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Out
https://www.youtube.com/watch?v=R7oBWqX-Smk
-inside out full sound track
오래되고 웅장한 미제 영화관에 가서 'inside out'이란 만화영화를 보고왔다. 메르스로 인해 몇달(?)간 극장에 가지 못한고로 시원하게 펼쳐질 환상적인 만화영화에 대한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이었을까. 과도한 기대탓으로 그 친절한(?) 묘사력에 그만 거만한 내 눈꺼풀은 내려 앉았다. 아~ 졸았구나 그런 느낌. 분명 눈을 뜨고 있었는데 눈앞이 캄캄한 그 상태! 경험하고 말았다.
기쁨이 출장을 가고 슬픔도 출장가고 머 까칠함이 내안의 주인이 된 순간이었을까나? 어떤 사전 지식없이 보았던 영화인지라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영화 뒷담화를 가족들과 나누어 보기도 하였다. 혹시 내가 감이 떨어지고 무뎌졌나해서 말이다.
어린시절 나도 즐겁고 행복한 아이였을까? 상상력과 창의력이 특별하였을까? 어른이 된후 나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그 감성은?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에 고맙기도 하다. 난 어린시절 밥 잘먹고 잘놀고 행복했지싶다. 학교가기전까지.ㅎㅎㅎ 시골에서 뛰어다니며 고구마 삶아 먹고 고구마 말린 것 먹고 가지 먹고 오이먹고 또 ...오가닉 유기농 음식을 먹은 나의 어린 신체는 건강하였지 싶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어린 나이에 책상에 쪼그리고 있을 필요를 못느꼈으니깐 난 방생된 어린시절을 보낸 행복한 아이였지싶다.
그때 국민학교라 불렸던 초등학교에 손수건 왼쪽 가슴팍에 꽂고 간 순간부터 난 당황과 황당의 순간을 맛보았지 싶어. 변두리 국민학교의 가난한 학교생활의 모습이 있음을 미소 머금으며 말할 수 있는 지금은 중년을 넘어 이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돌아보니 대단하다 싶다. 내가 살아온 역사가.
필기도구 한번 잡아보지 않고 학교간 오가닉 유기농 소녀가 할 수 있었던 붉은 색 색연필의 선긋기는 떨렸고 엉망이었지. ㅎㅎㅎ 자존심과 자만심이 없었던 아주 순하고 착한 상태라 할 수 있겠다. 그래 기쁨이 주인노릇을 했겠지. 엄마의 치마바람 없는, 존재감 없는 국민학교 생활을 했었지. 그래 암흑기야!!ㅋㅋㅋ 그리곤?
어린시절은 슬프지 않았어. 돌이켜보면 그냥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인 것 같아. 숙제는 전과보고 복사하고 복사하는 것이 정말 싫었었다.ㅋㅋㅋ 상욕심 없이 그 세상을 뛰어 논것이지. 비겁함과 까칠함이 없고 열받침이 없던 깨끗했던 시절! 그렇게도 살았지. 밥주면 밥먹고 놀 수 있으면 놀고, 공부는 하지 않고, 학교에선 뭐했지? 운동장에서 선긋고 논 기억밖에 없넹. 상받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도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은 방학때면 매번 시골 친척집에 가서 여름과 겨울 방학을 유기농으로 놀았던 것이다. 감나무에 올라가 유행가를 큰목소리로 불렀고, 산에 올라가 땔감용 나무를 하였으며, 친구들과 고무신에 올챙이를 잡고 놀았던 그 추억은 학교 상장과는 바꾸지 않고 싶다. 판타지도 있었지 그래 저수지에 나온다는 밤에 나타나는 머리푼 소복 입은 여자의 공포 판타지 그리고 변소라 불리던 그곳에 다리를 빠뜨리지 않으려 했던 그 공포를 이겨내던 그 체력 자동차가 없어 먼 거리를 걸어 다녔던 그 체력 그래 까칠한 지성은 없고 체력만 가득했던 그땐 난 행복한 아이였다!
-inside out full sound track
오래되고 웅장한 미제 영화관에 가서 'inside out'이란 만화영화를 보고왔다. 메르스로 인해 몇달(?)간 극장에 가지 못한고로 시원하게 펼쳐질 환상적인 만화영화에 대한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이었을까. 과도한 기대탓으로 그 친절한(?) 묘사력에 그만 거만한 내 눈꺼풀은 내려 앉았다. 아~ 졸았구나 그런 느낌. 분명 눈을 뜨고 있었는데 눈앞이 캄캄한 그 상태! 경험하고 말았다.
기쁨이 출장을 가고 슬픔도 출장가고 머 까칠함이 내안의 주인이 된 순간이었을까나? 어떤 사전 지식없이 보았던 영화인지라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영화 뒷담화를 가족들과 나누어 보기도 하였다. 혹시 내가 감이 떨어지고 무뎌졌나해서 말이다.
어린시절 나도 즐겁고 행복한 아이였을까? 상상력과 창의력이 특별하였을까? 어른이 된후 나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그 감성은?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에 고맙기도 하다. 난 어린시절 밥 잘먹고 잘놀고 행복했지싶다. 학교가기전까지.ㅎㅎㅎ 시골에서 뛰어다니며 고구마 삶아 먹고 고구마 말린 것 먹고 가지 먹고 오이먹고 또 ...오가닉 유기농 음식을 먹은 나의 어린 신체는 건강하였지 싶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어린 나이에 책상에 쪼그리고 있을 필요를 못느꼈으니깐 난 방생된 어린시절을 보낸 행복한 아이였지싶다.
그때 국민학교라 불렸던 초등학교에 손수건 왼쪽 가슴팍에 꽂고 간 순간부터 난 당황과 황당의 순간을 맛보았지 싶어. 변두리 국민학교의 가난한 학교생활의 모습이 있음을 미소 머금으며 말할 수 있는 지금은 중년을 넘어 이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돌아보니 대단하다 싶다. 내가 살아온 역사가.
필기도구 한번 잡아보지 않고 학교간 오가닉 유기농 소녀가 할 수 있었던 붉은 색 색연필의 선긋기는 떨렸고 엉망이었지. ㅎㅎㅎ 자존심과 자만심이 없었던 아주 순하고 착한 상태라 할 수 있겠다. 그래 기쁨이 주인노릇을 했겠지. 엄마의 치마바람 없는, 존재감 없는 국민학교 생활을 했었지. 그래 암흑기야!!ㅋㅋㅋ 그리곤?
어린시절은 슬프지 않았어. 돌이켜보면 그냥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인 것 같아. 숙제는 전과보고 복사하고 복사하는 것이 정말 싫었었다.ㅋㅋㅋ 상욕심 없이 그 세상을 뛰어 논것이지. 비겁함과 까칠함이 없고 열받침이 없던 깨끗했던 시절! 그렇게도 살았지. 밥주면 밥먹고 놀 수 있으면 놀고, 공부는 하지 않고, 학교에선 뭐했지? 운동장에서 선긋고 논 기억밖에 없넹. 상받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도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은 방학때면 매번 시골 친척집에 가서 여름과 겨울 방학을 유기농으로 놀았던 것이다. 감나무에 올라가 유행가를 큰목소리로 불렀고, 산에 올라가 땔감용 나무를 하였으며, 친구들과 고무신에 올챙이를 잡고 놀았던 그 추억은 학교 상장과는 바꾸지 않고 싶다. 판타지도 있었지 그래 저수지에 나온다는 밤에 나타나는 머리푼 소복 입은 여자의 공포 판타지 그리고 변소라 불리던 그곳에 다리를 빠뜨리지 않으려 했던 그 공포를 이겨내던 그 체력 자동차가 없어 먼 거리를 걸어 다녔던 그 체력 그래 까칠한 지성은 없고 체력만 가득했던 그땐 난 행복한 아이였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