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gative Space---with Eric
프로젝트 안내지를 받고서 그 황당함과 당혹감을 잊을 수가 없다. 난 프로젝트가 다 마무리되어 가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나로서는 간혹 미국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넌 이해하고 있니? 그럼 그들은 영어가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피차 마찬가지 일때도 있지만, 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물어야하는지를 모르는 것이 정말 괴롭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공부의 정의이고 시작아니던가.
나름대로 프린트물 해석을 끝내고 다섯 장의 스케치를 해갔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내기에 벅찬 아이디란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면 난 '플라시틱'을 이용해서 네가티브한 공간 덩어리를 만든다고 하기에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플라스틱은 한국에서 말하는 '비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내가 이른 새벽에 착상해 낸 나의 아이디어는 그 재료를 가지고 하긴 어려워서 난 다시 스케치를 해야했다.
'에릭'이란 미국친구를 파트너로 만나게 되었다. 에릭은 나를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듯했다. 왜냐면 어떻게 쉽게 영어를 사용하여 나를 이해시키고, 그리고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시켜야 하는 부담감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튜이오 작업이 많은 미술전공의 학생들은 지쳐있는 시간이었다. 이 수업 저 수업에서 나오는 각 프로젝트를 해 나가는 것은 긴장감을 털어 버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만 잘 알아먹을 수 있었다면.....윽.....
현대 미술의 한 조류인 '환경 예술' 내지는 '설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네카티브한 공간을 찾았고, 그리고 그 공간을 측정해서, 재단하고 , 그리고 글루로 부쳐서 덩어리를 만들고, 그리고 그곳에 공기를 집어 넣어 그 부피감을 더하는 일이었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런데 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파편처럼 다가오는 그 아이디어의 조각 덩어리를 붙여 이해하는데 힘들었고 시간이 들었다.
누군가 해 놓은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쉬웠을 것이다. 선배들의 작품이 있는 슬라이드 감상도 없고, 인터넷에서는 넘 유명한 작품은 교실 수업과 거리가 멀고,윽.....알고 봤더니!!!
크리티크를 하는 순간에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단순한 라인의 모양을 정말 덩치크게 만들면 장땡이었다. 그 거대함에 침몰당하는 그 느낌이란...에릭과 나의 작품은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더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소파를 이용한 작품이었기에 그 덩어리감이 작았다. 그래서 단지 작다는 그 이유로 느낌이 덜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물어보았다. 큰것이 장땡이냐고? 그랬더니 그것은 아니다고 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처음에 내가 스케치한 대로 더 매력적인 네가티브한 공간을 찾았을 것이고, 그리고 그 네가티브한 모양도 무엇인가 메세지가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역시나 몇명의 이 방면에 재능있는 친구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혼돈과 당황의 흔적없이 그들은 스케치를 하고 행동으로 옮긴 듯 했다. 경험이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감각이었을까......
나이들고 영어 못하는 나를 만나 고생했을 '에릭'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말하고 싶다. 항상 느긋하고도, 결과적으로 무엇인가을 이루어내는 그에게서 한 수 배웠다. 그도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웠을까?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나로서는 간혹 미국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넌 이해하고 있니? 그럼 그들은 영어가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피차 마찬가지 일때도 있지만, 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물어야하는지를 모르는 것이 정말 괴롭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공부의 정의이고 시작아니던가.
나름대로 프린트물 해석을 끝내고 다섯 장의 스케치를 해갔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내기에 벅찬 아이디란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면 난 '플라시틱'을 이용해서 네가티브한 공간 덩어리를 만든다고 하기에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플라스틱은 한국에서 말하는 '비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내가 이른 새벽에 착상해 낸 나의 아이디어는 그 재료를 가지고 하긴 어려워서 난 다시 스케치를 해야했다.
'에릭'이란 미국친구를 파트너로 만나게 되었다. 에릭은 나를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듯했다. 왜냐면 어떻게 쉽게 영어를 사용하여 나를 이해시키고, 그리고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시켜야 하는 부담감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튜이오 작업이 많은 미술전공의 학생들은 지쳐있는 시간이었다. 이 수업 저 수업에서 나오는 각 프로젝트를 해 나가는 것은 긴장감을 털어 버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만 잘 알아먹을 수 있었다면.....윽.....
현대 미술의 한 조류인 '환경 예술' 내지는 '설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네카티브한 공간을 찾았고, 그리고 그 공간을 측정해서, 재단하고 , 그리고 글루로 부쳐서 덩어리를 만들고, 그리고 그곳에 공기를 집어 넣어 그 부피감을 더하는 일이었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런데 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파편처럼 다가오는 그 아이디어의 조각 덩어리를 붙여 이해하는데 힘들었고 시간이 들었다.
누군가 해 놓은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쉬웠을 것이다. 선배들의 작품이 있는 슬라이드 감상도 없고, 인터넷에서는 넘 유명한 작품은 교실 수업과 거리가 멀고,윽.....알고 봤더니!!!
크리티크를 하는 순간에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단순한 라인의 모양을 정말 덩치크게 만들면 장땡이었다. 그 거대함에 침몰당하는 그 느낌이란...에릭과 나의 작품은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더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소파를 이용한 작품이었기에 그 덩어리감이 작았다. 그래서 단지 작다는 그 이유로 느낌이 덜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물어보았다. 큰것이 장땡이냐고? 그랬더니 그것은 아니다고 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처음에 내가 스케치한 대로 더 매력적인 네가티브한 공간을 찾았을 것이고, 그리고 그 네가티브한 모양도 무엇인가 메세지가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역시나 몇명의 이 방면에 재능있는 친구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혼돈과 당황의 흔적없이 그들은 스케치를 하고 행동으로 옮긴 듯 했다. 경험이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감각이었을까......
나이들고 영어 못하는 나를 만나 고생했을 '에릭'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말하고 싶다. 항상 느긋하고도, 결과적으로 무엇인가을 이루어내는 그에게서 한 수 배웠다. 그도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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