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matism(process)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은 흙덩이가 불을 견디는 것과 같다고 하면 넘 뜨겁나? 비긴닝 오일 페인팅 클라스의 마지막 프로젝트로서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즈음에 흰색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모네의 랜드스케핑 그림을 카피하며 과감한(?) 스케치 라인과 칼라 터치를 끝없는 응시와 실험정신으로 과정속에서 무엇인가를 깨우쳤지만, 아직 그것이 뭔지 모르는 순간 샘은 임프레시즘 페인팅을 공부했으니 인상주의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난 혼란스러웠다. 샘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기초 유화반이니 드로잉의 연장선에서 전통적인 유화의 기본을 닦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상주의를 언급하니 어쩌라는 것인가!
인상주의가 무엇인가! 모네의 그림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용감하게 그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용감이란 단순 무식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은 이후에 자유할 수 있는 어떤 단순한 그리고 순진한 색의 터치라고 생각되었다.
난 이 순간 모네가 아니다. 난 아직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 포그라운드 미들 그라운드 백그라운드, 그리고 밸류! 흑색의 차콜로 모노톤 드로잉을 하다가 화려한 색들을 마나면 어찌 할 줄을 모르겠다. 그냥 포그라운드레 더 신경을 써서 더 다양한 색으로 명도를 나타내면 되는 것인데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지금껏 페인팅 수업을 하면서 이번 페인팅처럼 좌절해 본 적이 없다. 괜시리 인상주의란 단어의 함정에 빠져 과감하게 마음이 가느 대로 선을 긋고 보이는 대로 색을 칠했던 맨 처음 시작은 자유인 것 같았는데 그것은 셀 수 없는 사유와 책임을 요구하였다.
샘이 배치해 놓은 무대(?)를 보고 난 나름대로 벽과 테이블의 딱딱한 직선과 파스텔 톤의 가볍고 부드러운 초록색과 주황색 그리고 흰색이 주고받을 영향력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내가 실수를 하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칠해 놓은 색들을 감당 할 수 없는 황당함과 당황함에 좌절 할 때 누가 나를 건질 것인가! 샘은 포그라운드의 밸류라는 단어를 강조했지만, 나도 이론은 잘 알고 있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나타난 증상은 꼭 내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그냥 포기하고 다시 그릴까 하다가 난 나의 처음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붙잡는데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샘이 흰색을 처음부터 쓰지말라고 했던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칠해도 칠해도 발라져 있는 흰색들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직 시간만이 유일한 답인 줄 알면서도 기다리지 않고 난 내자신의 좌절을 견디지 못해 칠하고 칠했더니...
회색이 나왔다!
참다 못해 교실을 빠져 나와 새 페인팅 캠퍼스를 사러 가는 길에 난 나의 좌절(?)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난 샘의 결정적인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불만이 쌓여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 언짢음은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게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똑 같은 사물들을 보고 그리는 가운데에도 난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 독학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영어가 잘 안되니 눈치만 늘고 눈치것 하려고 했더니 보고 따라할 선례는 없고...등등의 게으른 핑계들는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한번 만 더 수정을 해보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새로이 시작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자세가 내가 당해본 황당함을 물리치는 데 공헌을 하였던 것 같다. 물론 샘의 격려 또한 적절하였기도 하고.무서운 포그라운드를 놓아두고, 내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칠해 놓은 색들을 뒤에서 부터 차근 차근 다시 되잡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 오르고 나의 그림이 가야 할 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당황하고 황당했던 색깔들이 깔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없었음을 난 배웠다. 그래서 그것은 도자기가 불속을 통과하여 나오는 것과 같은 고통(?)을 수반했다고 난 생각하는 것이다.
모네의 랜드스케핑 그림을 카피하며 과감한(?) 스케치 라인과 칼라 터치를 끝없는 응시와 실험정신으로 과정속에서 무엇인가를 깨우쳤지만, 아직 그것이 뭔지 모르는 순간 샘은 임프레시즘 페인팅을 공부했으니 인상주의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난 혼란스러웠다. 샘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기초 유화반이니 드로잉의 연장선에서 전통적인 유화의 기본을 닦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상주의를 언급하니 어쩌라는 것인가!
인상주의가 무엇인가! 모네의 그림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용감하게 그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용감이란 단순 무식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은 이후에 자유할 수 있는 어떤 단순한 그리고 순진한 색의 터치라고 생각되었다.
난 이 순간 모네가 아니다. 난 아직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 포그라운드 미들 그라운드 백그라운드, 그리고 밸류! 흑색의 차콜로 모노톤 드로잉을 하다가 화려한 색들을 마나면 어찌 할 줄을 모르겠다. 그냥 포그라운드레 더 신경을 써서 더 다양한 색으로 명도를 나타내면 되는 것인데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지금껏 페인팅 수업을 하면서 이번 페인팅처럼 좌절해 본 적이 없다. 괜시리 인상주의란 단어의 함정에 빠져 과감하게 마음이 가느 대로 선을 긋고 보이는 대로 색을 칠했던 맨 처음 시작은 자유인 것 같았는데 그것은 셀 수 없는 사유와 책임을 요구하였다.
샘이 배치해 놓은 무대(?)를 보고 난 나름대로 벽과 테이블의 딱딱한 직선과 파스텔 톤의 가볍고 부드러운 초록색과 주황색 그리고 흰색이 주고받을 영향력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내가 실수를 하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칠해 놓은 색들을 감당 할 수 없는 황당함과 당황함에 좌절 할 때 누가 나를 건질 것인가! 샘은 포그라운드의 밸류라는 단어를 강조했지만, 나도 이론은 잘 알고 있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나타난 증상은 꼭 내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그냥 포기하고 다시 그릴까 하다가 난 나의 처음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붙잡는데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샘이 흰색을 처음부터 쓰지말라고 했던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칠해도 칠해도 발라져 있는 흰색들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직 시간만이 유일한 답인 줄 알면서도 기다리지 않고 난 내자신의 좌절을 견디지 못해 칠하고 칠했더니...
회색이 나왔다!
참다 못해 교실을 빠져 나와 새 페인팅 캠퍼스를 사러 가는 길에 난 나의 좌절(?)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난 샘의 결정적인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불만이 쌓여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 언짢음은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게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똑 같은 사물들을 보고 그리는 가운데에도 난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 독학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영어가 잘 안되니 눈치만 늘고 눈치것 하려고 했더니 보고 따라할 선례는 없고...등등의 게으른 핑계들는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한번 만 더 수정을 해보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새로이 시작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자세가 내가 당해본 황당함을 물리치는 데 공헌을 하였던 것 같다. 물론 샘의 격려 또한 적절하였기도 하고.무서운 포그라운드를 놓아두고, 내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칠해 놓은 색들을 뒤에서 부터 차근 차근 다시 되잡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 오르고 나의 그림이 가야 할 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당황하고 황당했던 색깔들이 깔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없었음을 난 배웠다. 그래서 그것은 도자기가 불속을 통과하여 나오는 것과 같은 고통(?)을 수반했다고 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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