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Storm
비바람이 지나간 초가을 하늘은 축복같은 파란색 하늘에 흰구름이 가득이다. 미세먼지와 초미세 먼지까지 태풍이 몰고 갔다. 모든 것이 샤워를 한듯 깨끗하니 기분이 덩달아 산뜻하고 맑아진다.
눈부시게 좋은 날 옷정리를 서둘러 하였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옷들이다. 태풍속에서 살아남은 옷들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내놓은 옷들은 산더미로 쌓였지 싶다. '뭣이 중한가'를 먼저 생각하며 기본적인 옷들만 남기고 옷에 깃들인 추억을 떠나 보냈다. 지금은 살이 붙어 더이상 입을 수 없었을 옷들이다. 나이와 환경에 맞는 옷을 선택하는 일은 머리가 살짝 아픈 일이기도 하다. 나름 의미가 있어서 선택하고 구입했던 옷들이 아닌가. 그 결단은 삶속에 마주했던 태풍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멋쟁이'란 말은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옷은 어린시절의 콤플렉스로 진한 욕망이 깔려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잘나가던 친구의 하얀 레이스 양말과 타이트하게 달라붙던 하얀 스타킹에 비교되었던 너무 커서 주름지며 늘어졌던 나의 하늘색(?)스타킹이 잊혀지지 않는다. ㅠㅠ
어쩌면 어린시절 결핍이 옷에 대한 넘치는 소비를 나름 하게하지 않았나 싶다. 유학시절 마음껏 입어보고 골랐던 경험에서 어느정도 옷에 대한 한풀이를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이상 옷에 대한 욕망이 자라지 않음에 감사하기도 하다. '몸이 명풍이어야 한다'. 건강한 몸을 보호하고 빛낼 옷이면 된다는 생각이 지금은 지배적이다. 품격을 잃지 않고 나다운 그런 옷차림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옷장의 공간이 차오르니 마음이 불안하다. 뭔가 꽉찬 느낌은 좋지 않다.
코앞에 수영장이 있다. 마트를 다녀오다가 횡단보도에서 멋진 수영장을 지켜보며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안가는 것일까 못가는 것일까. 일단 아직 코로나 시국이다. 이제 살이 늘어 맞는 수영복이 없다. 수영장에 가지 않아도 일상의 생활이 잘 굴러가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날이 어두워지면 근처 공원을 걷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좋다. 잘관리 되지 않아 돌부리가 많은 위험한 길이지만 등산화를 신고 걸으면 걸을만 하다. 가끔은 검푸른 넓은 밤 하늘에 있는 별도 몇개 셀 수 있다. 절대 드넓은 하늘을 보지 못할 것이라 미리 좌절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흙이 있는 축구장과 야구장이 있어 맘만 먹으면 뛸 수도 있고 맨발로 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수영장에 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집앞에 수영장이 있어도 가지 않는 나는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잊어버린 것일까. 몇년 동안 수영을 하면서 즐겼던 그 기쁨을 잊어버린 것이다. 하루라도 수영을 안하면 안될 것 같았던 그 강한 욕망은 사라진 것이다. 2년하고도 몇개월만에.
그렇게 삶은 이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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