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9, 2018

in the Kitchen

무더운 여름을 핑계로 (아니 지난 여름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부엌에서 시간을 갖는 일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이었지 싶다. 습하고 더운 백년만의 재앙(?)을 피하다 보니 밖에서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던 것이다. 맑고 청명한 바람이 창문으로 밀려오니 부지런하고 선한 마음이 일어 자꾸 부엌으로 갈 일이 많아지고 있다.

찬바람이 불어 요리하기 좋은 날이라서 부엌으로 돌아가니 일이 끝이 없다. 오이 김치, 양배추 물김치, 배추김치, 깻잎김치 등의 김치를 담고나니 주부로서의 엔진에 발동이 걸린 것인지 슈퍼에 초록으로 누워있는 열무를 사러가고 싶다는 것이다. 먹을 김치가 이리 많은데 말이다. 매운 맛이 도는 푸른 고추를 가지고 푸른 열무김치를 담아 보고 싶은 욕망(?)이 앞서는 것을 커피한잔을 들고 막아서 보고 있는 중이다.

여름 내내 뭐 먹고 살았던 것이지?

푸른 여름 위에 제법 붉으스레한 가을이 내려앉고 있는 풍경이 남쪽으로 나있는 창문으로 보인다. 밀린 책도 읽어야 하고, 옷도 다려야 하고, 가까운 산에도 가서 흙도 밟아야 하고, 김장에 사용할 생새우를 구입해 젓도 담아야 하고 등등의 생각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리하여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는 모양이다.

먼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김치를 담궜다는 것이다. ㅋㅋ 금값 보다 비싸다는 배추가 추석을 지나 가격이 그야말로 착해져 있었다. 큰 아들이 좋아하는 배추를 사다가 하얀 천일염에 하룻밤을 절였나보다. 오랜만에 하다보니 서툴고 속도가 잘 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과 작은 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홈쇼핑 배추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과 옅은 소금물을 머금은 배추는 가을 배추답게 실망스러운 맛은 아니어서 다행이었기도 하다. 친정 아버지께서 기르신 햇고추와 마늘을 넣고 무우와 양파 배 그리고 약간의 생강...하다보니 요령이 붙는다.

스마트폰에 물어보면서 말이다. 스마트폰에서 검색을 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는 모르겠다. 고수들의 김치 담는 법을 읽어 보면서 차근차근 배추를 잡고 소금을 뿌리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중에 순서를 정해 양념을 만들고 결국엔 신선한 재료와 요리하는 자의 때를 아는 지혜와 부지런한 손놀림이 함께 버무러지는 그 과정을 즐기기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에너지로 음식을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서 담는 김치는 결국엔 맛있고 뿌듯하게 가득하게 행복하다!

물론 피곤하다!!

땅을 일구어 고추 모종을 심고, 바람에도 꿋꿋할 지지대를 심어주고, 때때로 벌레도 잡아주고, 무더운 여름날 물도 뿌려주고, 붉은 고추를 거두어 말리고, 그리고 붉은 고추가루를 만드는 그 과정을 잉태한 주름진 친정 아부지의 고추가루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오래오래 유지되면 좋겠지만 역시 시간을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난 예술가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엌에서 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김치를 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뭣이란 말인가! ㅋㅋ 비겁한 변명으로 보이는가? 비어있는 하얀 캔버스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기 지금의 난 자꾸 막 잡아 올린 생새우들이 튕겨나는 모습에 마음의 방향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뭣이 중헌겨?
그리하여 부엌으로 난 오늘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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