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05, 2012

Still There!--------Soony Eunsoon Seo


나는 삶의 맛이 커피의 맛과 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였고, 그리고 결혼도 하였고 그리고 아이들도 낳고 그들을 길렀다. 그러나 때론 결혼을 한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들로 만족할 수 없었던 사실에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난 나를 잊지 못하고 나를 찾으려 하는 것인가! 그냥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 수 없는 것인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말이다. 신앙생활을 하며 주어진 생활에 감사함으로 내 마음속에 이는 불안감과 회의감을 잊으려 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불 정체성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알고자 했던 그 의문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직까지는 분명하게 깨달아 지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므로 난 내 스스로에게 물었던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감의 질문의 대답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나를 나답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는 즐거움, 노래하는 마음, 운동이 주는 산뜻함, 세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화실에 가서 앉아 흰 도화지 속에 그려 놓았던 네모난 벽돌! 그 벽돌을 바라보며 뛰었던 그 가슴 벅참은 그 어떤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도 아직도 내 마음속의 잊혀지지 않는 마음속의 정물화로 남아있다.

난 정물화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물들이 삶의 일부분으로서 내가 살아오며 간직한 추억거리들과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들은 제각기 필요와 용도에 따라 각자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사물들은 소유하고자 갈망하던 것들 이기도 하며, 그리고 때로는 간절히 필요로 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소중한 친구 같은 책, 꽃 한 송이를 사오지 못하고, 식구들 먹거리를 사야 했던 시절에 내 빈 꽃병, 보기엔 아름답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그 향기롭고 색이 고운 꽃들, 탐스럽게 익은 과일들을 씻을 때의 싱그럽게 풍기던 행복한 내음과 사과 같은 욕망을 난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었을 화가가 되어 보는 것은 먼 이야기가 된 즈음에, 도전처럼 순결함으로 버팅기고 있는 흰 도화지에 그렸던 붉은 벽돌의 의미는 그 벽돌 앞에서의 흥분된 추억이 없는 사람들은 그 느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건축가는 벽돌 한 장으로 시작해서 건물을 들어 올리고 난 그 순간 도화지에 벽돌을 그리므로 지금의 내가 되는 주춧돌을 놓았다는 소중한 경험의 의미를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를 가르쳤던 그 벽돌 아니, 나를 일으켜 세울 그 단단한 벽돌, 하찮은 벽돌이지만 큰 의미로 서 있는 그 벽돌과의 첫만남이 없었다면 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난 잊지 않고 있다. 나의 벽돌처럼 누군가는 하나의 볼 것 없는 벽돌로 시작해서 웅장한 자신의 건물을 세워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정물화를 그리면서 깨닫게 된 하나의 시각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의 벽돌을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대생이 되어 무엇인가를 의미 있게 그릴 수 있던 즈음에 난 벽돌을 넣어 그림을 그렸다.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을 잊지 말자고.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꽃보다 아름다운 색을 지니지 않았지만, 시간과 함께 흘러 떠나는 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진 않았지만 내 마음속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그 벽돌을 나는 그림으로 기념하였다.

이곳 미국에서 미대생이 되어 수업시간에 그려야 했던 정물화의 소재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젊은 친구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정물화를 유화로 그리던 첫 배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난 그저 수업시간에 그려내야 할 과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각 사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단지 전경 중경, 후경 그렇게 유화를 어찌 그려내는 지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의 통찰력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구성 보다는 그 각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특성을 잘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물들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는 듯하였지만, 그들은 나의 그림 속으로 옮겨졌고, 나의 그림 속의 사물들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경험들로 인해 나는 도전을 받아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의미 있는 발견을 한 셈이다. 구깃구깃 주름져 있던 천이 만든 형상을 보고 세상을 살아가며 구겨진 나의 열정과 젊음을 생각했고, 그리고 매끄러운 도자기를 보며, 예술로서 설 수 있는 도공의 정진하는 그 맑은 마음을 보았다. 램프를 그릴 땐, 어두움을 밝힐 그것의 존재를 나의 삶과 연관 지어 보기고 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한 그림을 알맞은 구성과 명도, 그리고 텍스쳐를 동반하여 나타내는데 열정을 다 하였다. 그것이 나의 첫 흑백 유화 정물화이다. 사물에 대한 추억과 느낌 그리고 사유하는 힘이 없었다면, 천은 천이고 꽃병은 꽃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들의 존재감을 아는 화가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물론 때때로 천은 천이고 꽃병을 꽃병이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칼라 오일 페인팅을 배울 때, 교실의 정물화 셋팅 속에서 머리 없는 새를 보았다. 아름답고 행복한 정물화에 익숙한 평범한 시각을 갖고 있던 터라, 머리가 없는 새를 그리는 것이 사뭇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담담 교수님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 믿고, 충실히 머리가 없는 새답게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는 다리와 발을 온 정성을 다해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나의 깨달음은 ‘그림은 머리로 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깨달은 자의 흥분함으로 담당 교수님께 깨달음을 신고할 겸 여쭈어 보았다. 왜 새가 머리가 없는 것인가요?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긴 시간이 흐른 후 그 머리가 없는 새의 의미를 그림에 정진하는 동안에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화가는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그린다는 것을.

머리 없는 새를 그린 이후로도 난 나의 정물화들은 많은 생각거리와 나의 열정으로 붓질하여 졌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머리 없어서 발로 나무를 꼭 붙들고 있었던 그 교실 속의 셋팅을 간혹 잊지 않고 생각하게 된다. 마음으로 그리라는 깨우침, 그리고 내 얼굴 속에 박혀있는 눈은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없고, 때로는 눈을 가리고 귀가 없고 입을 다물었을 때 진실이 더욱 뚜렷해진다는 사실을 인생이 깊어진 만큼 보게 되었다.

페인팅 전공생이 되어 난 ‘Little Life#1’ 과 ‘Little Life#2’로 불리는 시리즈를 연작하였다. 물론 다른 화가들처럼 그림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 많이 그려봄으로 값진 실수를 통해 진보하는 과정이기도 하였고, 또한 내가 내 삶에서 느꼈던, 혹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그냥 스스로가 만든 그림에 대한 중독 같은 열심으로 사물들을 그리며 그들을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였고, 잘하는 것이기도 하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나답게 만들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전공생이 되어 내가 선택했던 사소 하지만 의미 있는 사물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자 하는 사물들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나의 하루에서, 나의 주변에서 나의 삶과 연관 되는 것들로부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했다.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채나 과일, 그리고 주부로서 언제나 친숙한 부엌용기들, 그리고 언제나 아름다운, 영원할 수 없어 아름다운 꽃도 누가 뭐라 해도 그려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꽃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과를 그릴지라도 나의 손으로, 나의 서성임으로 나의 시간을 들여 그려보는 것은 경험해 볼만한 것이라 확신했고, 나 스스로를 가르친 수 있는 좋은 선생님들이라 확신하고 도전하였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꽃을 그리며 많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더 많은 연습이 필요로 하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고 꽃을 꽃답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한 송이 꽃을 피우려고 잔뿌리를 어두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하늘로 향해 뻗어 올리고,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피고야 마는 꽃! 내 앞에 고운 색으로 각자의 고유한 모양으로 서 있는 꽃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또한 꽃을 그리기 위해 사유함과 서성임으로 그리고 수 많은 시행착오를 하며 가끔 내 마음속의 꽃과 일치를 볼 때가 있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꽃은 무엇인가? 아마도 내가 그림을 그려 누군가에 보여주는 그 순간이 내 일련의 수고와 노고가 찬란하게 꽃피워지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꽃은 쉽게 시들었다.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아름다운 꽃을 아직도 나에게 도전적인 마음을 일으킨다. 수 많은 화가들이 꽃을 그리고 꽃을 그리는 것이 흔하여 독창적인 일이 아니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나에겐 아직 도전이며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이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 말하자면, 뉴턴의 사과, 세잔느의 사과 그리고 이브의 사과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과 또한 나를 바꾼 커다란 의미이다. 수 많은 다양한 색을 입고 있는 사과의 다양한 색뿐만 아니라, 안은 어찌 한가! 어느 날 난 사과가 무엇인가라는 실질적인 답을 보기 위해 칼로 사과를 반으로 자른 적이 있다. 사과를 채우는 달콤한 속살과 그리고 사과를 사과답게 만드는 검은 씨가 박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과를 사과답게 만드는 것은 겉과 안의 총체적인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 도시락에 함께 가져가는 사과, 가난한 어린 시절 손님이나 오는 날에 깎아 내었던 그 향기 나는 사과, 나의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 그리고 욕망처럼 예쁜 사과! 난 사과를 내 페인팅에 그렸다. 나는 사과를 그렸지만, 내 그림 속에 있는 사과는 때론 다양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사과가 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학교 도네이션 옥션에 사과 그림을 제출 하였을 때, 나의 그림이 남들과 열정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난 그 사과그림 때문에 누군가가 나의 그림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화가 지망생으로서 커다란 행복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한 그 두 가지의 매력을 다 가지고 있는 사과를 ‘욕망’의 대상으로 연결하여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hunger’의 몇 작품 속에 책과 대치되어 놓여 있는 붉은 사과가 그것이다. 책들이 나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를 지켜주는 것이라면, 사과는 나의 감수성과 감정 그리고 비논리적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사물이었기에 선택을 하였고 기쁘게 그렸다.

사과뿐만 아니라, 날마다 접하는 야채들도 제각기 말을 한다. 그들은 각자의 다양한 모양과 색 그리고 향기를 가지고 있다. 야채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와 색에 눈을 열게 되었다. 요리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그들의 조직적이고도 매력적인 모습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꽃을 배우고 깨우친 것과 사뭇 다르다. 내 삶의 실질적인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먹거리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때로는 생명을 품고 있는 야채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도 하였다. 바쁜 예술학도의 삶에서 비롯된 알뜰하지 못한 삶의 그늘진 곳에서 생긴 일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모습을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양파가 싹이 나고 마늘이 싹이 나고 감자가 싹이 나고 고구마가 싹이 나는 광경을 나의 부엌에서 보았다. 그들은 살아 있었다! 시들 시들해지면서도 기꺼이 밀어 올리는 푸른 생명력을 보고 어찌 그들을 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젊지 않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다.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주름지는 모습을 거울 앞에서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주름지지 않고 살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난 그들이 주름져 가면서도, 가벼워 져가면서도, 그들 안에 들어있는 수분을 밀어 올려 푸른 생명력을 들어 올리는 광경이야 말로 중년 여인이 그려내야 할 사무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이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내 비록 주름지고 늙어 가지만 있는 힘을 다하여 그림을 그리고 말 테다 하는 다짐이기도 하였다. 내 작품 명을 말하자면, ‘Got Green#1,2,3’ 등의 연작이 있으며, ‘감자 풍경화’와 ‘Still There’ 작품 또한 야채를 다룬 작품들이다.

‘Still There’란 작품은 ‘고추’를 대상으로 그린 작품인데, 고추가 시간과 함께 마라 비틀어지면서 사랑을 뜻하는 러브의 형태로 주름지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작품이다. 시간과 함께 주름져가는 나의 젊음 아니면 나의 열정,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생각들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삶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시간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허무함 보다는 삶이 변해간다는 것에, 그리고 그 거부할 수 없이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중에도 언제나 내재하고 있는 그것을 생각하고 싶었다.

‘Tomato blues’란 작품은 토마토가 비바람에 쓰러지며 여물기까지, 상처를 기꺼이 치유하며 만든 그 얼기설기 메우어 만든 다리 같은 흉터 자국에 영감을 얻어 시작한 작품으로, 사람과 사람이 얽혀 살아가는 모습의 한 면을 그려 본 작품이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주고 받고 사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모르는 것 아니지만 말이다. 나 또한 못생긴 토마토를 파머스 마켙에서 보았을 때,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는 터라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그 못생기고 흉터 강한 토마토에 끌려 상처받은 자의 고통을 같이 아는 양 그림을 그렸다.

난 비전통적인 화가 지망생, 즉 나이 숫자 많은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것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원활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기도 하다. 이곳 미국에서의 나의 학교생활에서의 정체감은 주로 그 두 가지 큰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 언어가 원활히 소통되지 못하므로 맛보았던 억울함과 갑갑함, 때로는 그런 것들이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눈물짓게도 하였다. 물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타국에서 느껴야 했던 그 별난 고독감은 더 큰 것 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쓴맛 어린 시간에 생각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운동, 얼굴에 입술을 움직여 만들 수 있는 웃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웃음이 들어있는 스마일 도자기를 그림으로 내 스스로의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경험을 맛보았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인해 나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 스트레스를 해결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나의 그림을 그림으로 스트레스로 막힌 벽으로 둘러 쌓인 슬픈 방에서 탈출하게 된 경험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나에겐 명상이며 기도이기도 하다. 남을 탓할 것이 아니고 내 안의 내공을 더 튼튼하게 갖춤으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강함으로 바꿀 수 있었던 내 그림이 날 치유했던 경험중의 하나이다.

난 이십 사년 전 한국에 있는 ‘전남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이곳 미국의 남쪽 작은 소도시 ‘카본데일’이라는 곳에서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화가가 되었다. 좋은 글이란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좋은 생각거리로 각자의 삶을 밝힐 수 있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리고 나의 그림 또한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와 함께 이곳에서 의미 있었던 추억이라면,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혹은 나무를 심었던 일이다. 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꽃을 괴롭히는 벌레를 막아주는 일련의 관심 깊은 과정을 통한 구체적이고도 노고로운 과정을 지나 꽃을 보았던 추억이다. 나의 정원에서 자라난 꽃들이기에 그 수고로운 만큼의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그들을 난 기념하였다. 가시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내 열정 같은 붉은 장미뿐만 아니라 이른 봄을 열었던 노랗게 열었던 부드럽지만 강했던 수선화, 살사 춤을 추는 인생이 낭만이 느껴지는 아이리스, 단단한 줄기와 꽃잎이 구조적인 글래이드, 이웃집 정원에 탐스럽게 머리 무거워 고개 숙인 피오니, 꽃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저항할 수 없어 난 그들을 그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일련의 시리즈들은 ‘irresistable’이란 주제로 진행 중이다.

일상의 소재들, 즉 꽃, 야채, 과일, 접시, 도자기, 컵 등등의 일상적인 소재들을 다른 정물화들을 셋팅을 하여 빛과 색, 리플렉션, 트랜스 페런시, 텍스쳐 등등의 테크닉을 연마한 후 나의 그림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변화해야 했다. 그 동안 직접적인 관찰로 통해 그림을 그렸다면, 직접 보고 그림으로 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그 사실감과 현장감 그리고 섬세한 빛에 대한 지각력 등등의 것 이외에도 난 그 이상이 필요함을 느꼈다. 이미 그때도 나의 그림은 ‘세미 업스트렉’이라는 방향을 잡고 있었다. 너무 사실적이지도 않고 너무 추상적이지도 않는 그 길에 서고 싶었다. 너무 사실적인 그림처럼 그리는 것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추상화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이 나의 주된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진학을 한 후로 무엇인가 새롭고 실험적인 것을 찾아 정진하였다. 그 과정은 내가 잘하는 것을 정지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저항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때의 좌절과 그때의 엔자이어티가 없었다면,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가지 않았던 낯선 길을 가며 느꼈던 우울감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i-Sink’ 시리즈를 만들며 끝없이 가라앉는 우울감속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사물을 그리지 않고 어떻게 나의 생각을 시각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도전이었으며, 그로 인해 오히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졌으며, 나의 정물화는 새로운 방향을 잡아 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대학원 첫 학기에 이루어낸 ‘i-Sink’ 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 붓을 씻다가 영감을 얻어 시작한 추상화 시리즈이다. 싱크대 속으로 씻겨 들어가는 물감들을 보며 보 잘 것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 좌절감과 두려움을 보았던 그 순간에서 동기가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감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개인적으로 기록할만한 출발이기도 하였다. 결국 사실적인 싱크대를 그리지 않고도 열 여섯 개의 작품을 연작을 하였다. 그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적인 그림들을 그리는 동안 익숙한 사물에 대한 그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패턴과 텍스쳐만 있는 그림을 그려놓고 결국 난 나의 사물들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어긋남이었지만, 그것을 허용함으로 다른 가능성을 얻게 되었기 도 하였다. 싱크대의 거센 솔! 바로 이 솔이야말로 내 안의 싱크대 속에 찌든 우울감과 낭패감을 박박 닦아낼 수 있는 것이라는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때를 난 느꼈고 그리고 스스로가 만든 벽에 용감하게 도전하였다. 그래서 나의 작품, ‘청소하는 방’이 탄생하였고, 이 작품은 굵직한 쇼에 당선할 수 있었던 나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역시나 싱크대 속의 솔이 나의 그림을 그리게 하였고, 그리고 내 그림의 솔이 나의 우울감과 낭패감을 씻어내고도 날 가라앉는 싱크대 밖으로 나오게 하였다.

어쩌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정물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난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얼굴과 사물들을 함께 그림으로 현대적인 정물화라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으며, 풍경 속의 사물을 그림으로 그 영역을 확대함으로 시야가 더 넓어짐을 느낀다. 대학시절 정물화에 집중을 하였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초상화를 나의 얼굴로 해서 시작한 것은 도전이었다. 초상화에 도전을 함으로써 익스프레션과 초현실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사실적인 접근으로부터 시작해서 추상화의 요소까지 갖춘 하이브리드 작품에 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나의 작품, ‘In the Glove Factory’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내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의 이름이 ‘글로브 펙토리’이다. 난 이곳에서 육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수 많은 장갑들을 사용하였다. 장갑이 없는 창작활동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장갑을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그것은 내 창작 활동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물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에서 수 많은 시간을 보내어도 내 그림은 그럭저럭할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자주 만나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때, 역시 난 언제나 필요한 고무 장갑을 그려 넣었다. 언젠가 나의 수고롭고 힘든 시간이 보상받을 때가 있으리라는 생각뿐만 아니라, 꿈을 꾸기에 날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는 보통사람들 그들이 생각났다. 그림을 그려라, 돈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이 작품은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64 arts show(2011)’에서 그림부분 페인팅상을 받게 되기도 하였다. 고무 장갑 하나가 내 인생을 바꾼 사실의 예다. 그 후로 난 내가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바로, 그림은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는 것을.

나의 작품, ‘Rolling in the dark’과 ‘lingering’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그려낸 좀 색다른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rolling in the dark’의 작품에선 내 안에 있는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니면 열정! 그리고 나의 그림이 한계를 쉽게 만들지 않고 열린 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렸다. 인식할 수 있는 사물을 그렸지만, 오히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형성된 것에 만족하며 붓을 놓았다. 왜냐하면, 때로는 실제 감이 환상보다 더 환상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는 아는 교수님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중에 직감적으로 나의 그림의 소재가 될 만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뚜렷한 컨셉을 필요로 하는가를 배웠던 그림중의 하나이다.

‘Lingering’ 이 작품 또한 추억 어린 나의 사진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사진 속의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신나고 즐거운 모습이었지만, 그 사진을 보고 있는 현재의 나는 더 나이가 깊이 들었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있을 때였다. 상처 난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았던 그때에 난 나의 마음과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한 색을 골라 그림을 그렸다. 내가 연연해 하는 것들에 대한 실망, 아니면, 이런 저런 모습으로 얽혀 있는 모습을 그렸기 도 하고 무엇보다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셋팅을 하다 보며 겪는 사물들의 한계를 벗어나 그 영역을 하늘로, 크기가 있는 사물로 확대했다는 점에 있어서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늘에 매달려 있는, 엄밀히 말하면 땅에 매달려 잠시 공중에 떠있던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난 나의 그림이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추상과 구상, 그리고 풍경화, 초상화, 그리고 정물화까지.

나의 사물들은 언제나 나의 현실적인 삶의 테두리에서 선택된다. 고무장갑처럼 난 날마다 내 삶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진 도구들을 초상화에 접목을 시켜보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물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이 말하고 있음을 본다. 가장 최근 작품중의 하나인 ‘I am a lady’ ‘I hear you’, ‘I see You’를 말하자면, 연장 도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내 삶의 연장들을 그리므로 나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사물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보았다. 귀마개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귀를 막았지만, 언제나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의 소리일 것이고, 저항 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또한 젊은 친구들과 친구 맺기가 어려운 나로서는 때로는 처절한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나의 쓸쓸한 뒷 애기가 소음처럼 들리는 것을 귀를 막는다 해도, 느껴지는 외로움을 어찌해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에 난 이 그림을 그렸다.

‘I See You’이 작품 속의 난 가장 적극적인 나를 표현했다 할 수 있다. 흰머리 덮이고 있는 머리를 감추고, 구굴을 쓴 난 이제 언제든 찾아 올 우울이나 낭패감에 대한 준비가 된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년에 찾아온, 아니 찾아 여성으로서의 장이 끝난 듯한, 좋은 시절은 다 간듯한, 인생의 후반부로 접어드는 그 느낌이 깊은 바다와 같이 깊을 적에 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은 바다에서 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림을 그렸지만, 나의 그림은 내가 미쳐 알아내지 못한 사실을 내게 깨우치게 한다. 난 그림을 그리므로 스스로 겪어야 할 그림과의 전쟁에 준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답을 분명하게 찾아가고 있다.

지금 나의 그림은 시간과 함께 변하고 있고, 나 또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물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멈출 수 없다. 정물화로 시작한 나의 화가로서의 길에서 정물화는 언제나 내 마음속의 고향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붉은 벽돌로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화가로서 난 나의 정물화를 그려내고 싶은 꿈이 간절하다. 가장 나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나 또한 소망한다. 어쩌면,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나는 지도 모를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였고, 그리고 그 낯설고도 서투른 여행길이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긴 한숨과 깊은 좌절이 있기에 나의 그림에 깊이가 있어지고, 세상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을 배움으로 해서 더욱 강하고도 힘있는 정물화를 그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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