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5, 2020

The Dignity of Ageing

여인이 나이를 입어 아름다움을 잃게 되면 지혜로워지거나 교활해진다는 말이 있다. 웃을 때는 눈이 보이지 않도록 눈웃음을 짓는 그런 얼굴들이 독을 품은 표정을 드러내는 순간은 느리고도 강하게 깊숙하게 각인된다.

수영 단체수업을 들어가려다 보니 상급반 킥보드가 없는 것을 보게 되었고, 좋은 마음으로 킥보드를 챙겨 우리반 레인앞에 들고 가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킥보드를 들고 가던 터라 내려놓을 때 그만 소리가 나고 말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던 킥보드들이 물기가 있는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상당한 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평소에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얼굴들이 화들짝 놀라며 때를 만난듯이 놀란 가슴을 웅켜쥐며 심장마비라도 걸릴 것 같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단체 수영이란 운동을 하다보면 가끔은 놀랄 일이 생긴다.  평소에 길러진 관계의 끈끈함에 따라 혹은 숨겨놓은 적대감에 따른 무조건적인 반응이 필터를 걸치지 않고 그 짧은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다.

고의로 주변의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놀란 가슴을 웅켜잡고 부정적으로 타인의 실수를 강조하며 확대하는 사람을 어찌 응대해야 하는 것인가.

킥보드를 챙겨 수업준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담임 강사라는 훈계아닌 훈계를 들었다. 수업에 임하면서 강사 대신  킥보드를 들고 들어간 선택은 주제가 넘었던 것일까. 칭찬을 받고 싶어서 킥보드를 들고 들어간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따뜻해질려고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제넘게(?) 킥보드를 들고 들어온 행동에 대한 못마땅함에  이미 당황한 것은 아니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놀래서 놀랐다고 하는 것이 어디 잘못된 일인가!  순간적으로 놀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빌미로 얼굴을 찌푸리며 이러쿵저러쿵 씨부렁대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선을 지키지 않는 공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럼 여기서 선을 넘어 들어온 사람에 대한 응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품위를 잃고 얼굴을 지푸리는 사람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해야 했다.
'일부러 그런 일이 아니니, 노여움을 그만 푸시죠~~~'

착한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싶다라고 마음을 정리하였다. 자신들과 친한 사람이 그런 착한(?) 일을 하다가 실수로 소리가 났다고 하자면? 그림이 그려진다.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며 실수로 일어난 놀랄 사운드에 웃어가며 길이길이 기억할 일이다.

자신은 타인의 실수에 관대한가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마음이 쪼그라들어 더욱 고집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는지 혹은 두려움과 노여움에 타인의 선한 마음을 악으로 해석한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이번 일로 '주름살의 품위'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선입견으로 마음을 옹졸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더욱 넉넉하게 여유있는 그런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멋진 주름살을 만들어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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