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05, 2023

봄비



귀한 봄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쁜 봄꽃들이 비를 맞고 떨어지는 슬픈(?) 풍경도 있지만 오랫동안 대지가 마른 상태로  여기저기서 쉽게 불이 일어나 위험했는데 그나마 귀한 봄비가 내려서 다행이다.  봄비가 내리니 끝없이 퍼져 나갈 것만 같던 불길이 잡히기도 하고, 목마른 대지가 생명의 수분기를 얻어 씨앗을 품을 수 있도록 촉촉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봄에는 바람도 불고 보슬보슬한 봄비가 자주 내렸던 것 같은데 요즈음의 날씨는 메마르고 건조한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 오후 산책을 하였다. 목련꽃과 벚꽃이 비바람에 떨어지고 철쭉이 꽃봉우리를 들어 올린다. 연두빛 새싹들이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파릇파릇 솟아나는 사월의 봄비 오는 날 풍경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내리는 봄비를 피하지 않고  운동기구를 붙잡고 각자 운동을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먼저 건강을 챙기고 볼 일이다. 으쌰으쌰...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 공원을 걷자니 봄비 맞고 서있는 꽃들을 사진 찍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ㅋ 그냥 마음속에 담으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2023년 봄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저항할 수 없는(irresistible) 작품 시리즈로 생각이 닿았다. (작은 사이즈의 유화작품들이 이제 여기저기로 흩어져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몇개 되지 않다) 꽃그림을 그리면 상투적이고 상업적인 시각으로 보여 피하여 할 주제였지만 난 저항하지 않고 꽃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새로운 실험을 하기엔 전통적인 미디엄(유화)으로 그냥저냥한 꽃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닥 실험적이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참지 못하고 그렸다! 그야말로 그러든지 말든지 그리고 싶으니까 그린 작품들이었다. 

향기로운 작약, 동네에 오랫동안 피어있던 난초꽃, 내 정원에 있던 노란 장미, 붉은 장미, 신기한 국화, 수선화, 개망초,등 그리고 싶은 꽃을 두고 그냥 그렸다. 그려야 할 이유가 더 컸던 것이다. 꽃은 오래가지 않아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다. 찰나적이고 향기롭고 유혹적이다.

마음이 설레어서 그린 것이다! 

봄꽃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이 설레는 일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흰목련꽃은 사라지고 마음 좋아 보이는 목련의 푸른 이파리들만 보인다. 겨울동안 에너지를 비축해서 이른 봄에 꽃을 내놓던 봄꽃이 사라지고 이제 여름꽃의 때가 올 것이다. 철쭉이 일어나면 장미가 필 것이고 장미가 피고지는 사이 수국과 접시꽃이 필 것이고 무궁화 배롱나무 꽃이 필 것이다. 각자의 때를 따라 최선을 다해 피고 질 꽃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고 감사함이다. 

청춘의 열렬함이 사그라진 것 같지만 난 은은함으로 남을 것이다. 내 이름 그대로 은은하게 순하게 자신의 시간을 고요하게 꾸릴 것이다. 이제 주어진 이름의 뜻을 제대로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었음이다. 귀한 봄비가 내리고 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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