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29, 2016

Push~Pull

올 여름 마지막 장마비가 내리는 날에, 빨간 우산을 들고 물가를 걸어보는 즐거움은 신발이 젖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평소와 달리 노랗게 차오른 힘찬 물살이 만드는 깊은 물결소리가 있는 물가를 걷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운치가 있었지 않나 싶다.

내가 노는 물가엔 시간이 주름진 나보다  젊고 조직있는  여인들이 있다.  조직이란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함께 밥먹고, 커피 마시며 이루어낸 끈끈한 관계를 형성한  그녀들은 알게 모르게 텃세를 한다. 그 장소에 맞는 문화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나름 저항하고 싶은 생각에 그들이 요하는 것을 거부해 보았다. ㅋㅋㅋ 미움받을 짓을 해보았더니 역시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ㅎㅎㅎ '미움 받을 용기 2'가 나왔다고 하니, 다시 책을 들고 혹시라도 찾아올 후회에 대한 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뭣이 중요헌디?

 책이라도 몇권 읽긴 해야 한다는 밑바닥 부딪히는 소리를 듣긴 했다. 뭣이 중요한 것인지 자꾸만 헷갈리고 그렇게 어리석게 산다. 물가에서 깨달은 긍정적인 것 하나는 리듬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밀때는 밀고 당길 땐 당기고 그리고 회복할 때를 만들며 리듬을 타며 무리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에도 필요할 것인데 언제나처럼 오늘도 난 사람들을 밀어 내었다. ㅋㅋㅋ 댕길 힘이 없는 이유는  리듬을 못타고 너무 밀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성격이 모자라 잘 안되니 팔자라 여기고 그냥 혼자 잘 놀기로~~~

작품을 할 때 쓰는, 밀고 댕기기를 하면 입체감이 살아 나 생동감이 있었는데,  현실적인 삶은 너무 탁하고 건조한 것이 아무래도 그림자가 없어서인가? 내안의 빛을 잃어 발광하지 못함이야! 이쁜척 잘난척 그런 것 물가에서 하는 것 아닌데...척척해 보이는 것은 물가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인지?





Thursday, July 21, 2016

The Rose




그냥 도자기 작품을 노란집에 남겨 두고 왔다. 시간을 지나온, 바람을 품고 있는 소년의 모습의 그 비장미가 내게는 멋져 보이긴 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시간을 꿈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했고, 그곳에 있는 것이 훨씬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선한 마음으로 그곳에 남겨 두게 되었다.  흑백사진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심었던 장미가 보인다. 모질게 밑둥을 잘라내었던 것은 말벌들이 날아드는 위험도 있었기도 했고, 장미가 너무 자라나 그 가시에 사람들이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깊게 내린 장미는 변해 버린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꽃송이를 붉게 들어 올렸다. 그 붉고도 고귀한 장미향기에 취해 기뻤던 그 처음마음을 아직 기억한다.  누군가를 알고 사랑하는 과정처럼 그 장미 가시에 그만 화가 나기도 하였고 찔려도 보았다. 어느날은 절대 장미나무를 정원에 심지 않으리란 결심을 할 정도로 마음에 가시가 난 순간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장미가 붉게 피어 있었다. 


Wednesday, July 20, 2016

Dress Up

창문을 여는 무더운 여름이지만 옷장에서 원피스를 꺼내어 입고 마음을 잡아본다. 원피스 하나로 행복한 하루를 열 수 있다면 기꺼이 입고 볼 일이다.  오랜만에 오래묵은 친구들에게 소식을 물으니 나름 자신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봉사들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유있고 건강한 목소리를 들으며, 하찮은 일에 마음을 뺏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면 아직 나 굳어지지 않은 것이라며 스스로를 격려해 본다. 삶은 어차피 셀프니까~~~

무엇이 중헌디? 요즈음 유행하는 말이라고 한다. 무엇이 중헌디, 쓸모없는 감정들로 쓰레기 더미를 만들며 그 속에 파묻히는지...씁쓸하게 부딪히는 초라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남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자꾸만 자신 아닌 남이 보여 불쾌해진다. 불쾌지수가 높아서 할 수 없이 발생되는 것이니 스스로를 용서해야 할 일기기도 하겠지만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무엇이 중헌디!


Tuesday, July 19, 2016

the Watch

시계를 망설이다 구입했다. 짐스럽기까지 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나다운 새로운 시간이 산뜻하고 신나게 열정적으로 펼쳐지기라도 할려면 무엇인가 의식적인 행위가 뒤따라야 할 것 같은 유혹에, 노안에 시계바늘이 안보인다며,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싫다며 굳이 시계를 장만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간들이 멋지게 펼쳐지고 있냐고?

새로운 시간속에 나는 열정적이고 관대하며, 마음에 평화가 넘치고,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자신감과 소신을 가지고 있으며, 제대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며, 자신을 존중하는 것처럼 남들 또한 존중하며 배려하며 용서하는 멋진 여인으로, 예술가로 시간을 만들 것이라는 굳은 다짐이 그 시계하나로 창조될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일 것인가?

시계가 화장대 위에 그냥 누워있다.  이곳에 돌아와 새로운 시간속을 걷고 있긴 하다. 한번도 살아 본 적 없는 시간임은 틀림없다. 손목에 시계가 없어도 아무런 불편함 없는 시간속에 내가 흘러 가며 변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날개없어 보이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두려움없이 변할 수 있을꺼나? 가슴에 열정이 있고 아름답고 멋진 화가님이 이제 3년이란 세월동안 어떻게 변했는지요? 

그곳보다 14시간 빨리 날아가는 이곳에 돌아와 날카롭게 일어날 것 같은 예민함을 잠재우기 위해 미제 드라마 시리즈를 몇편 보았다. 그리고? 밤마다 술한잔 하고 싶은 유혹을 견디며 잠들고 있을 시간에도 화장대 위에 던져진 시간은 움직였지 싶다. 시간이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냐고 틈나는 대로 묻긴 한다. 그리고 오늘 붓을 들었냐고? 



Monday, July 18, 2016

Good Time

그곳의 노란집 지붕에는 새들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노래하고, 나뭇잎 덮인 조그마한 그늘에는 개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호숫가에 이웃의 뜰은  엉금엉금 느리게 올라오는 자라를 품고 있다.  6월이 가득찬 시간엔 습관대로 무궁화가 아침 일찍 열려서 나비같은 허밍버드의 인사를 받는 그림은 언제나 행복이 번지는 여름그림이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너무 뜨거운 햇살은 이쁘게 마음 먹었던 잡초와의 마지막 전쟁을 허락하지 않고 대신 자외선 차단제를 구입하게 하였다.  지난 유월의 그곳의 아침은 이곳과는 달리 일찍 5시 반경에 일어나 선선한 아침걷기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보았던 맑은 붉은 보석이 번지는 아침 풍경을 보게 된 경험은 특별한 행운이었지 싶다.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초록의 조용한 시간을 자신의 발걸음 소리만 사각거리며  걷고 있었지 싶다.

여름밤은 9시가 되어도 빛이 있어 이웃이 서둘러 잔디를 깍던 소리가 들려온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다보면 8시반에나 잔디깍을 용기가 났었겠지하며 뒤늦은 풀깍는 소리를 용서해 보았기도 한다. 운동화를 챙겨 해가 없어지기 전에 옆마을을 나갔더니 서둘러 하이얀 달님이 나왔는가 했더니 점점  커져만 갔다.  별 몇개가 빛나는 시간이 좀 더 푸르고 까맣게 깊어지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안타까움이었지만 안전을 생각해 서둘러 들어와야만 했다. 그래서 잠시 이곳의  도시의 깊은밤 걷기에 대한 감사함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남쪽으로 나있는 작은 팔각형 유리창으로 커다란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없는 밤이 길 것만 같아, 두려움에 눈을 꾸욱 감고 잠을 청했던, 원시가 가득했던 그곳의 밤시간으로 반딧불이 올라오는 행복한 풍경을 생각하며 그 밤들을 추억한다.

Sunday, July 17, 2016

in Summer 2016

비가 길게 내리는 여름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후덥지근하고 끈적거리는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 그 길다란 비도 그칠 때도 있고 그리고 덕분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 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지혜로운 여인의 말씀대로 궂은 날씨에도 숨어 있는 보물찾기를 해야만 삶의 의미가 허허롭지 않다는 것을 아침커피가 떠올리기도 했다.

새로운 장소에 적응기를 갖느라 이쁜 꽃들을 모두 떨쳐버린 화분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햇빛이 잘드는 곳에 두고 떠나 돌아오니, 분홍빛 꽃들이 약속이라도 했던 것 처럼 가득찬  꽃송이로 피워 올렸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그 꽃을 바라보며 아침을 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미안하지만 창가에서 자리를 옮겨 회색빛으로 우울한 나에게 가까이 오게 하였다.

해가 넘어간 시간에 냇가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는 것과 그 방치된 냇가에 뱀이 나타난다는 사실과 함께 비바람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어제의 산책은 자신을 위한 어떤 하나의 의식처럼 오늘도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잘한 자갈이 깔려있는 산책길보다 폐타이어를 이용한 산책길이 더 편안해...나름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밤이 늦은 시간에 산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곳보다 행복한 일이다. 하늘이 넓고 달이 크고 별이 반짝이는 밤이 있다하여도, 마음 편하게 달밤을 즐길 수 없는 것 보다는 언제라도 물가의 소리를 들으며 밤바람에 머리를 날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며,  반딧불이 풀밭에서 올라오던 그곳의 밤이 반짝거리며 유혹했던 그 그림들을 애써 과거로 보내고 있는 중일까.

내 정원의 무궁화들이 눈덩이처럼 피고지고 그 시간들이 멀리 있어 보이는 아침이다.  이곳 하루는 비가 없지만, 매우 후덥지고 더워서 불쾌지수가 높을 거라고 텔비가 말했다.  집밖으로 나가 만날 이곳의 사람들은 잘 웃지도 않고 표정이 없다. 나 또한 그렇게 되리라는 것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슬프고도 두려운 사실이지만 나름 적응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마음을 열고, 좋은 에너지를 상승시키며, 적극적이며 창의적인 생각을 꺽지 않으며 주어진 시간을 잘꾸려 나가는 것 대신에 마음 문을 닫고 좀처럼 웃지 않을 것이며, 소극적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아주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길을 택할 것 같은 아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그래도 아직은 두렵긴 하다는 것을 자백하고 싶다.

Thursday, July 07, 2016

Morning with WIFI

긴 비 내리는 이곳에 적응을 좀 했는지 그곳 빵집에서의 아침커피가 생각이 났다. 와이파이가 강력해서 이곳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아침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몇주만에 헤즐럿 커피 향기 박힌 기억이 스멀스멀  퍼지는 것 같다.

커피 한잔에 무료 와이파이를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다는 기쁨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 이다. 구입한 유심카드가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와이파이 잘 켜지는 장소에서 커피를 한잔 할 수 있다는 것은 작지 않은 기쁨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달려가고 싶은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 주는 그 공간의 의미가 유용하며 편리하며 감사하기까지 나중엔 미안하기까지 하였다.

때때로 점심을 사먹는 고급진 소비활동까지 답례로 지출해야 했지만서도 와이파이가 되는 빵집은 멋진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 분명하다.

40대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을 정리한다는 것은, 낯설고 불편한 모국에서 새로 적응을 한다는 것은 세번의 겨울을 지나도 명확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닌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포기 아닌 포기를 하는 것으로, 비겁한 변명을 하며 받아들이며,  문화 충격을 완화하며, 현실을 인정하며, 결점 많아 보이는 겸손한 주제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고 본다. 가슴에 나태한 기름이 끼고, 머리에 먼지가 내려앉고, 자연스럽게 주름지도록 방치했던 것일까?

그래, 벌써 3년!
이곳으로 온 후 운전을 하지 않은 이유로 다시 그곳에서 손수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였다. 클로징을 앞둔 이번 방문은 막연하고 불확실했던 작년의 여름방문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았다 할 수 있겠다. 집수리와 작은 아들의 귀국 준비로 분주했던 지난 여름과 달리 이번 여름은 커피를 한가하게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차이라 말하고 싶다,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하고,  늘상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삭막하다는 인상을 받긴 하였지만, 시간을 품어 주름지고도 선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그곳 카페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기로 한다.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의 그림만 기억하고 싶은 것이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A Flower in my Garden


그곳에 갔을 때, 내게 잡초같은 분홍꽃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끼고 정성을 다했던 꽃들은 비바람에, 특히나 주인의 보살핌이 결핍되어 사라지고 없는 터에 잡초같은 꽃이 역설적으로 반겨주었다.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다른 나무와 꽃들에 대한 배려로 사정없이 잡아 뽑고 그리했는데...차마 그 맑은 분홍빛이 어여뻐 멸하지는 않았지만서도...결국은 이렇게 마지막 인사나온 매정한 주인을 향해 인사하는 꽃은 잡초같은 너이고나~~~ㅠㅠ

잔디밭을 망치고 다른 꽃을 잠식하는 못되고도 이쁜 잡초가 결국은 남아 작별 인사를 하는고나~~~파머스 마켓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쁘게 심어주고 난 후에야  그 강한 생존력으로 인해 잔디밭의 천적이란 것을 알았지만 내 정원에서 뽑아낼 수 없었던 이름 기억하지 않는 꽃이다.  그 이름없는 귀할 것 없어 보이는 어여쁜 분홍빛에서 내가 배워야 할  살아 남는 강인함을 보았다 하겠다.



The Brave

조용한 것이 싫어 틀어 놓았던 미제 영화의 제목으로 자신과의 끊겨버린 연결고리를 찾고자 노력해 본다.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길다란 날씨탓으로 말 하는 것이 질리는 투덜거림 같지만, 이곳은 장마이다.  오랫동안 어린 세포속에 스며들어 있을 비가 내리는 시간이지만 새삼스럽게 처음 겪는 일처럼 생소하고 불편하고 낯설기도 하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니 모든 일이 불쾌하고 무의미하게  콘크리트 같이 무겁다.   꽃같이 붉은 마음을 짓누르며 덮어 버리는 이런 상황을 처음 접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이 무표정해지며  고유하고 본래의 곱고 귀한 자신의 색이 탈색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꺼내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구름위에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또 잊어버린 채 우중충한 잠식당한 그림을 그냥 심드렁하게 방치할 것인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또한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어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자꾸만 씁쓰레한 뒷맛을 맛보게 된다. 자신의 일에 코가 빠진 사람들,  여유가 없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그것이 인격수양의 최고선인 것처럼 함부러 남을  심판하는 사람, 무엇보다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착한 척, 무난 한 척 하면서 언제가 틈이 나는대로 자신의 잣대로 심판하는 못난 사람들에게 왜 휘둘리게 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사랑받고 싶은 사람인지라 그만 욕심이 나서 짜증이 났나 싶다.  나이가 몇인데? 더 사랑하지 못해서, 더 베풀지 못해서 부끄럽고 그래야 하지 않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조심하고 피하는 것이 상책인 것 같기도 하고...용기를 내어 후덜덜 도망을 가고 본다. ㅋㅋㅋ