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02, 2012

From 2011 To 2012



긴장을 너무 풀었나 보다. 시간이 벌써? 새로운 해가 되었다며, 새로운 다짐도 하고 뭐 그렇게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소중한 습관이 완전 출장을 가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드높은 아침을 보는 것이 엄청 부담스러워 다시 침대로 들어가는 너무 좋지 않은 습관을 빨리도 익혔나 싶다. 심지어 정규적인 인터넷 활동을 하지 않아 몇개의 비밀번호가 엉켜 노후하는 모습에 잠깐 놀라는 일까지 겪다 보니,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이렇게 컴 앞에 앉아 있다.

유익한 책을 좀 읽겠다는 각오와 달리 재미난 한국 영화를 수십편을 보았나 보다. 잘생긴 배우님들이 나오는 깡패영화를 보다보니, 재미는 있지만서도 왠지 모를 불안함이 밀려왔던 느낌은 좀 이색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한국엔 깡패만 있다하겠다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까지 하였을 정도이다. 그리하여 깡패영화 말고 좀 낭만영화를 봤더니, 흥행에 실패했겠다 싶었다.

몇주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영화를 보다보니, 어설픈 나의 영어가 다 출장간 느낌을 아는 가! 당분간 영어를 정말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폐인처럼 그렇게 해의 끄트머리를 보낸 것이 마음에 자꾸 걸린다. '워크 홀릭' 아니 '그림중독' 뭐 그런 말에 친숙한 내가 어찌 이리도 심하게 볼품 없이 망가질 수 있단 말인가. 머리도 감지 않고 뭐 그렇게 집에 박혀 그냥 컴영화만 보고 있는 모습! ㅎㅎㅎ

운동도 하고 사이 사이 영화도 보고 뭐 그렇게 해야되지 않나 했지만, 한번 늘어진 몸과 마음은 그냥 '브레이크'다며 늘어진다.

드디어, 엄마가 해주는 맛난 음식 먹고싶다는 큰 아들, 볼멘 소리로 외친다. 엄마, 너무 하시는 것 아니야요!!! 며칠 맛난 것 해줬냤냐? 하며 응대는 하였지만서도 정말 학생 생활 오래하고 있는 엄마도 브레이크 하고 싶고 그리고 나도 누가 해 주는 밥도 먹구 싶다아아!

맛있는 피자를 날마다 시켜 주었더니....ㅎㅎㅎ 막 화를 낸다. 풋볼 선수 라인맨의 몸의 역사를 지워낸 울 큰 아들의 유쾌하고도 건강한 진보에 어찌 기쁘지 않겄냐마는 나도 쉬고 싶다는 게으른 몸의 유혹에 나 엄마로서 빵점 기록하고 만다.

성탄맞이 김치도 다 떨어지고, 울 큰 아들 집을 떠나고, 덩그랗게 작은 아들과 덩그랗게 남고 보니, 마음이 휑하고 바람이 분다. 그래서 밥 묵었다. 그리고 커피까지.

이천 십일년은 많은 것을 내게 준 해였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작은 역사가 있었던 해이기도 하였던 것 같다. 먼저 울 큰 아들은 이십년 동안 무겁게 달고 다녔던 몸무게에 혁신을 가졌고 그리고도 진행중이고, 울 작은 아들은 이곳 학교에 진학해서 착실히 자신의 꿈을 키우는 기초를 잘 만들고 있고, 우리집 기둥인 남편님 또한 회사 발전을 위한 커다란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어냈고, 나 또한 이곳 국전과 인터네셔날 전시회에 이름을 적혀 보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나의 그림을 인정해 주는 기회를 갖느 것 그것 싶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점에 있어서 그 늦여름의 수상 소식과 초 가을의 상을 받았을 때의 그 느낌은 이른 봄날의 바람과 여름 날의 뜨거운 목마름을 잉태하지 않고서는 절대 일어 날 수 없었던 나의 작은 기적이 만든 가슴 벅찬 가득참으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찬스로 만들 수 있게 항상 격려와 위로를 잊지 않았던 나의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특히나,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넘어지던 때에 나를 일으켜 세웠던, 존경하는 교수님과 그리고 나의 가족! 그러네!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던 나의 튜터, 크리스!

여름 방학 이주동안 만들었던, 모노 프린트의 걸작(?) 섬씽 라이크 해피니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값어치가 더욱 있어 보이는 나의 모노 프린트!

무엇보다, 나의 안되는 영어를 사랑스럽게 감싸안고 한학기를 잘 버팅겨준 나의 컴뮤니캐이션 드로잉 클라스의 열 일곱 명의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말씀을 잊지 앟고 싶다. 그들은 나의 그들을 향한 나의 첫사랑을 모를 수 도 있을 것이다. 워낙 나의 영어가...ㅎㅎㅎ

좌충우돌, 헬갈리는 콩글리스로 카리스마를 풍기는 나이 노후한 엄마벌의 티에이를 용서하던 그들이 있었기에 나 무지 행복했다. 그들이 나의 쓰러진 자만심과 실종된 자존심을 찾게 해 준 소중한 그들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이기도 하다.

그러네! 감사할 일들이 정말 많은 이천 십일년을 또 하나의 행복한 이천 십이년으로 꾸려 나갈 것이다. 울 큰 아들이 졸업을 하여 한국에 갈 것이고, 그리고 군대를 갈 것이고, 그리고 나의 작은 아들과 난 이곳에서의 학생시절을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맺음으로 단단히 해야 할 것이고......

아니 벌써, 시간이...

'베르베르'의 '웃음'을 지는 해의 끝을 잡고 읽었다. 긴 겨울밤에 물론 잠을 청하기 위한 독서이기도 하였지만서도.

이천 십이년에도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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