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25, 2010

New York #1


오년전 미국에서의 첫 가족여행으로 동부지역을 돌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위대한 광경을 시작으로 해서 보스톤의 하버드 대학을 견학하고 잠깐 뉴욕에 들렸을 땐 '자유의 여신상'과 911 폭격으로 무너진 빌딩들의 잔해 그리고 엠파이어 빌딩 꼭대기를 기어코 올라갔던 기억들을 남겼었다.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이라는 '월가'와 귀에 익숙한 브로드웨이의 거리를 거닐었던 것이 기억의 잔줄기들로 남아있다면, 이번 뉴욕여행은 현대미술의 중심부로 이끌고 있는 뉴욕의 갤러리들을 견학한 것은 아직 공부할 것 많은 예술학도에게는 유익한 발걸음이었던 것 같다.

공기좋고 푸른 카본데일을 떠나는 일은 고통(?)의 출발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낯선곳으로의 여행에서 얻어지는 익숙한 곳으로의 그리움같은 것을 강하게 느껴보고 싶었기도 하다. 늘상 보고사는 아름다움은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하기에 잠시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다. 역시나 한여름날의 여행은 덥고도 힘들었다. 여름방학 동안 줄곧 거실과 침실을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체력이 중년 아짐이었다. 모처럼만의 여행이지만 들뜬 마음도 생기지 않는 것은 내가 늙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무력하기도 하였다.

여행가방을 챙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 옛날 여행가방 챙기는 일은 꽤 좀 했던 것 같았는데...편안한 신발을 하나 구입했어야 했는데 게으른 마음에 그냥 가자했던 것이 발바닥에 통증을 가져오는 댓가를 치루기도 했다. 역시 길 떠날 땐, 신발이 편해야 한다는 사실! 매번 깨닫는 사실이지만 언제나 어렵던 일 중의 하나이다. 운동화 신고 스타일나는 몸매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가 쬠만 길었어도 운동화 신고 막 신나게 다니는 것인디...굽 낮은 쪼리를 대부분의 여성들이 신고 다녔다. 그녀들은 다 알고 있었다.

오년하고도 칠개월만에 하늘에 가까이 갔나보다. 비행하기 위해 상승하는 그 순간은 신난다. 구름위로 올라가 뭉게 뭉게 하이얀 구름들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들을 눈 빠지게 내려다 보았다. 미국이라서 푸른 숲들이 거리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푸른 하늘...그것도 잠시 새벽에 길떠났던 탓에 잠들고 말았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만의 비행순간은 오분도 안되어 잠들고 말았다.

깨끗하고 멋진 한국의 공항과 비행기를 오랫동안 기억한 탓으로 이곳의 허접한(?) 공항 분위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보딩 티켓을 직접해서 티켓을 끊어야 하는 과정도 왜 그리 심란해 보이던지...이것도 내가 나이든 증거이다. 액체인 샴푸와 린스 등 목욕 용품은 기내반입이 되지 않는다하여 가방 운송비를 이만오천원이나 더 요구하던 일이 내게는 생뚱맞아 보였다. 난 몰랐다. 왔다갔다 오만원정도의 운송비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샴푸였던가! 그래도 쓰던 것 써야지...난 소중하니깐...생각하니 복잡하다...그냥 가방 값 지불.

보스톤에서 좋은 분들이 사는 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설악산 큰 바윗돌과 계곡 물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집은 삼면이 푸른 나무로 드리워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계곡 물소리를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창문을 열고 잠들었더니 쉬지 않고 소리나는 물소리 그것도 소음이긴 했다.ㅎㅎㅎ 어쩌다 들어야지 귀한 것인가 보다. 자연의 소리이니 잠이 잘 올 것만 같았는디...우리집 그 이쁜 새소리에 잠을 못잔다고 투덜대던 누군가의 그 잠못든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길 떠나면 잠을 잘 못자는 내가 또 있었던 것이었다.

보스톤에서 뉴욕으로 가는 버스는 이층 버스였다. 네시간 정도를 버스가 달렸다. 기사님은 일층에 화장실도 일층에 있었다. 한국 고속버스는 잠자기 좋은 의자였던 것 같았는데, 좁고 뒤로도 약간만 움직일 수 있었다. 비행기 의자처럼.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래도 잠들었다.

다행히 뉴욕시내 한복판에 터미날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예약이 되어 있다는 콘도호텔에 갔더니 민박집이었다. 황당! 뉴욕 시내에 위치하고 가격도 싼 것은 아니지만 비싼 호텔에 투숙하는 것 보다는 훨씬 경제적이서어 선택한 곳은 막상 가서 보니 민박집이었다. 높은 건물의 오피스텔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할까. 어쨋든, 방하나에 화장실이 딸린 마스터 룸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마스터 룸이 '안방'을 말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콘도라는 곳에서 마스터 룸을 준다고 했다기에 뭐 좋은 곳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의문을 품지 않았었다.

부부가 쓰는 방이라서 욕실이 딸려있는 방이었다. 젊은 학생들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잔금은 카드결제가 안되고 현금으로 달라고 해서 어찌나 가족적이던지...샴푸는 다있고 수건만 없다나요. 난 샴푸만 있고 수건만 없는디...호텔에 수건은 있어도 치약과 샴푸가 없었던 것 같은디...샴푸땜시 지불한 돈이 얼마인디...사소한 일에 화가 솟구쳤다. 그렇다고 그날밤 갑자기 어디에서 지친 몸을 누일 곳을 찾는단 말인가! 참고 말아야 하고 당하고 말아야 한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순순하게 믿어서는 안되고 더 집요한 조사를 해야 한단 것이다.

뉴욕의 밤거리로 나갔다. 간만에 들어보는 도시의 소리들! 노란 뉴욕의 택시들, 자전거 그루마, 엄청나게 커다란 멋진 광고들, 수 많은 히스패닉 사람들, 날씬한 사람들, 탁한 공기! 숨이 막히게 더웠다. 바람도 부는 것 같았는데...빌딩숲에서 나오는 숨막히는 열기...빨리 카본데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서 이 도시의 숨막힘을 잊어야 한다. 어서 빨리 맛있다는 뉴욕의 한국음식점에 가서 무엇인가를 먹고 볼 일이다.

빨갛고 달콤한 비빕냉면을 먹었더니 속이 놀라고 말았다.

미술관을 관람하기엔 늦은 시간이라서 서둘러 뮤지컬 티켓을 반값에 구입해서 밤시간을 잘 꾸렷나 보다. 서너개의 유명한 뮤지컬은 본것이라서 마땅히 볼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뮤지컬을 보았다. 잘나간다는 새로운 뮤지컬은 할인을 하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보다 환상적이지 않고 맘마미아 보다 친숙히지 못하고 시카고 보다 볼거리가 없고...차라리 라이언 킹을 볼 걸 그랬나. 좀 심심했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뉴욕의 한복판엔 역시 삼성 광고판이 있었다. 칠년전 런던 한복판에서 보았던 삼성 광고판처럼 그 느낌은 자부심이 들었다. 엘지 광고판도 있었다. 신호등을 따라 바삐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들 가끔 그리워하는 대도시의 풍경과 숨막히는 탁한 공기를 호흡하며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가 어김없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뭔가 유전적으로다가 진보된 상태일까. 대부분이 여행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스패닉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였다. 일종의 유럽에서 건너온 하이얀 미제인들을 보기가 좀 어려웠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인종차별이 시골보다는 덜하다라고 말들을 하는 것일까. 호텔문을 여는 사람들은 흑인들이고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멕시코 인들이고 그리고 버스 운전사는 중국인이고 백인들은 다 어디에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오고가는 사람들 구경을 실컷했나보다. 현란한 광고판을 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진보한 하이 테크닉 광고판들은 멋졌다. 세계의 중심이라 일컫는 뉴욕 한복판에 광고판을 올리려면 한달에 얼마나 지불을 하는 것인지 좀 궁금했다. 로마의 오래묵은 거대한 건축물을 보는 것처럼 뉴욕의 광고판을 보는 것은 멋졌다.

민박집의 방은 전망은 좋았다. 하지만 도시의 길거리 소음은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이 도시의 소음이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너무 조용하면 이상하다는...다음날의 박물관 견학을 위해 아픈 다리를 올리고 잠을 자긴 잤다. 비록 다음날 열블록이나 걸어가야 하긴 하지만, 뉴욕의 맛있는 한국음식점에 가서 무얼 먹을까 하는 즐거운 생각도 하면서. 맛있는 한국음식과 그리고 멋진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은 댓가를 치룰 만 하다. 삼십팔층 높은 곳에서의 첫날밤은 건조했다. 다들 어찌 산담. 뉴욕의 첫날밤은 도시의 소음으로 잠이 잘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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