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01, 2020

Look!

'look'이란 영어 단어에서 눈 동그랗게 뜨고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ㅋ '작가미상(Never Look Away)'란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3시간 남짓하는 상영시간 때문이었다. ㅋㅋ실내 자전거에 엉덩이를 앉히고 소중한 몸에 대한 예의로 운동하며 '마음 근육 운동'에 양식도 집어 넣는다는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틈나는 대로 영어를 들어주기도 하면서 자막도 보는 영어권 영화와 달리  불어나 독일어로 시작하는 영화는 자막에 의지해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눈에 부담스럽다. 점점 멀티작업에 둔해진터라,  두 다리로 자전거를 돌리면서 자잘한 자막을 꼭 봐야하는 조건은 영화에서 펼쳐지는 시각적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는 점에 있어서 불리하다. 그러나 볼만한  영화는 다 끝내버린 것 같고, 선택할 수 있는 괜찮은 영화들은 여기 저기서 상받을 만큼 작품성 있는 비영어권 영화만 남은 지금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더이상 자막 타령 할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미상'이라는 영화제목은 영화가 끝나도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어권 제목을 보고서야 딱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어제목,'Never Look Away'에 비해 상당히 영화주제와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미상'이라고 한국내 영화제목을 정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들이 있었을 터인데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무엇을 영화속에서 놓친 것일까?

생존하는 독일 미술가로 작품가가 가장 높은 '게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그의 주요 이력을 보면,

1932년, 동독 드레스덴 출생
1951년, 드레스덴 미술대학교 입학, 벽화전공
1958~1961년, 마이스터 쉴러로 교육을 받음
1961년, 서독으로 탈출
1961~ 1964년,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공부
1971년~ 1993, 뒤셀도르프 미술대학교수로 재직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으로 영화의 시작은 아름다운 이모 '엘리자베스'와 드레스덴의 미술관에서 출발한다. '히틀러' 문화정책에 열광하는 미술관 가이드는 신의 형상으로 빚어진 아름다운 미술품들을 '퇴폐미술'로 간주하며 인간의 나약함과 추악함을 보이는 작품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 젊고 아름다운 이모 '엘리자베스'는 조카인 어린 소년 '쿠르트'에게 그러한 작품들도 훌륭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며 마음의 눈을 열게한다.

하지만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이모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고 절대 하지 못하는 행동을 표현하곤 한다.  그녀의 넘쳐나는 감수성과 민감함은 조현병자로 취급받아 인류발전을 위해 처리되어야 하는 열등대상이 된 것이다. 히틀러의  '우생학' 논리에 따라 불임수술을 강제로 받게 되고, 비밀리에 행해진 가스실에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으로 나치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시대흐름에 맞추어 살아남고자   '나치당'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엔 전쟁이 끝나고 나치당원이었다는 이유로 복직도 하지 못하고 병원 계단 청소를 하는 처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리고 결국엔 자살을 하고 만다.

이모 '엘리자베스'를 진단하여 불임수술을 결정해야 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우생학'을 신봉하는 자요, 히틀러의 군복을 사랑했던 일류주의자이다. 우수한 것을 넘어 가장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실력 좋고 냉정한 캐릭터이다. '엘리자베스'가 불임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다 떨어진 눈물 한방울이 자신의 번쩍번쩍한 구두에 묻어 있는 것을 보고는, 한점 부끄럼 없이 흰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내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재수없는 장면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히틀러의 시간이 끝난후 감방생활중에도 자신의 능력을 높은 분께 인정받아 오히려 호위호식하며  죄값을 치루지 않고 교활하고 영악하게 잘 살아가는 캐릭터이다.  '순혈주의'에 빠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딸이 열등한 화가 나부랭이의 자식을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비정하게 낙태를 시키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잘도 저지르는 소위 잘난(?)캐릭터이다. '쿠르트'가 드레스텐 미술대학교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여인은 재수없고 냉정하고 교활한 산부인과 의사 교수님의 딸이다.

'쿠르트'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라는 개인적인 표현이 제거되고 사회적인 이상을 표현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갖지 못했으리 짐작된다. 자꾸만 '나'를 찾는 '쿠르트'를 보고 사람들이 왜 넌 이기적으로 자신 생각만 하느냐고 묻는다. 너를 죽이고 전체를 보고 살아가라고 착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 사회에선 자신이 하고 싶은 '자유'를 찾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서독으로 탈출한 '쿠르트'는 다시 서독의 미술학교에 입학한 후 심각한 난제와 마주한다. '회화는 죽었다' 사실을 재현하는 일은 사진이 이미 회화의 자리를 대체한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쿠르트'의 그 막막함을 알것만 같다. 잘 그리는 그림을 포기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하라고 하니 얼마나 방황을 했을 것인가. ㅠㅠ 갑자기 대학원 시절의 난감해하던 내가 떠올랐다.  뭔가 진짜 내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엔 새로운 것이 없는데 자꾸만 새로운 것을 내놓으라 하니 참으로 힘들었다. (지금도 난 이 문제를 풀지 못한 듯 하다. 내꺼를 내놓으면 되는데 거기다가 소통까지 하라고 한다. ㅋㅋ)

캔버스를 찢어도 보고, 물감을 뿌려도 보고, 덧대어도 보고, 거꾸로도 그려보고, 못그린 척 그려도 보고, 그디다가 말아 보기도 하고, 선 하나 긋고 브라브라 말만 씨브렁씨브렁 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은 포기하고 잘하는 것 하면서 길을 찾기로 했었다. ㅋㅋㅋ  영화에서 '쿠르트'가 남들처럼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자기 것을 찾는 와중에 지도 교수님이 스튜디오에 왕립하신다. 좀처럼 해주지 않는 크리티크를 해주시는 것이다. '저것들은 다 니것이라고 할 수 없어. 가짜야!' 뭐 이런 뜻으로 말했던 것 같다. '진짜 니것을 보여 주시게나!' (영화중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부분이다. 영화속에 내가 있는 듯~~~)

그래서 '쿠르트'는 스튜디오에 있는 실험작들을 전부 태우며 다시 자신으로 태어난다.

회화가 사진으로 인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영화는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을 카피한다는 자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에 가장 가까운 사진을 가지고 보여주고 싶었던 진실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흐릿하게 ,애매하게 표현함으로서 더욱 명확해지는 진실성을 보여주는 그런 작품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를 끼쳤던 '이모''아내''장인어른''아버지' 등 얼굴들이 모여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찰나처럼 스치고 지나가버린 시간의 기록을 가진 얼굴들을 그리다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은 화가의 몫이다.

'진실은 응시하는 것이야' '절대 눈돌려 피하지 말아'~~~


Ella, Oil On Canvas, 2007 by Gerhard Ri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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