리는 욕심은 시간이 지나며 현실에 주어진 주제파악을 하면서 진정되었난 보다. 그래, 컴팩트하게 고급진 형태의 나만의 콜레우스를 갖기로 하자고. 족함을 알고 행복하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축적된 경험이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앎의 확신으로 돌아와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다. 그야말로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주어야 하는 때를 알아 과습을 방지 하는 것과 함께 언제 가지치기를 해서 격조있는 틀을 만들어 줄 그 때를 아는 것이 내게로 온 콜레우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인것이다.  

'꼬집기'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성장점에 나와있는 어린 잎들을 꼬집어서 뜯어내는 혹독한(?) 짓을 해야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손끝에 꺽이는 어린 잎들의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시간이 지나 잎들이 새로운 가지를 만들이 나에게로 오고 있다. 

만족하다!

이에 앞서 먼저 내게로 온 '까라솔'이란 다육이는 집에 오자마자 날고생을 한 불쌍한 식물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장점을 꼬집었더니 시들시들 병든 모습으로 한참이나 있으며 시각적으로 예민한  나를 힘들게 한다. 안볼란다. 치열하게 살아나겠지.  다행히 한 가지가  성공을 해서 어린 새끼들을 만들어 놓았다. 차라리 그냥 꼬집기를 하지않고 냅두고 볼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그럴수도 있지. 어쩔 수 없다. 

햇빛을 향해 넘어가는 까라솔 티팟을 방향을 바꾸어 준다. 어쩔 수 없이 햇살로 쏠리는 것을 어찌 막을 것인가. 세상사가 그렇다. 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새로움을 항상 추구한다면 늙어도 늙지 않은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버려야 할까. 붉은 빛 신발 하나를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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